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대하 3부작] 제1회 : 열다섯살 조장 태길이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충격적 실화’
지옥 같은 삶에 저당잡힌 자들의 이야기
우리는 형제복지원을 정말 알고 있는 것일까?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충격적 실화’
지옥 같은 삶에 저당잡힌 자들의 이야기
우리는 형제복지원을 정말 알고 있는 것일까?
형제복지원은 알려진 사건이다. ‘감금, 가혹행위, 노동력 착취, 성적 학대, 인권 유린이 잔혹했으며 탈출하다 실패한 원생이 맞다가 사망하기도 했다. 1975~1986년 형제복지원에서 숨진 사망자는 513명이다.’ 우리가 형제복지원에 대해 아는 사실이다.
1987년 한 해에 형제복지원에 수용됐던 원생은 3000여명이다. 1960년 ‘형제육아원’으로 시작돼 원장 박인근씨가 특수감금 혐의 등으로 구속된 1987년까지 이곳에 갇혔던 수만명의 사람들이 대한민국에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박인근씨의 특수감금 혐의는 대법원의 파기환송과 대구고법의 불복을 거치면서 7번의 판결 끝에 1989년 무죄를 받았다. 횡령 등의 혐의만 유죄로 인정됐다. 형제복지원은 법인명을 수차례 바꾸며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국가는 1975년 내무부 훈령 410호를 만들어 부랑인을 복지원 등에 감금하는 것을 합법화했다. 1986년 단속으로 수용된 부랑인 수만 1만6125명. 거리를 배회하는 자들은 신체의 자유를 가지며 법률 절차에 의하지 않고는 체포·구금되지 않는다는 헌법과 사회로부터 배제된 국민이었다. 군사정권 시기에 민주화 운동이 아닌, 부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감금되고 사망한 자들에 대한 역사적 이해와 평가는 거의 전무하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누구나 알고 있음에도 아무것도 해결되지 못했다. 진상 규명을 위한 형제복지원법안이 새정치민주연합 진선미 의원 등 55명에 의해 지난 3월 발의됐지만 관계 부처인 안전행정부와 보건복지부는 난색을 표했다. 법안은 일단 보건복지위원회에 배정이 됐다가 철회됐고, 지난 7월 안전행정위원회에 재발의됐다. 보건복지위에 배정이 되면 국가 폭력이 아닌, 복지재단에 의한 단순 사건으로 처리될 가능성이 높고 진상 조사 권한이 약하다는 이유였다. 법안은 아직 통과되지 못했다.
형제복지원 3부작 시리즈는 부랑인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을 배제하고 감금을 합법화했으며 전직 대법관과 주요 정치인들이 구속된 박인근씨를 풀어주기 위해 도왔던, 부조리한 한국의 1987년을 돌아본다. 그러나 사회적 관점에서만 기록하지 않았다. 인간이 감금된다는 것, 가두어진 공간에서 변해가는 것들을 주목했다. 형제복지원의 대다수 관리자는 감금됐다가 길들여지고 원장의 체제에 찬동한 사람들이었다. 형제복지원에 수용되었다가 탈출에 실패했던 박태길(43)씨 등 5명을 지난 4월부터 8월까지 만났다. 피해자인 박태길씨는 수용 기간 가운데 어느 시점에선 가해자가 되었다. 형제복지원에서 시간을 잃어버린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1부에 싣는다. 우리는 형제복지원을 정말 알고 있는 것일까.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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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푸른 창문 --------
쇠창살 밖으로 검은 하늘에 흰 달이 걸려 있다. 희미하게 달빛을 받은 캄캄한 쇠창살 안에는 칼로 자른 듯 엄격하게 줄지은 2층침대마다 아이들이 반듯하게 누워 있다. 낮의 노동과 잔혹한 질서를 잊고 80명의 아이들은 허공을 향해 눈을 감았다. ②굶주림 --------
생명은 질기다. 지옥 끝으로 떨어져도 악마들에게서 살아남는 법을 배운다. 때리고 맞는 장면을 매일 보다 보면 어느덧 견디게 되고 무뎌졌다. 시간은 사람을 익숙하게 만들었다. 식당에서 수용자들이 맞는 걸 보아도 배가 고팠고 배가 고프면 숟가락을 들고 식판에서 밥을 떠먹었다. 복지원에서 사람이 두들겨 맞는 일은 은밀하지 않다. ③프로야구와 장례식 --------
불행은 지극히 평범한 날에 예고 없이 찾아온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고 살던 집이 사라지며 믿었던 관계들이 파괴된다. 불행이 뿌리째 뽑아버린 인생들은 토양을 잃고 차가운 아스팔트 도로나 도시의 아무 곳에 내던져진다. 헐벗은 것들이 다시 뿌리를 내려 보지만 쓰레기나 아스팔트를 뚫으려 할수록 상처가 생긴다. ④은영의 사탕 --------
유혹의 순간이 다가왔다. 태길이 아동 소대 조장이 되기 전, 그러니까 탈출에 실패하고 원장에게 실컷 두드려 맞은 뒤 근신 소대에 배치돼 온종일 돌을 깨는 고역을 하던 때였다. ⑤투견 --------
“때려.” 여자 아동 소대에 신입 아이가 한명 들어왔다. 은영이 몇 달 전 들어왔을 때 그랬던 것처럼 울며 내보내 달라고 떼를 쓴다. 아직 형제복지원이 어떤 곳인지 감을 잡지 못한 것 같다. 작고 힘없는 은영에게 조장 엄기자가 명령한다. “저 애 때리라고.” ⑥원장님 --------
함천수라는 이름의 수용자가 편지를 써서 전두환 대통령에게 보냈다. 수용자 함천수가 자진해서 쓴 것인지 강요에 의한 것인지 그의 이름이 도용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재밌고도 신기한 점은 이 거짓투성이 편지를 세상 모두가 믿는다는 사실이다. ⑦붕괴 --------
원장 박인근이 한순간 사라졌다. 1987년 1월16일이다. 성주가 증발한 복지원은 혼란에 휩싸였다. 무자비한 권력자가 사라진 공간에 곧바로 평화가 찾아오지는 않았다. 복지원은 무질서와 혼란에 빠졌고 한꺼번에 거리로 쏟아져 나온 수용자들을 사회는 불안해했다. 자유는 비싼 대가를 요구했다. ⑧거리에서 --------
태길은 원장이 잡혀간 1987년 겨울 복지원 정문을 걸어 나왔다. 경비원 누구도 잡지 않았다. 연고자가 없는 이들은 복지원 철문을 나서는 순간 또다시 굶주림과 부랑자를 보는 냉대를 견뎌야 한다. 태길은 복지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⑨선옥이 --------
1992년 어느 밤 태길은 부산 길을 헤맸다.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보름씩 잠을 자며 고등어나 조기를 잡았다. 뱃사람 태길이 한바탕 전쟁을 치르면 숨을 헐떡이며 죽어가는 생선들이 배 위에 실렸다. 바다와 물고기는 태길에게 과거를 묻지 않았다. 태길이 육지에 돌아올 때면 맞고 때리고 피 흘리며 사라진 사람들, 갇혀 살던 시절의 기억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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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푸른 창문 --------
쇠창살 밖으로 검은 하늘에 흰 달이 걸려 있다. 희미하게 달빛을 받은 캄캄한 쇠창살 안에는 칼로 자른 듯 엄격하게 줄지은 2층침대마다 아이들이 반듯하게 누워 있다. 낮의 노동과 잔혹한 질서를 잊고 80명의 아이들은 허공을 향해 눈을 감았다. ②굶주림 --------
생명은 질기다. 지옥 끝으로 떨어져도 악마들에게서 살아남는 법을 배운다. 때리고 맞는 장면을 매일 보다 보면 어느덧 견디게 되고 무뎌졌다. 시간은 사람을 익숙하게 만들었다. 식당에서 수용자들이 맞는 걸 보아도 배가 고팠고 배가 고프면 숟가락을 들고 식판에서 밥을 떠먹었다. 복지원에서 사람이 두들겨 맞는 일은 은밀하지 않다. ③프로야구와 장례식 --------
불행은 지극히 평범한 날에 예고 없이 찾아온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고 살던 집이 사라지며 믿었던 관계들이 파괴된다. 불행이 뿌리째 뽑아버린 인생들은 토양을 잃고 차가운 아스팔트 도로나 도시의 아무 곳에 내던져진다. 헐벗은 것들이 다시 뿌리를 내려 보지만 쓰레기나 아스팔트를 뚫으려 할수록 상처가 생긴다. ④은영의 사탕 --------
유혹의 순간이 다가왔다. 태길이 아동 소대 조장이 되기 전, 그러니까 탈출에 실패하고 원장에게 실컷 두드려 맞은 뒤 근신 소대에 배치돼 온종일 돌을 깨는 고역을 하던 때였다. ⑤투견 --------
“때려.” 여자 아동 소대에 신입 아이가 한명 들어왔다. 은영이 몇 달 전 들어왔을 때 그랬던 것처럼 울며 내보내 달라고 떼를 쓴다. 아직 형제복지원이 어떤 곳인지 감을 잡지 못한 것 같다. 작고 힘없는 은영에게 조장 엄기자가 명령한다. “저 애 때리라고.” ⑥원장님 --------
함천수라는 이름의 수용자가 편지를 써서 전두환 대통령에게 보냈다. 수용자 함천수가 자진해서 쓴 것인지 강요에 의한 것인지 그의 이름이 도용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재밌고도 신기한 점은 이 거짓투성이 편지를 세상 모두가 믿는다는 사실이다. ⑦붕괴 --------
원장 박인근이 한순간 사라졌다. 1987년 1월16일이다. 성주가 증발한 복지원은 혼란에 휩싸였다. 무자비한 권력자가 사라진 공간에 곧바로 평화가 찾아오지는 않았다. 복지원은 무질서와 혼란에 빠졌고 한꺼번에 거리로 쏟아져 나온 수용자들을 사회는 불안해했다. 자유는 비싼 대가를 요구했다. ⑧거리에서 --------
태길은 원장이 잡혀간 1987년 겨울 복지원 정문을 걸어 나왔다. 경비원 누구도 잡지 않았다. 연고자가 없는 이들은 복지원 철문을 나서는 순간 또다시 굶주림과 부랑자를 보는 냉대를 견뎌야 한다. 태길은 복지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⑨선옥이 --------
1992년 어느 밤 태길은 부산 길을 헤맸다.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보름씩 잠을 자며 고등어나 조기를 잡았다. 뱃사람 태길이 한바탕 전쟁을 치르면 숨을 헐떡이며 죽어가는 생선들이 배 위에 실렸다. 바다와 물고기는 태길에게 과거를 묻지 않았다. 태길이 육지에 돌아올 때면 맞고 때리고 피 흘리며 사라진 사람들, 갇혀 살던 시절의 기억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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