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강정마을·쌍용차…
‘소외된 이웃들’ 남다른 소회
‘소외된 이웃들’ 남다른 소회
“아직도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어요.”
18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미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강일출(87) 할머니의 목소리는 미사가 끝난 뒤에도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교황이 직접 앞으로 와서 손을 일일이 잡아주셔서 감격했어요. 우리가 죽기 전에 일본 정부가 사죄할 수 있도록 교황께서 기도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강 할머니는 이날 교황에게 선물로 받은 묵주를 목에 건 채 집으로 돌아갔다. 이용수(87) 할머니도 교황의 묵주를 손에 꼭 쥐었다. “평화를 상징하는 묵주다. 교황께서 우리 문제를 해결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게 아닌가 싶다. 죽을 때까지 갖고 있겠다”고 했다. 이 할머니는 “교황은 평화를 말하면서 미래 후손들에게 희망도 주셨다. 일본 아베 총리가 평화적 해결에 나서도록 교황님께서 나서주시면 좋겠다”고도 했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제대로 해주지 못했던 ‘위로’와 ‘희망’을 교황에게서 받았다는 이들은 더 있다. 경남 밀양에서 초고압 송전탑 건설 반대 활동을 하고 있는 마을주민 정임출(72), 최민자(60), 한옥순(67)씨는 교황에게 밀양 주민들의 소망이 담긴 편지와 ‘765㎸ 아웃’이라고 적힌 반팔 티셔츠를 선물했다. 정씨는 “교황님이 송전탑 건설 반대에 나선 우리를 이해해줬다. 그동안 상처받고 고통받은 우리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말씀이 감동적이었다.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고 했다. 한씨는 “불의에 맞서서 싸우라는 교황의 말에 힘을 얻었다. 그분의 말씀을 마음에 담아 가겠다. 박근혜 대통령도 교황처럼 우리와 소통하게 되면 송전탑 건설 반대의 뜻을 알 수 있을 텐데 안타깝다”고도 했다.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제주 강정마을 주민 김리량(41)씨는 “가톨릭 신자로서는 평생 한번 있을지 모르는 미사에 참석해 은총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교황님의 강론을 들을 때는 눈물이 많이 났다”고 했다. 고권일(51) 해군기지 반대대책위원장은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정의가 실현된 상태’라는 교황의 말씀에 감동을 받았다. 마치 우리의 싸움을 의식한 말씀처럼 느꼈다. 교황이 강정마을에서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들에게 ‘그대들은 평화를 위한 최고의 임무를 수행중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정말 기뻤다”고 했다. 강정마을 주민들은 강정과 밀양의 주민들, 세월호 희생자 가족 등이 함께 손을 잡고 있는 그림을 교구를 통해 교황 쪽에 전달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인 김득중(44) 지부장은 “교황께서 공식 초청한 미사에 해고노동자들이 참석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많은 분들로부터 격려를 받았다. 이제는 한국 정부와 정치권이 교황의 뜻을 되새겨 쌍용차 해고자와 비정규직 등 고통받는 노동자의 현실을 개선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날 미사에는 이주노동자, 새터민, 다문화가족 대표 등도 참석했다. 새터민 오아무개(36)씨는 “교황의 소통은 언론에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라 진심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감동을 느꼈다”고 했다. 오씨는 “교황께서 북한을 한번 방문해주셨으면 좋겠다. 북한에서 남북화해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면 한반도의 분위기도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송호균 김규남 기자, 밀양/김영동 기자
제주/허호준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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