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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단독] “브레이크 부품 정비를 반복업무라며 외주…말이 되나”

등록 2014-05-07 01:49수정 2014-05-20 00:10

(※ 클릭하시면 확대됩니다.)
우리 주변의 ‘세월호’-① 철도·지하철

르포 ‘안전 역주행’하는 지하철
지난달 28일 서울 성동구 용답동 서울메트로 군자차량기지에서 만난 파란 작업복의 노동자들은 하나같이 “이대로 가면 사고가 날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추돌사고가 일어나기 나흘 전이었다. 이곳은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의 전동차 정비기지 5곳 중 가장 규모가 큰 곳이다. 노동자들은 정비 업무의 외주화와 인력 감축을 걱정하고 있었다.

정비 외주업체의 비정규직 노동자인 김아무개(35)씨는 “사쪽에서는 간단한 반복 업무라서 외주화했다고 하지만, 승객 안전과 직결된 브레이크, 객차 출입문 개폐 기능과 관련된 컴프레서(압축기) 모터를 정비하는 일이 어떻게 간단한 반복 업무라고 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 고용불안과 차별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한 라인에서 근무를 하지만 작업 부당 개입 방지를 이유로 서로의 작업에 대해 조언을 구하거나 의견을 나누지도 못한다”며 “바로 옆에서 일하지만 서로에게 할 말이 있으면 자기네 보고라인을 통해 전달해서 윗선을 거친 뒤 다시 내용을 전달받는 방식이라 유기적인 협업이 안 되는 점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이번 2호선 추돌사고에서도 드러났듯 전동차 노후화도 심각한 상황이다. 16년 넘은 차량이 절반 이상이다.(표 참조) 그럴수록 숙련된 정비인력의 확충이 필요하지만, 서울메트로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16년 넘은 전동차가 절반 이상
노후화될수록 정비 중요한데
인력 대폭 감축하고 외주 대체
“점검횟수 줄면서 안전 소홀”

5~8호선 전차량 기관사 1명 운행
“터널 지날때 뛰어내리고픈 충동”

서울메트로는 2008년 처음 외주화를 단행하며 201명의 정비 인력을 줄인 데 이어, 2012년 5개 차량기지의 경정비 부문도 민간에 떠넘기면서 122명을 추가 감축했다.(표 참조) 대신 외주업체 인력 140명으로 이를 대체하고 있다. 정비 인력이 줄면서 점검 매뉴얼도 느슨해졌다. 두달에 한번씩 받도록 규정된 검사는 석달에 한번으로, 2년 주기 점검은 3년 주기로, 4년 주기 점검은 6년 주기로 대폭 완화됐다. 남삼우 서울지하철노조 차량부문 사무국장은 “점검 횟수가 줄면 그만큼 안전점검이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 서울메트로는 퇴직을 앞둔 정규직 직원을 외주업체로 ‘밀어내기’까지 하고 있다. 이른바 ‘전적자’로 불리는 이들은 대부분 정비가 아닌 역무나 사무직 출신이다. 외주업체 노동자 김씨는 “역무나 사무를 보다 온 분들은 처음부터 정비 업무를 가르쳐야 한다. 그분들까지 챙기다보면 시간에 쫓겨 꼼꼼하게 정비를 할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기관사 등 승무원 인력 감축도 사고 위험을 키우고 있다. 지난 2일 서울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발생한 전동차 추돌사고에서는 ‘열차 자동정지 장치’(ATS)가 문제가 됐다. 이 장치는 서울메트로가 ‘2인 승무’를 ‘1인 승무’로 바꾸기 위해 2006년부터 도입한 신형 자동운전 장치(ATO)와 섞여 쓰이면서 시스템 오류를 일으킨다는 지적이 많았다.

서울도시철도가 운영하는 지하철 5~8호선은 이미 모든 차량이 1인 승무로 운행되고 있다. 어둠 속에서 홀로 하루 4시간 이상 전동차를 운행하면서 방송과 출입문 개폐까지 해야 하는 지하철 기관사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기차가 어두운 터널에 들어설 때면 갑자기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든다. 하루에 수백번도 넘게 드나드는 터널이지만 외롭고 무섭다. 그럴 때면 스마트폰 배경화면에 저장해 둔 파란 하늘을 보면서 버틴다.” 서울도시철도에서 15년째 기관사로 일하고 있는 김아무개(44)씨의 하소연이다.

실제로 가톨릭대 성모병원 이강숙 교수팀이 2007년 9월 발표한 ‘도시철도공사 기관사 정신보건 임시 건강진단 최종 보고서’를 보면, 도시철도 기관사들은 트라우마 유병률이 일반인의 8배, 공황장애는 무려 15배에 이른다. 2000년 이후 최근까지 7명의 기관사가 우울증이나 트라우마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승객의 안전을 1차적으로 책임지는 기관사의 근무 여건과 스트레스 문제는 결국 사고 위험으로 이어진다. 2007년 철도안전법 국회 공청회 토론자료를 보면, 1인 승무를 하는 경우의 사고율(45.8%)이 2인 승무를 하는 경우(26.0%)에 견줘 2배 가까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인 근무’는 지하철역에서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역무원에게도 적용된다. 서울 지하철 5~8호선 159개 역 가운데 32곳에서는 한달에 적게는 5일, 많게는 15일 이상씩 역무원 혼자서 야간근무를 한다. 이 역들은 주야간 3교대조 가운데 1~3개 조가 세명이 아닌 두명씩 근무를 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한명의 근무자가 개인사정으로 월차·병가를 내거나 사내 교육을 받으러 가는 경우에는 나머지 한명만 근무하게 되는 것이다.(표 참조) 낮에는 역장과 사무원이 있어 최소한의 위기대응 인력이 확보된다지만, 저녁 6시15분부터 다음날 아침 9시까지는 비상상황에 무방비 상태인 것이다.

종종 1인 역무를 하는 역무원 이아무개(46)씨는 “올해로 15년차인데도 1인 근무를 하면 화장실에 갈 엄두조차 나지 않을 만큼 긴장되고 스트레스가 심하다. 내가 없을 때 뭔 일이라도 벌어지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황우진 도시철도노조 광화문지부장은 “혼자서 승객도 상대하고, 길 안내도 하고, 취객 응대까지 해야 한다. 하루에 4~5번꼴로 발생하는 유실물을 찾으려면 최소한 20분은 걸리는데, 그 사이 역에는 아무도 없게 된다. 비상상황에 대비해 승객 안전까지 신경쓰려면 몸이 두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저녁, 1인 역무를 하는 한 역무원을 곁에서 지켜봤다. 퇴근 시간, ‘인포메이션 센터’에 있는 그에게 꼭 3분에 한번꼴로 ‘고객’이 찾아들었다. 길을 묻는 이들이 가장 많았다. 지하철 노선도를 달라는 사람, 개찰구를 열어달라는 사람, 장애인과 노약자가 차례로 다가왔다. 밥 먹으러 갈 시간도, 화장실에 갈 시간도 마땅치 않았다. 그러길 30분, 마침내 유실물 민원이 접수됐다. 창백한 얼굴을 한 역무원은 유실물이 실려 있는 전동차를 맞으러 서둘러 플랫폼으로 내려갔다. 저녁도 못 먹은 터였다.

서울메트로는 1인 역무는 아니지만, 8개 역(도림천·용두·신답·남태령·지축·용답·동작·신설동)을 외주업체에 ‘위탁’해 운영하고 있다. 총 85명의 위탁 인원 가운데 56명은 퇴직을 앞두고 외주업체로 자리를 옮긴 서울메트로 출신 역무원이고 신규 채용된 역무원이 29명이다. 서울메트로에서 직접 운영하는 역은 3인 3개조가 주야간 교대근무를 하면서 평균 2~3명이 근무하는 데 반해, 위탁 운영 역은 2인 2개조로 돌아가면서 평균 2명이 근무한다. 지난달 29일, 실제 위탁 운영되고 있는 동작역을 가보니 60대의 서울메트로 출신 역무원 2명이 야간근무를 서고 있었다. 4호선과 9호선이 만나 하루에 10만명이 이용한다는 동작역의 안전을 2명이 감당하는 건 버거워 보였다.

오윤식 서울지하철노조 역무지부장은 “서울메트로에서 운영하는 역들의 경우 주간에 역장과 여성 사무원을 포함한 4명이 재난훈련을 정기적으로 벌이는데 위탁 운영 역은 역무원이 2명이라 재난훈련을 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본다”며 “사기업이라는 이유로 공익근무요원의 파견도 이뤄지지 않는 이 역들에서 실제 사고가 났을 때 잘 대처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지하철에서 화재가 났을 때 연기가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된 제연설비도 제대로 관리되고 않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해 7월 내놓은 서울메트로 종합감사 결과를 보면, 1호선 동대문역과 3호선 연신내역 등 30개 역사의 제연설비가 6개월 이상 고장난 채 방치돼온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시 감사관실 관계자는 “4월30일 현재 이들 30개 역사 가운데 3곳의 제연설비는 여전히 고쳐지지 않았다. 동대문·을지로4가역은 수리 완료를 앞두고 있고 충무로역은 제연설비 시스템 보완 때문에 내년에나 수리를 마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의 교훈은 벌써 잊혀진 듯하다. 비용 절감을 위한 무리한 인원 감축과 제연설비 등 안전시설 투자 부족 등 당시 지적됐던 문제점들을 고스란히 안은 채 지하철은 달리고 있다. 권오훈 도시철도노조 역무본부장의 말이 그 이유를 설명해준다. “몇년 전 지하철 안전 확보를 위해 역당 최소한의 안전인력 배치를 요구하자 경영진이 ‘대구 지하철 참사는 비극적이지만 100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사고다. 그런 사고를 대비해서 매년 수십억원을 쓰는 것은 예산 낭비다’라고 하더라. 적자 개선과 효율성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안전 인력·설비를 ‘낭비’로 보는 시스템부터 바꿔야 한다.”

오승훈 박기용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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