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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대통령 비자금 사기에 또 속으셨나요?

등록 2014-08-26 19:44수정 2014-08-26 22:13

‘전직 대통령 금괴·비자금’ 속여
거액 가로챈 사기범들 붙잡혀
뻔한 수법에도 피해 끊이지 않아
전두환 비자금 사례 믿음에 한몫
“일확천금 노리는 심리도 작용”
‘전직 대통령 비자금’ 사기 사건들엔 일정한 ‘공식’이 있다. 수조원에 이르는 터무니없는 금액, 영화에나 나올 법한 금괴나 채권 또는 구권화폐 등의 ‘소품’, 당대 유력 인사와의 인맥 과시가 빠지지 않는다. 사기범들은 끊임없이 같은 수법으로 속이고, 피해자들은 뻔히 알려진 수법임에도 번번이 당한다. 사람들은 왜 전직 대통령과 비자금이라는 말의 조합에 그렇게도 쉽게 미혹당하는 것일까.

자영업을 하는 문아무개(41)씨는 2012년 12월 평소 알고 지내던 정아무개(56)씨한테서 전직 대통령들이 비밀리에 쌓아놓았다는 금괴 이야기를 들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 때부터 축적한 금괴 1t을 시가의 절반 가격인 300억원에 살 기회가 있다”는 것이었다. 정씨는 “함께 금괴를 사서 되팔아 돈을 나누자”고 문씨를 꼬드기면서 “금괴 구입 자금을 빌리려면 먼저 이자 1억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문씨는 순진하게도 아무 데서나 구할 수 있는 금괴 사진과 300억원짜리 위조 예금거래 증명서 한 장만을 본 뒤 정씨에게 덜컥 1억원을 건넸다.

돈을 챙긴 정씨는 ‘당연히’ 연락을 끊었다. 그사이 정씨는 다른 2명한테서도 같은 수법으로 수천만원씩을 가로챘다. 서울 강동경찰서는 26일 정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앞서 25일에는 결혼정보회사에서 만난 여성에게 ‘박정희·전두환 등 전직 대통령들의 비자금 수조원을 관리하는 비용이 필요하다’고 속여 5000만원을 뜯어낸 60대가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 6월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보관하고 있다고 사기를 친 김아무개(59)씨가 검거됐다.

뻔한 각본임에도 끊이지 않는 전직 대통령 비자금 사기 사건의 ‘생명력’에는 이유가 있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과거 대통령 비자금 사건을 경험한 나이 든 사람들은 아직도 전직 대통령과 관련된 검은돈이 있을 가능성을 믿을 수 있다”고 했다. 실제 이런 사기 사건의 피해자들은 비교적 나이 든 사람이 많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사기꾼들의 얘기가 완전히 허구는 아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이 있었고, 거기서 얻을 수 있는 ‘부당이득’이 상당히 컸다. 한마디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심리”라는 것이다. 금괴나 증권 등 다소 사리에 맞지 않는데도 그런 비자금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 배경에 대해서도 “황당한 걸 보여줘도, 전직 대통령들은 합법적이지 않은 비자금이 워낙 많다 보니 증권 등의 형태로도 존재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특히 ‘비자금 신비주의’에 대한 믿음이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비자금의 정확한 액수를 알 수 없다 보니 그런 (거액의) 돈이 실제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아직 추징되지 않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1182억여원에 이르지만, 사람들은 이 돈뿐만 아니라 전 전 대통령 일가가 숨겨놓은 불법재산이 더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추징금은 법원에서 확정된 액수일 뿐이다. 실제로 추징을 담당하는 검찰도 또 다른 비자금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다.

공정한 경쟁은 없다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불신도 ‘검은 일확천금’의 유혹에 넘어가도록 만드는 배경이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은 “양극화로 사회의 형평성이 떨어지고 공정 경쟁이 안 되는 사회가 되다 보니 심리적으로 비자금과 같은 일종의 ‘투기적 수단’을 찾아나서는 것”이라고 했다.

전직 대통령 비자금 사기 사건을 수사한 한 경찰관은 이를 보이스피싱 범죄에 견줬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을 보면 왜 사기를 당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한다. 마찬가지다. 진짜 전직 대통령과 관련됐는지, 진짜 비자금이 있는지 의심을 하더라도 ‘보안 때문에 알려줄 수 없다’고 하면 확인할 길이 없어진다. 그런데 사실 국가기관이 하는 일이 다 그렇지 않았나.” ‘불통 사회’가 결국 이런 비자금의 존재를 ‘사실’로 믿게 만든다는 얘기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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