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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형제복지원 대하 3부작 제1회 ⑧ 거리에서

등록 2014-08-29 20:43수정 2014-09-02 16:28

태길은 원장이 잡혀간 1987년 겨울 복지원 정문을 걸어 나왔다. 경비원 누구도 잡지 않았다. 연고자가 없는 이들은 복지원 철문을 나서는 순간 또다시 굶주림과 부랑자를 보는 냉대를 견뎌야 한다. 태길은 복지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1984년 여름 납치된 뒤 한달도 안 돼 복지원에서 만난 이웃집 아저씨의 도움으로 이미 한번 돌아온 적 있는 집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해 겨울 태길을 다시 형제복지원으로 보냈다. 아버지의 세번째 배우자, 즉 태길의 두번째 새어머니에게 자꾸 반항한다는 이유였다. 3년 만에 돌아온 집에 그 새어머니는 그대로 있었다.

다시 돌아간 집은 따스할 수 없었다. 새어머니와 아버지는 부산 남구 대연동 못골시장 앞에서 돼지국밥 식당을 차렸고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태길의 동생은 식당과 조금 떨어진 곳에 방을 얻어 살고 있었다. 다시 거리에 나섰다. 병원으로 가려고 버스를 탔다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중간에 내렸다. 충무동이었다. 충무동을 쏘다니다 극장 앞에 앉아 있는 한 무더기의 아이들과 만났다. “하나, 둘, 셋, 더듬아!” 아이들이 외쳤다.

더듬이는 태길의 별명이었다. 태길이 뒤돌아보자 아이들이 달려왔다. 이미 복지원에 끌려가기 전 학교에서 퇴학은 당했고 할 일 없이 느려터진 시간을 보내던 태길은 거리에서 복지원 아이들을 만나는 게 차라리 마음 편했다. 그날로 집을 나왔다.

복지원을 나와 몇년이 흘렀다
태길은 용두산 공원에 갔다가
거지가 된 소대장을 만났다
발가락 사이를 긁으라던 그였다
불쌍했다, 십만원을 쥐여 주었다

범천동의 어느 술집에서 만난
아가씨는 복지원 선옥이였다
태길은 선옥이와 살고 싶었다
선옥이는 쪽지를 남기고 떠났다
태길은 완벽히 혼자가 되었다

공장엔 취직하기 무서웠다. 복지원에서의 기억 때문에 창문이 작거나 밀폐된 공간은 공포스러웠다. 부산 용두산공원에서 잠을 자고 거리를 헤매던 시절 숙식 제공을 해주겠다는 낯선 사람을 우연히 만나 봉고차를 탔다. 그 봉고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목포 선착장이었다. 태길은 선착장에서 인신매매되었고 배에서 잡일을 하는 노예가 되었다. 1980년대 한국 사회는 전국적으로 유괴와 납치, 인신매매가 들끓었다. 태길은 섬에서 섬으로 팔려 다녔다. 마지막으로 간 곳은 전남 신안군 평사도였다. 작은 섬에는 파출소가 있고 이웃들도 태길이 노예로 팔려 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모두 묵인했다.

은영은 박인근이 구속된 뒤 다른 고아원에 보내졌다가 그곳을 탈출했다. 형제복지원처럼 아이들을 때리지 않았지만 또다시 가두어지는 것이 공포스러웠다. 숙식을 제공한다는 가발공장에 취업했지만 어느 날 밤, 사장이 성폭행을 시도했다. 은영은 몇만원을 손에 쥔 채 거리로 다시 나왔다. 길거리나 교회, 아파트 옥상, 버스에서 잠을 잤다. 배가 고픈 나머지 슈퍼마켓에 가서 빵 한 개를 훔치려다 들켰다. 경찰에 붙잡혔지만 판사는 은영이 살아왔던 이야기를 듣고 그를 풀어주었다. 또다시 떠돌다 양말공장에 들어갔지만 열여섯 은영에게 사장은 월급을 주지 않았다. 거리에서 2만원이 든 한 여자의 가방에 손을 대려다 붙잡혔다. 은영은 다시 법정에 섰고 안양 소년원으로 옮겨졌다.

복지원을 나온 아이들이 가는 곳은 비슷했다. 은영은 안양 소년원에서 형제복지원 시절 자신을 때렸던 조장 엄기자, 서지예를 만났다. 두 사람을 보자 옛날의 공포심이 타올랐다. 그러나 소년원은 복지원보다 훌륭한 감옥이었다. 적어도 엄기자와 서지예가 함부로 사람들을 때리지 않게 간수가 관리를 해주었고 밥도 먹을 만했다. 은영은 1년6개월 이후 소년원을 출소해 공장을 전전했다.

태길은 섬 노예가 된 지 2년6개월 만에 탈출해 정식으로 뱃사람이 되었다. 벌이도 괜찮았다. 복지원을 나와 몇 년이 흘렀다. 하루는 친구를 만나러 용두산공원에 나갔다 막걸리를 마시던 거지 떼를 만났다. 그를 때리고 호령하던 소대장(10소대장 이태희, 6소대장 아무개, 3소대장 합죽이, 합죽이랑 결혼했던 여자 소대장 아무개 등 총 6명)들이었다. 박인근에게 붙어 아이들을 괴롭히며 살던 그들이 거리의 거지가 되어 술에 취해 있다. 행색은 더럽고 엉망이다. 복지원에 있을 때 태길에게 발가락 사이 무좀을 긁으라고 지시했던 6소대장과 눈이 마주쳤다. 태길이 소대장의 손에 10만원을 쥐여 주었다. “태길아, 고맙데이.”

소대장들이 불쌍했다. 인간은 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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