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적 살해의도 없어도 살인죄”
육군 28사단 윤아무개(21) 일병 사망 사건을 대법원의 유사 사건 판례에 견줘 보면, 28사단 헌병대와 군검찰이 애초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가능성을 검토조차 하지 않은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2006년 대법원은 피해자를 45일간 방에 감금한 상태에서 온몸을 폭행해 췌장 파열 등으로 숨지게 한 이들에게 “적어도 살인에 대한 미필적 고의는 있었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이들은 “범행 당시 살인 의도는 없었고 단지 상해나 폭행 의도만 있었을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 △범행 동기 △공격 부위와 반복성 △사망 가능성 △흉기의 유무와 용법 등을 종합한 뒤 “살인죄는 반드시 계획적인 살해 의도가 있어야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계속된 폭행으로 실신을 했는데도 폭행을 중단하지 않은 점 등에 비춰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윤 일병 사망 사건의 주범 격인 이아무개(26) 병장은 지난 3월8일부터 4월6일까지 자신의 휴가 기간을 빼고는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의무반에서 윤 일병을 구타했다. 가슴과 허벅지, 머리 등 전신을 손과 신발을 신은 발, 대걸레 자루 등으로 걷어차고 때렸다. 한 목격자는 “윤 일병이 하루 평균 90여대를 맞았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입에 냉동식품을 가득 채운 뒤 호흡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하기도 했다.
폭행 가담 정도가 덜한 가해 병사 쪽 변호인은 이 병장의 범행 동기, 즉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의심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병장은 4월5일 밤 10시부터 이튿날 새벽 2시까지 윤 일병을 집중 폭행했다. ‘나에게 감명 깊게 들었던 말 5가지만 말해 보라’는 질문에 윤 일병이 “(이 병장의) 아버지가 깡패였다는 이야기”라고 답하자, 이 병장은 ‘나를 놀린다’며 누워 있는 윤 일병을 발로 밟고 폭행했다. 윤 일병이 의식을 잃고 쓰러지기 직전인 4월6일 오후 4시13분께 ‘아버지가 깡패였다는 이야기를 왜 꺼냈느냐’며 다시 윤 일병의 양손을 잡고 저항할 수 없도록 한 뒤 발로 배를 걷어차기도 했다. 병영생활기록부의 지휘관 면담기록을 보면, 이 병장은 아버지에 대해 ‘불같은 성격, 카리스마, 10년간 연락 두절’이라고 말한 것으로 나온다. 윤 일병이 무심코 했을 ‘깡패’ 얘기가 이 병장의 공격성을 극대화시켰을 수 있는 상황이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헌병은 물론 군검찰도 이 대목을 기소 과정에서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