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한 대학 내의 흡연 부스
환기구 있어도 별 소용 없고
담뱃재·냄새도 참기 힘들어
더운 날씨에 방진마스크 쓰기도
“노동인권 감수성 높여야” 지적
담뱃재·냄새도 참기 힘들어
더운 날씨에 방진마스크 쓰기도
“노동인권 감수성 높여야” 지적
서울 서초구 강남센트럴시티에서 청소일을 하는 이성호(가명·58)씨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미세먼지를 95% 이상 막아준다는 1급 방진마스크를 쓴다. 황사나 미세먼지 때문이 아니다. 담배 연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부터 이씨는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1시간 간격으로 흡연부스 청소를 하고 있다. 처음에는 숨을 참아봤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참았던 숨을 다시 쉬면 부스에 가득한 연기가 폐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왔다. 그도 식후 한대 정도 담배를 피우지만, 여럿이 동시에 내뿜는 ‘생연기’는 정말 견디기 어렵다. 퇴근시간이나 주말같이 유동인구가 많을 때가 최악이다. 청소 중이라고 흡연부스 이용을 막기도 어렵다.
15일 만난 이씨는 “2급 방진마스크는 연기가 들어오기 때문에 꼭 1급을 써야 한다”고 했다. 마스크는 일주일에 서너개씩 간다. 값이 부담스러워 더러워진 마스크를 이틀씩 쓰곤 한다. 저녁 7시에 이씨와 교대하는 60대 여성 청소노동자는 비흡연자다. 이씨는 “흡연자도 이렇게 힘든데 비흡연자는 더하다”고 했다.
서울 서초구 남부터미널 흡연부스를 청소하는 김양순(가명·68)씨도 비흡연자다. 부스 안을 청소할 때면 얼굴이 구겨진다. 빨간 목장갑을 낀 김씨가 빠른 손놀림으로 담배꽁초가 수북한 재떨이 3개를 비웠다. 담배꽁초가 쓰레기통으로 떨어질 때마다 사방으로 담뱃재가 날아올랐다. 환기구가 부지런히 연기를 빼지만 사람이 많을 때는 별 소용이 없다. 담배 연기와 재뿐만 아니라 흡연부스에 밴 냄새도 참기 힘들다. 김씨는 “회사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일하라고 권유한다. 그런데 날씨도 더운데 그걸 챙겨가면서 일을 하는 게 쉽지 않다. 그냥 숨을 참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했다.
금연구역이 확대되면서 흡연부스 설치도 늘고 있다. 국민건강진흥법에 의해 각 자치구에서 금연거리 지정을 하는데, 흡연부스는 자치구 또는 업체에서 설치와 관리를 한다. 서울시 건강증진과 담당자는 “공원, 거리, 광장, 가로변 정류소, 학교 근처 등 서울 시내 금연구역은 6523곳이다. 유동인구가 많고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을 중심으로 금연구역이 지정되는 추세”라고 했다.
비흡연자와 흡연자 모두를 ‘배려’하는 흡연부스지만 청소노동자에 대한 배려까지는 이어지지 못한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ㅇ사 건물에 설치된 직원용 흡연부스 관리를 하는 ㅎ업체 오아무개(44) 관리소장은 “흡연자가 많은 주간에는 흡연자인 청소원을, 야간에는 비흡연 60대 여성 청소원을 배정하지만 특별한 관리 지침은 없다”고 했다. 흡연부스 설치업체인 부스114의 강병헌 대표는 “초기 모델의 경우 자재에 담뱃재가 잘 들러붙고 환기가 잘 안되는 등 결함이 지적돼 업계 차원에서 기술 개선을 하고 있다”고 했다.
흡연자도 참기 힘든 흡연부스 청소에 대해 ‘노동인권’에 대한 감수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위원은 “화장실을 이용하는 남성과 여성 청소노동자가 마주치는 것이 불편하다는 것에는 모두 공감한다. 흡연부스를 청소하는 노동자가 비흡연자인 경우 어떻게 배려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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