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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형제복지원 대하 3부작 제1회 ④ 은영의 사탕

등록 2014-08-29 20:35수정 2014-09-02 16:24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mayseoul@naver.com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mayseoul@naver.com
유혹의 순간이 다가왔다. 태길이 아동 소대 조장이 되기 전, 그러니까 탈출에 실패하고 원장에게 실컷 두드려 맞은 뒤 근신 소대에 배치돼 온종일 돌을 깨는 고역을 하던 때였다.

“오늘 밤 한번 대주면 근신 소대에서 나가게 해 줄게. 화장실로 따라온나.”

태길처럼 부산 영도가 고향이라던 6소대(근신 소대) 조장이 그에게 슬며시 제안을 해왔다. 태길은 그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평소 같으면 무시했을 그 덫이 밀물처럼 다가와 빠져나가지 않았다. 매일 반복되는 돌 깨는 작업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돌을 깨는 손은 감각을 잃을 만큼 얼얼해졌고 조금이라도 꾀를 부리면 관리자들로부터 얻어터졌다. 화장실에 갈 때만 손에 쥔 망치를 놓았다. 엉덩이를 대준다면, 잠깐 내가 아닌 내가 된다면 이 지옥에서 자유롭게 될 것 같았다.

소대의 불이 꺼지고 모두들 자리에 누웠다. 철제 침대에 누운 태길도 눈을 감았다. 화장실로 따라오라던 조장의 목소리가 마음속에서 되풀이된다. 두 마음 사이에서 갈등했지만 팬티를 벗어 편해지고 싶지는 않았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전날 잠이 든 모양이다. 태길은 조장 표정을 살폈다. 별다른 변화가 없다. 소대장은 오늘 중대 발표를 한다고 했다. “84-4218번, 아동 소대로 이동!” 84-4218번은 태길의 수용 번호다. 알고 보니 태길이 오늘 근신 소대에서 아동 소대로 이동한다는 사실을 조장이 미리 알고 유혹한 것이다. 어젯밤 엉덩이를 까든 안 까든 이 무시무시한 근신 소대에서 떠날 수 있었다.

소대장 충식은 아이들을 때리다가도 살갗을 쓰다듬는다. 소대장 충식이 남자 아동을 담당하기 전에는 여자 아동 소대를 관리했다. 충식은 열살짜리부터 가슴이 나오기 시작하는 열 몇 살짜리까지 여자아이들을 불러 침대에 앉혔다. 아이의 추리닝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여기저기를 만졌다. 어린 나이에 복지원에 납치된 아이들은 성교육을 받지 못했다. 충식이 무엇을 하는지, 왜 옷에 손을 넣는지 아이들은 알지 못했다.

폭행이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지 않듯 성추행도 눈을 피하지 않았다. 60여명이 함께 쓰는 여자아이들의 소대에서 충식이 아이의 옷에 손을 넣을 때마다 다른 수십개의 눈동자들이 그를 바라보았다.

어느 날 아침에 보면 충식의 침대에서 여자아이와 충식이 함께 누워 있었다. 충식은 아이의 살을 만지다가도 심드렁한 표정으로 명령했다. “가.” 아이는 시키는 대로 충식의 침대에서 자기 자리로 이동했다. 소대장들은 자신들의 구역에서 작은 박인근이었다.

은영은 열살이던 1982년 부산 사하구 괴정동에서 내복 차림으로 엄마 심부름을 하러 길을 나섰다. 그리고 다시는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검은 차가 다가와 집에 데려다 준다고 하기에 싫다고 했더니 억지로 태웠다. 복지원에 처음 들어온 날 어른 한명이 다가와 몽둥이를 들고 엉덩이와 어깨를 내리쳤다. 여자 아동 소대로 옮겨져 몇날 며칠을 울자 아이들이 시끄럽다며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고 뺨을 때렸다. 국방색 모포를 뒤집어씌우고는 발길질을 해댔다. 나중에는 때리면 때리나 보다 그렇게 되었다.

하루는 은영이 사택 앞 흙바닥에 앉아 쉬고 있었다. 복지원의 새마음교회 주일학교 교사 박봉석이 다가와 은영의 옆에 앉았다. “너 참 예쁘게 생겼구나.” 교사 박봉석은 은영의 볼에 입을 맞추고선 옷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아직 나오지도 않은 가슴을 더듬더니 팬티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만지기를 반복했다. 박봉석은 손을 빼더니 눈깔사탕 하나를 은영의 손에 쥐여 주었다. “이거 먹어.” 은영은 눈깔사탕을 손에 쥐었다.

폭력은 여자아이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충식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소대장들은 매번 바뀌었는데 어떤 소대장은 여자아이들을 어른 군인처럼 대했다. 심하게 맞아 다쳐서야 때리지 않았다. 소대장이 아이들을 때리고 “일어서”라고 명령했을 때에도 움직이지 못하면 가만히 놔뒀다. 그조차 상황에 따라 매일 달라졌다. 소대장은 바닥에 엎드려 기진맥진한 여자아이를 발로 툭툭 쳤다.

“이 새끼가 꾀병을 부리네.”

소대장은 아이를 억지로 일으켜 세워 손바닥으로 세차게 뺨을 후려쳤다.

“너 아파, 안 아파?”

“안 아픕니다. 괜찮습니다.”

“안 아프지?”

“네.”

“똑바로 서. 새꺄.”

악마의 발길질은 또다시 시작됐다. 소대장들은 모두 복지원의 수용자 출신이었다. 일부는 여자, 남자 짝을 이뤄 복지원에서 합동결혼식을 올렸다. 원장 박인근의 눈에 든 일부 소대장은 원장의 사택에서 살 수 있는 영광이 주어졌다.

어떤 언니들의 배는 달처럼 둥글게 부풀었다가 가늘어졌다. 둥근 배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은영은 듣지 못했다. 배가 볼록 나온 언니가 소대장 발에 걷어차여 바지 밑에서 피가 나오는 걸 보았다. 여자 아동 소대에서 가장 바보 같았던 영숙 언니의 배는 몇 번이나 부풀어 올랐다가 꺼지기를 반복했다고 했다.

조장 엄기자와 엄기자의 ‘꼬붕’인 서지예는 늘 붙어 다녔다. 덩치가 크고 무서운 얼굴의 조장 엄기자도 소대장 앞에서는 순한 양이었다. 시키는 것은 모두 수행하였다.

“어서 벌려 봐.”

엄기자와 서지예는 영숙 언니에게 팬티를 벗고 성기를 보이라고 명령했다. 엄기자가 소대장에게 그러하듯, 영숙 언니는 사람들이 시키는 것을 무엇이든 했다. 엄기자와 서지예는 막대기로 영숙의 성기를 툭툭 치며 키득댔다. “이게 걸레지, 사람 거냐?” 영숙의 성기는 쭈그러진 할머니 것처럼 축 벌어져 있다.

영숙 언니가 정신을 놓는 날이 많아졌다. 아무 데서나 훌훌 옷을 벗어던지며 괴성을 질렀다. 여자아이들은 옷을 벗는 영숙 언니에게 발길질을 했다. 영숙은 아이들 한가운데서 피를 흘리면서도 자꾸 옷을 벗는다. 살결에 붉은 피가 돋아난 영숙 언니가 꽃처럼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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