박인근이 제5공화국로부터 상을 받은 뒤 아내 임아무개씨와 식사하는 모습. 박씨는 1981년 4월20일 국민포장, 1984년 5월11일 국민훈장을 받았다. 회고록에는 사진이 어느 시점에 찍힌 것인지 설명이 없다.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 제공
박인근은 구속 기간에 변호사와 재판을 준비했다. 박인근을 위한 변호사가 여럿 붙었다. 1986년 대법관을 퇴임한 전상석 변호사가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왔다.(전 변호사는 이후 1996년 내란죄 등으로 구속기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변호를 맡아 제5공화국의 정통성을 강조했다.) 전 변호사는 2월18일 오후 3시25분 박인근과 면담을 했다. 면담록에는 각각의 말을 누가 했는지는 쓰여 있지 않다.
“헌법상 인권에 대한 것이 뭔가 있어야겠습니다.”
“검사가 이번 조사에서 인권 윤리가(인권 유린이) 많았습니다.”
“일몰 후에 자택까지 들어와서 수사할 수 없어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
○월○일 오후 6시15분, 이재환 변호사가 찾아옴.
“내일모레 재판을 하는데 재판 순서는 판사 인정 신문 다음에 검사 직접 신문 변호인 반대 신문으로 시작됩니다.”
“예.”
“복지원에서 도망 못 가게 하고 구타한 사실을 물으면 수용 위탁을 받은 기관이므로 도망가려 한 걸 못 가게 한 것은 사실이나 구타한 사실은 없다고 답변하세요.”
“알았습니다.”
“다음은 불법 감금 문제. 울주 작업장은 부산과의 거리가 멀어 매일 왔다 갔다 할 수 없어 땅을 개간하면서 축사를 만들고 거기에 부랑인을 수용했고 문을 잠근 것은 사실이라고 대답하세요.”
“알겠습니다.”
“횡령 문제. 부식비 3억원을 횡령한 사실을 물으면 전혀 아니라고 하고 한꺼번에 구입하면 싸고 구입하기 쉬워서 샀는데 그 차액금은 사유재산으로 쓴 것이 아니라 정부 보조금으로 운영하기 어렵기 때문에 복지원 운영에 들어갔다고 답변하세요.”
공판을 앞둔 박인근은 3월14일 오전 10시25분 면회를 온 동생 박중근에게 자신감을 드러냈다. “3월18일이 공판인데 반증 자료가 준비되었으니 걱정 마라. 법과 경우가 살아 있다면 법정에서 모든 것이 밝혀질 것이야.”
1987~1989년 박인근에 대한 7번의 재판이 열린다. 형제복지원의 직원들은 진실만을 말할 것을 선서하며 증인으로 법정에 섰다.
취사반장 김봉표: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변호사: “1년 내내 한끼에 부식은 원칙적으로 5가지였다는데 사실인가요?
취사반장: “네, 사실입니다.”
변호사: “복지원에서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예배를 보고 식사와 직업 보도 훈련, 약 8시간의 노동, 취침 전에도 예배를 보는 등 종교 및 정신 교육과 자활 교육, 노동 등의 규칙 생활을 통하여 수용 당시보다 건강도 좋아지고 정신적으로 나아져가는 경우가 많다는데 사실인가요?”
취사반장: “예, 사실이며 증인도 그러하였습니다.”
검찰은 특가법상 횡령, 특수감금, 외환관리법, 초지법, 건축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박인근에게 징역 15년에 벌금 6억8178만원을 구형했다. 1심은 1987년 6월23일, 박인근에게 징역 10년에 벌금 6억8178만원을 선고했다. 검찰의 구형을 대부분 받아들였다.
이후 박인근의 특수감금 혐의에 대한 유죄 여부를 놓고 대법원의 파기환송과 대구고등법원의 불복(원심 유지)이 수차례 지속됐다. 2심인 대구고법은 1987년 11월12일, 징역 4년을 선고하면서 특수감금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1988년 3월8일 특수감금 혐의를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대구고법은 1988년 7월7일 대법원에 불복해 특수감금을 유죄로 재차 인정했다. 대법원(당시 재판장은 총리 후보였다가 자진 사퇴한 김용준 전 대법관이다)은 11월8일 다시 특수감금을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하면서 이렇게 밝힌다.
“기존 형제복지원 시설만으로 감당하기 어렵게 되어 허가 관청인 부산시장의 시설 일부 이전 및 확장 권유에 따라 울주 작업장 부지를 매수하게 되었다. 형제복지원은 1986년 5월19일 부랑인 수용시설 협소를 이유로 위 울주 작업장으로 직업 보도 사업 일부를 이전하는 이전 계획서를 접수해 부산시장에게 전달했다. 부산시장이 위 부지에 복지시설 건립을 전제로 초지전용허가 추천을 보건사회부 장관에게 요청하여 장관이 1986년 5월20일 추천서 발급을 부산시장에게 통보했다. 이러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울주 작업장 시설은 적법한 형제복지원의 수용시설의 일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형제복지원의 시설장 및 총무직에 있는 피고인들이 수용 중인 피해자들의 야간도주를 방지하기 위하여 그 취침 시간 중 (주간 중의 작업을 시키며 수용한 행위에 관하여는 이미 무죄로 확정이 되었다) 위와 같은 방법으로 (나가지 못하게) 조처한 것은 그에 따른 과정과 목적 수단 및 행위자의 의사 등 제반 사정에 비추어 봤을 때 사회적 상당성이 인정되는 행위라고 못 볼 바 아니어서 형법 제20조에 의하여 그 위법성이 조각된다.”
대구고법은 세번째 상고심인 1989년 3월, 대법원의 뜻을 받아들여 특수감금을 무죄로 판단했다. 박인근의 형량은 1심보다 약 사분의 일로 줄어든 2년6개월이 선고됐다.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의 횡령, 초지법, 건축법, 외국환관리법 위반 혐의는 인정됐다. 박인근은 1989년 7월20일 출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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