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님께옵서는 이러한 전상서를 바라지도 않는 분이시오나 한 수용자의 마음이오니 이해하시고 받아주옵길 비옵나이다. 전두환 대통령 각하의 만수무강을 기원하옵니다. 소문에 듣기로 한국에서 최대의 부랑인 보호 시설이 있다기에 형제복지원에서 보호받으면서 의료보험 혜택, 각종 시설을 이용하기 위해서 자원해서 이곳 형제복지원으로 와서 (84년 11월10월) 지금은 건강한 인간으로 탄생한 것이나 다름없이 형제복지원의 혜택을 보호받고 있는 수용자의 몸입니다.
현재 부산에 있는 복지원을 이용하고 있는 자들을 보면 천하에 더러운 거지, 도둑, 가정 파괴자, 악질, 인간 사회 윤리와 도덕을 파괴하는 자, 미친 자, 정부 비방자, 공산주의, 걸거리의 고아, 김일성 노래 부르는 자 등 잡초 같고 쓰레기 같고 사회와 가정에 악질적이며 암적인 부랑인들이 꼴불견으로 경찰에 의뢰되어 복지원의 혜택으로 의식주 해결하고 생활보호를 받고 있는 사정을 말씀드립니다.
전두환 대통령 각하.
박인근 원장님의 신앙심과 애국심에 감명을 받고 있사오며 그 기백과 희생 봉사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사옵나이다. 이 탄원서를 올리게 된 경위는 병든 탄원인이 빛도 이름도 없이 희생 봉사하는 불굴의 사회사업가 원장님께 보다 적극적으로 정부 차원에서 이해와 협조, 사회를 위하여 노력하는 원장님께 용기와 신념을 주시옵길 비옵나이다. 1986년 10월31일. 탄원인 함천수.”
함천수라는 이름의 수용자가 편지를 써서 전두환 대통령에게 보냈다. 수용자 함천수가 자진해서 쓴 것인지 강요에 의한 것인지 그의 이름이 도용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재밌고도 신기한 점은 이 거짓투성이 편지를 세상 모두가 믿는다는 사실이다.
박인근은 신화였다. 몇 차례 복지원이 수용자들을 때린다는 신고가 경찰서에 들어왔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번번이 무산되었다. 박인근은 1981년 보사부 장관 추천과 부산시장의 제청에 의해 국민표창을 받았고 84년에는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받았다. 85년 11월에는 기독교 잡지의 표지 인물로 나와 주리고 목마른 이들과 함께함은 주께서 내게 명령한 사명이라며 장황하게 말하였다. 박인근은 전국부랑인복지시설연합회 회장이었고 텔레비전 드라마의 소재가 될 만큼 스타 사회복지 사업가였다.
“MBC TV가 의욕적으로 기획한 수요 드라머 제2화 <탄생>이 오는 11월3일 방영된다. 2시간짜리 대형 드라머인 <탄생>은 부산시 북구 주례동에 있는 형제복지원 부설 부랑아 임시보호소를 무대로 한 작품. 탈출을 끊임없이 시도하며 인간애를 거부하는 비뚤어진 밑바닥 인생의 실상을 작가 심영식씨와 연출의 이병훈씨가 현지 취재를 통해 실감 있게 구성한 이 작품은 등장인물도 대부분 그들의 실명을 사용했다. 연출자 이씨와 총무 역을 맡은 임문수는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그곳 원생들과 이틀 밤을 함께 생활하기도 했다. 전운 김무생 길용우 김윤경 엄유신 박은수 이계인 등이 출연한다.”(경향신문 1982년 10월30일)
1980년대에는 정부와 언론이 만든 신화가 무척이나 강력하며 권위적이었다. 수용자 몇 명이 바깥에 나가서 떠드는 말들은 땅에 떨어지기 일쑤였다.
원장 박인근의 얼굴은 복지원 철문 안과 밖이 달랐다. 착한 사마리아인은 높은 철창 안에서 성주이며 재판장이자 독재자였다. 원장 박인근의 권위와 기에 모두가 눌렸다. 박인근은 1년에 한번 운동회가 열리는 날이면 운동장 스탠드 높은 저 끝에 앉아서 3000명의 수용자들로부터 차례차례 경례를 받았다. 성벽의 저 높은 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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