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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노래 부르는 이유요? 서예 보급하기 위해서죠”

등록 2014-08-06 18:47수정 2015-01-15 14:42

서예와 전각에 40여년 몰두한 국당 조성주씨가 서예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세번째 음반을 내놓았다. 국당이 서울 낙원동 자신의 작업실에서 붓글씨를 쓰고 있는 모습.
서예와 전각에 40여년 몰두한 국당 조성주씨가 서예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세번째 음반을 내놓았다. 국당이 서울 낙원동 자신의 작업실에서 붓글씨를 쓰고 있는 모습.
[짬] 3집 음반 낸 서예가 국당 조성주씨

손끝에 기를 모아 붓을 잡는다. 연약한 붓털은 검은 먹의 옷을 입은 채 그의 기를 받아 강하게 무장한다. 넓은 화선지는 그의 연무장. 단숨에 내달리는 그의 붓끝에 심오하고 깊은 동양철학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디지털 시대에 점점 존재감이 희미해지는 서예가의 길을 가고 있지만 서예에 대한 그의 사랑과 정열은 사그라질 줄 모른다. 그래서 마이크를 잡았다. 벌써 세번째 음반이다. 음유 서예가로 불리길 원하는 국당 조성주(63·사진)씨가 별나게 노래하는 이유는 바로 서예를 보급하기 위해서이다. 서예와 노래는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까?

불교 금강경 5440자 돌에 새겨
1997년 한국 기네스북에 등재
서예에 전통무용 접목 실험도

젊은시절 매료된 음악 못잊어
2006년 57살때 첫 음반 발표
“가을에 ‘서예 콘서트’ 선뵐게요”

“서예와 음악은 흐르는 맥이 같아요. 빠름과 느림이 있고, 높고 낮음이 있어요. 물론 강함과 약함의 조화가 노래의 맛을 살리듯, 붓글씨의 아름다움을 만들어주죠.”

실제 그의 노래는 대중음악이다. 서예가가 부른 노래라고 고상함을 기대하면 실망이다. 노래방에서 흥에 겨워 부를 노래들이다. 누구나 좋아하게 만들고 싶고,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한다.

3집에 담긴 노래는 ‘내 나이가 어때서’ ‘창밖의 여자’ ‘네 박자’ 등 이미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노래를 리메이크했고, 자신의 고향인 충남 서천의 갈대밭을 노래한 ‘신성리 갈대밭 연가’를 타이틀곡으로 내놓았다. 신성리 갈대밭은 영화 <공동경비구역 제이에스에이(JSA)>를 촬영한 곳으로 국내 4대 갈대밭의 하나로 꼽힌다. 이왕이면 고향의 갈대밭을 홍보하고픈 마음에서 자신이 직접 작사했다.

국내 서예계에서 국당은 ‘이단아’이다. 중견 서예가로 자리잡고 있지만 그는 젊은 시절 서예대전에서 대상이나 우수상 한번 타지 못했다. 한번 응모에 수십명 받는 특선을 두번 받았을 뿐이다.

국당이 노래를 녹음하는 모습.
국당이 노래를 녹음하는 모습.
서천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며 서예를 처음 접한 국당은 고교 시절 서울로 올라와 서예를 독학했다. 그 당시 국회의원 선거에서 선거운동을 위해 유권자에게 주는 호소문 편지를 직접 쓰는 아르바이트를 할 정도로 글씨를 잘 쓴 국당은 20대 후반부터 구당 여원구 선생 문하로 들어가 서예를 본격적으로 배웠다.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0년 정도 회사 생활을 하다 30대 중반에 서예학원을 차렸다. 생계를 이어가기 힘들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관심이 있던 전각(돌에 글자를 새기는 것)에 빠져들었다. 1997년에는 10년에 걸친 금강경 5440자 전각 작업을 마치고 한국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2012년에는 법화경 전문 7만여자를 2000일(6년여)에 걸쳐 돌에 새기는 초인적인 인내력과 예술혼을 보여주었다. 5만톤 분량의 돌에 단순히 불경을 새기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적 요소를 결합해 서(書)·화(畵)·인(印)·조각·디자인이라는 동서양의 미학적 요소를 총동원한 종합예술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돌에 판 글씨와 그림을 퍼즐과 모자이크 방식으로 디자인하는 파격적인 작품을 만든 것이다. 하루 15시간 돌과 씨름하다 보니 지문이 다 없어질 정도였다.

그의 분출하는 예술에 대한 뜨거움은 패션디자이너 이상봉씨와 연결돼, 그가 쓴 한글 붓글씨체가 이씨의 옷에 새겨졌다. 또 사람 크기의 붓을 잡고 화선지 위에 올라가서 글씨를 쓰는 서예 퍼포먼스는 서예의 본고장 중국에서 갈채를 받기도 했다. 그는 전통의 서예 틀을 깬 파격적인 글씨체를 담은 ‘필묵의 자유여행’이라는 캘리그래피전을 열기도 했다. 또 한국의 전통 무용과 서예를 같은 무대에 올리는 실험도 했다.

여기에 노래까지 얹힌다. 판소리와 사물놀이, 색소폰 등에 빠져 운영하던 서예학원을 잠시 문닫기도 했던 국당은 2006년 나이 57살 때 첫 음반 <궤적1>을 내고, 2008년에 2집 <궤적2>를 내놓았다. 젊은 시절 자신을 강하게 유혹하던 음악에 화답을 한 것이다. 뒤늦게 37살에 대학에 입학해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내친김에 대학원에 들어가 동양예술학 박사 학위를 딴 국당은 서울대 등 10여개 대학에서 서예와 전각을 강의했다.

다양한 예술에 대한 접근은 서예의 대중화를 위한 것이라고 국당은 이야기한다. “서예를 전공하는 학과가 있는 대학이 거의 사라지는 등 전통문화와 인문학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줄어들고 있어요. 대중음악을 통해서라도 서예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싶어요.” 그는 서예와 노래가 어우러지는 ‘서예 콘서트’를 가을에 선보일 예정이다.

다시 붓을 잡는다. 날아오는 화살을 떨쳐내는 무림 고수의 칼끝처럼 화선지를 빛의 속도로 붓끝이 지나간다. 단숨이다.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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