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희정(38)씨
사고 당일 여학생 31명 돌본 서거차도 홍희정씨
“장난 전화인 줄 알았어요. 남편이 평소에 장난을 잘 치거든요. 그런데 해경에서 400명을 수용할 장소를 마련하라고 해서 그제야 사고가 난 걸 알게 됐죠.”
전남 진도군 조도면 서거차도에 사는 홍희정(38)씨가 남편 이형영(43)씨한테서 ‘세월호 침몰’ 전화를 받은 것은 4월16일 오전 9시가 조금 지나서였다. 홍씨는 면사무소 거차출장소 직원이고, 남편은 한국전력 서거차도 발전소에서 일한다.
홍씨는 9시50분께 해경에서 직접 전화를 받고서 급한 대로 복지관과 노인정에 구조자들이 머물 자리를 마련했다. 이날 사고 해역과 가까운 서거차도로는 89명이 실려왔다. 그중 43명이 단원고 학생들이었다. 일반인 구조자들은 복지관으로, 단원고 남학생 12명은 주민 최환규(68)씨 집으로 갔다. 홍씨는 여학생 31명을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바다에 빠졌다가 구조된 여학생들은 추위에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얼굴은 부었고 다리를 다쳐 제대로 걷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신발도 신지 못했고 휴대전화도 없었다.
“3명이 친구였나 봐요. 2명은 나왔는데 한 친구가 아직 바다에 있다고 했어요. 헬리콥터나 배가 들어오는 소리만 나면 자갈밭으로 달려나가요. 혹시 친구가 왔을까 싶어서. 지금도 그 학생들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파요.” 사고가 난 지 한달 보름이 지난 1일에도 홍씨는 그 모습이 잊히지를 않는다고 했다.
그날 홍씨는 여학생들에게 온돌방과 거실을 내줬다. 침구가 모자라 여름이불까지 꺼내 덮어줬다. 배가 고플까봐 집에 있는 라면 10개를 학생들에게 꺼내주고 홍씨는 다시 출장소로 달려갔다. 사고 수습 지원을 하고 돌아와 보니 몇몇 학생들은 그새 라면을 직접 끓여 먹었다. 학생들은 낮 12시50분께 진도로 가는 임시 배편으로 서거차도를 떠났다.
주민 80여명이 사는 서거차도에서 홍씨는 ‘최연소자’다. 여러 차례 인터뷰 요청에도 홍씨는 거부해왔다. 학생들 때문이었다. “우리집에 머물렀던 학생들을 다시 보고 싶기도 해요. 그런데 여기 오면 또 사고가 떠오를 것 같아 말을 못하겠어요. 아직 살날이 많은 아이들인데, 사고 기억에 붙잡혀 살지 말고 다 잊었으면 좋겠어요.”
홍씨는 세월호 사고의 영향이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도시 사람들이 진도에서 나는 수산물을 먹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주민들 말이 요즘은 미역과 톳을 보내달라는 인터넷 주문도 잘 안 들어온다고 해요. 바다에서 나는 걸로 먹고사는 분들인데….”
진도/최우리 기자, 사진 홍희정씨 제공 ecowoor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