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지며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 구금되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법 앞에 모든 국민이 평등하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 피고인은 울산 작업장 부지를 사재를 들여 매입하고 복지원에 기증하였다고 하는데 사재를 털어 매입한 것이 아니라 보조금 8200만원을 착복하고 1984년 농협 범일동 지점에서 멋대로 형제복지원을 연대 보증인으로 내세우고 1억원을 대출받아 땅을 구입한 것입니다. 대출금은 1985년 보조금을 횡령하여 상환했습니다. (…) 이 사건 피고인들과 같은 독버섯이 자라나 사회복지사업의 그늘 아래 기생하게 된 것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이 사회복지사업에 무관심하였고 이 시대의 소외된 사람들에 대하여 눈을 감은 탓이 아닌가 여겨져 유감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김용원 검사의 논고문)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평등하지 않다. 박인근은 영장 없이 수많은 원생들을 복지원에 감금시켰지만, 정작 영장이 발부되어 구속된 박인근은 자유로웠다. 박인근은 경찰관의 집이나 여관에 가서 수갑을 푼 채 목욕을 했으며 측근들을 만나 재판을 준비했다. 구속 기간 박인근이 외출한 시간은 총 5270분으로 4월10일부터 5월16일까지 32회에 걸쳐 외출이 허락됐다. 관절염 치료 때문에 병원에 가야 한다는 박인근의 요구를 검찰이 받아들이자 경찰을 매수한 것이다. 울산에 당시 교도소가 없었기 때문에 박인근은 울산 남부경찰서에 구속 수감 중이었다. 박인근의 측근은 간수장 송아무개 경사에게 우황청심환, 알부민 영양제, 미제 로열젤리, 현금 등 60만원 상당의 뇌물을 주었다. 확인된 금액이 이 정도다. 5월6일 송아무개 경사는 박인근의 동생 박중근과 돈가스를 먹고 자신의 집에 박인근을 데려가 목욕을 허락했다.
언론을 통해 이러한 사실들이 뒤늦게 알려지자 송 경사는 뇌물 수수 혐의로 5월20일 구속되고 경찰 직위에서 파면됐다. 송 경사의 윗선이 어느 정도까지 뇌물 수수에 연루됐는지는 드러나지 않았다. 간수장인 경사 한 명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지휘 감독을 소홀히 한 책임으로 울산 남부경찰서 윤아무개 서장과 허아무개 수사과장, 신아무개 조사계장이 징계를 받았다.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됐다. “박인근이 받은 특혜가 울산 남부경찰서 유치장 간수장 한 사람의 힘으로 과연 가능할 수 있겠느냐.” <동아일보>는 5월27일 보도를 통해 의문을 제기했다.
박인근은 구치소에서도 형제복지원 직원들에게 복지원 현황을 보고하지 않는다고 호통을 치고 환풍기를 복지원 어느 위치에 달아야 할 것인지 세세하게 지시했다. 박인근이 구속 수감 중이던 1987년 2월20일, 전국부랑인시설연합회 회원들은 박 원장을 회장으로 재선출했다. 보사부(보건사회부)는 “유죄 확정될 때까지 결격 사유는 없다”며 사실상 박인근을 변호했다. 박인근은 1985~1986년 복지원 원장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았으며 때로 이자를 변제해주는 방법으로 위세를 과시했다. 인천 삼영원 김아무개 원장 1억원, 마산 경남 종합복지원 박아무개 원장이 박인근에게서 7400만원을 빌려가는 등 전국의 부랑인 시설 원장들이 2년간 빌려간 금액이 4억3400만원이었다. 때로 박인근은 노동력이 필요한 다른 시설에 원생들을 보내주었다. 전국 부랑인시설연합회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자 협회는 뒤늦게 박인근의 회장 선출을 철회했다.
“부산시장 너무하네. 두고 보자.” 2월19일 구속 기간이 길어지자 박인근은 구치소에서 시장에게 분노를 표출했다. 박인근의 면담 내용은 모두 기록되었는데 일부 내용은 면담자의 구체적 인적 사항과 날짜 등이 누락되어 있다.
2월5일 오후 5시50분, 큰아들 박두선과 변호사가 찾아옴.
“내는 추호의 양심의 가책이 없다. 내는 사회복지 사업 관계에 대해 영웅이라 생각한다. 업무지시를 나한테 면회 와서 이야기해라.”
2월5일 오전 11시20분, 동생 박중근과 큰아들 박두선이 찾아옴.
“애들(자녀들) 잘 있느냐. 애들 학교 오고 갈 때 (원생들이) 납치하려고 할지 모르니까 조심해라. 그리고 시장, 장아무개 의원, 구청장에게 탄원서 냈으니까 빨리 제출해라. 변호사는 믿을 수가 없다. 나는 떳떳하다. 내가 뭐 잘못이 있느냐. 장아무개 의원에게 자료를 제출하여 모든 것을 확실히 밝혀야 한다. 빨리 힘을 써라.”
박인근의 국고지원금 횡령액은
무기징역 가능한 11억원이었다
김 검사는 공소장 변경을 원했다
대검은 부산지검 통해 횡령액을
7억 이하로 맞추라고 지시했다 구속된 박인근은 자유로웠다
총 32회 5270분 동안 외출해
목욕을 하고 측근들을 만났다
60만원 상당의 뇌물 받았다는
간수장 송 경사는 파면당했다 “미국에서는 서울의 김 변호사를 선임하라고 했습니다. 안기부 분실장은 전에 하던 그대로 조금도 틀림없이 그대로 운영을 하라고 했습니다. 난로는 나무를 때던 것을 전부 연탄으로 바꾸었습니다.” 2월6일 오후 5시20분, 큰아들 박두선과 변호사가 찾아옴. “정부 여당이 우려하는 일을 겁없이 벌이고 있다. 형사 법령집을 차입해 달라.” “신경 쓸 것 없습니다.” “여론이 딴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횡령 관계에 자신 있습니까.” “나는 추호의 양심의 가책이 없다. (…) 흔들리면 너희들이 죽는다. 안기부장이 정상적으로 작업을 시키라고 했다. 전부 봉제 공장에 투입시켜라. 수용자들에게 원장이 건재하다고 알려라. 공소장에 횡령 액수가 3억 얼마인데 영양사 일지 등을 변호사에게 보여주고 나에게도 한 부 보내라. 서로 말이 맞아야 한다.”
3월6일 오전 10시, 큰아들 박두선과의 면담.
“간식을 들려달라.”
“매일 들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양이 너무 적다 이 말이지.”
“간수 근무자들이 2000원 이상 간식은 끌어주지 않습니다.”
3월21일 오전 11시5분, 동생 박중근이 찾아옴.
“장부 및 통장 관리에 최선을 다해라.”
“그런데 부산시에서도 장부를 공개하자고 하여 걱정입니다.”
“부산시에서는 공개해도 우리에게 협조할 것이다.”
“더는 밝혀지는 것이 두렵습니다.”
“걱정하지 말라. 내가(박인근이) 시키는 대로 해결해 버려라. 오늘 결재 서류 갖고 왔느냐!”
3월23일 오후 6시50분, 부산시청 정아무개 보사국장이 찾아옴.
“지난 토요일 보사국장으로 부임했습니다. 제가 오늘 여기 온 것은 형제복지원의 정상적인 운영을 해결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리고 부임해서 담당 국장으로서 원장 얼굴은 보고 또 사건이 해결되면 같이 만나야 되겠기에 왔습니다. 원장님, 운영을 이 국장에게 맡겨주십시오.”
“절대로 관에 맡길 수 없소. 형제원의 3200여명 가운데 큰 사고가 없었던 것은 운영의 남다른 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온 급한 목적은 임원진 결성 때문입니다.”
“앞으로 3, 4일 후에 결정해 주겠소.”
“임원진 결성이 급합니다. 정상적인 형제원 운영을 위해 구상한 것을 이야기해 주세요. 행정기관에서 절대 복지원에 대해 손 떼지 않습니다.”
“일선에서 물러나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여기 수용(구속)돼 있는 복지원의 김아무개 총무가 석방될 것으로 보고 있어요. 여태까지 기다렸는데 더 기다려 주세요. 시청에서 강압적으로 한다면 곤란하지 않은가요? 물러나는 것은 나의 자의입니다.”
“그러면 원장이 구상하는 4명과 내 이름만 포함해서 5명으로 할 테니 결론을 내려 주세요.”
“국장이 참여하는 것은 관에서 관여하는 것으로 되어 좋지 않습니다. 설립 당시 재산과 현재 재산을 비교해보세요. 우리 가족이 형제복지원을 위해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왔는지 말입니다.”
“심아무개 교수는 어떻겠습니까. 5인 이상의 이사가 있어도 되니까요.”
“5명 이상은 곤란해요. 목적 의식 없이 책임 전가하는 임원진을 구성하는 것은 정말 큰일입니다. 심 교수는 학술과 논리에 능란하지만 그분은 곤란해요.”
5월23일, 아내 임아무개가 찾아옴.
“죽겠다고 죽겠어. 견디기 힘든데. 견디기 힘들어. 당신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받았다고 했잖아.”
“경찰관이 옆에서 듣고 있는데 곤란해요.”
“간수장님이 이렇게 (파면) 된 것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것 아닌가.”
“집에 가서 이사야 54장 1절, 8절 보라고.”
박인근이 1981년 4월20일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포장증. 증서에는 “대한민국 헌법의 규정에 의하여 수여한다”고 돼 있다.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 제공
무기징역 가능한 11억원이었다
김 검사는 공소장 변경을 원했다
대검은 부산지검 통해 횡령액을
7억 이하로 맞추라고 지시했다 구속된 박인근은 자유로웠다
총 32회 5270분 동안 외출해
목욕을 하고 측근들을 만났다
60만원 상당의 뇌물 받았다는
간수장 송 경사는 파면당했다 “미국에서는 서울의 김 변호사를 선임하라고 했습니다. 안기부 분실장은 전에 하던 그대로 조금도 틀림없이 그대로 운영을 하라고 했습니다. 난로는 나무를 때던 것을 전부 연탄으로 바꾸었습니다.” 2월6일 오후 5시20분, 큰아들 박두선과 변호사가 찾아옴. “정부 여당이 우려하는 일을 겁없이 벌이고 있다. 형사 법령집을 차입해 달라.” “신경 쓸 것 없습니다.” “여론이 딴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횡령 관계에 자신 있습니까.” “나는 추호의 양심의 가책이 없다. (…) 흔들리면 너희들이 죽는다. 안기부장이 정상적으로 작업을 시키라고 했다. 전부 봉제 공장에 투입시켜라. 수용자들에게 원장이 건재하다고 알려라. 공소장에 횡령 액수가 3억 얼마인데 영양사 일지 등을 변호사에게 보여주고 나에게도 한 부 보내라. 서로 말이 맞아야 한다.”
형제복지원 원생들이 바닥에 앉아 있는 사진. 박인근은 회고록에 사진을 실으며 “조총련계가 넝마로 가장하여 군사 기밀을 빼내고 있으니 넝마들을 철저히 단속하라는 정부 지시를 받았다. 단속된 넝마 가운데 혐의 없는 부랑인을 수용했다”고 기록했다. 사진이 찍힌 장소와 시점 설명은 회고록에 없다.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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