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KTX 승무원 안전교육은 “책자 읽었다” 서명으로 끝내

등록 2014-05-06 20:42수정 2014-05-20 00:11

지난해 8월31일 부산을 출발해 대구역에서 서울로 향하던 케이티엑스(KTX) 열차와 무궁화호 열차가 추돌하는 사고가 발생해 코레일 복구반이 탈선한 열차를 수습하고 있다.
대구/뉴스1
지난해 8월31일 부산을 출발해 대구역에서 서울로 향하던 케이티엑스(KTX) 열차와 무궁화호 열차가 추돌하는 사고가 발생해 코레일 복구반이 탈선한 열차를 수습하고 있다. 대구/뉴스1
우리 주변의 ‘세월호’
세월호 참사 이후 코레일관광개발 소속 케이티엑스(KTX) 승무원들은 ‘개인 임무 카드’를 반드시 휴대해야 한다. 평소에는 별반 신경을 쓰지 않다가도, 대형 안전사고가 터지면 회사 쪽은 어김없이 승무원들의 카드 휴대 여부를 점검한다. 카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례 상황 발생시, 직무사고에 유의하며 열차팀장의 협조 요청에 따라 각 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되, 주 임무는 정확한 상황 파악 및 안전하고 적절한 고객안내 임.”

의심물체 발견, 화생 테러, 화재, 탈선, 충돌 등으로 나눠 비상사태가 벌어지면 해야 할 일이 빼곡히 적힌 카드는 일종의 ‘비상시 대응 매뉴얼’이다. 그럼에도 승무원들이 해야 할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상황을 확인해 열차팀장 및 기장과 상황을 공유하고, 승객 동요 등 객실 혼란을 막고, 각 소속 지사에 유선으로 보고하는 게 전부다. 이유가 있다.

홍익회에서 출발한 코레일관광개발은 애초부터 열차의 안전과 관련된 업무와 승객서비스 업무를 분리해, 승객서비스 업무만 맡기로 한 외주업체다. 두 가지 업무를 분리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에도, 코레일이 승무원을 직접 고용하는 걸 피하기 위해 만들어낸 허울이다. 10년 경력의 한 고속철도 승무원은 이렇게 말했다.

“경부선 고속열차는 보통 만석이다. 18량짜리를 기준으로 1000명 이상이 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은 열차팀장(여객전무) 1명뿐이다. 여객승무원 2명과 판매승무원 1~2명이 함께 타지만, 열차팀장 보조 역할만 하도록 돼 있다. 안전 업무는 전적으로 열차팀장의 몫이다.”

지난해 8월31일 오전 7시10분께 경부선 대구역에서 서울로 향하던 무궁화호 열차와 케이티엑스 열차 2대가 연쇄 추돌사고를 일으켰다. 무궁화호 열차에 대체투입된 열차팀장이 출발신호를 잘못 보낸 탓에 벌어진 사고였다. 사고열차 3대에는 승객 1360여명이 타고 있었다. 국토교통부에 딸린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사고조사 보고서에서 “철도공사가 대체근무자인 무궁화열차 여객전무에게 전입자 교육을 규정대로 실시하지 않고, 승무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로 업무에 투입했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충당을 탄다’고 표현하는 열차팀장 하루 대체근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한 경부선 고속철도 승무원은 “승무 경험이 있는 분이 대체근무를 나오기도 하지만, 사무직군에게 하루 기초교육을 시킨 뒤 근무를 할당하는 경우도 있다. 경험이 없는 열차팀장이 대체근무를 나오면, 승무원 입장에선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부선 1대 18량, 1천명 태우지만
코레일 소속 열차팀장만 안전업무
간접고용된 3~4명 승무원은
단순 고객안내로 업무 제한
코레일, 직접고용 피하려 안전 외면

안전 업무를 전담하는 열차팀장은 열차 전량의 출입문을 한꺼번에 자동으로 열 수 있는 열쇠를 갖고 있다. 승무원은 1량씩 수동으로 열 수 있는 열쇠만 갖고 있다. 또 다른 승무원은 “승강기(출입문) 개폐는 원래 팀장이 하도록 돼 있다. 안전교육을 받지 못한 신입 승무원들은 승강기 개폐 방법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애초 지난 2004년 홍익회를 통해 입사한 케이티엑스 1기 승무원은 차량기지에서 탈출용 비상 사다리 설치법 등 안전교육을 충실히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간접고용 문제로 승무원들이 파업에 나선 뒤, 단순 고객안내 쪽으로 업무가 철저히 제한됐다. 이후 안전교육은 사실상 전무했다는 게 현직 승무원들의 일치된 증언이다.

안전교육은 서류상으로만 이뤄진다. 두툼한 안전 관련 자료집을 사무실에 비치해 놓고, 오가는 승무원들에게 ‘읽었다’는 서명을 받는 방식이다. 이영준 철도노조 미조직·비정규국장은 “자료집의 내용을 설명하거나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없다. 바쁜 와중에 누가 두툼한 매뉴얼을 읽겠나. 그저 서명을 안하면 문제를 삼으니까, 승무원들은 내용도 모르고 서명만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 코레일 쪽은 ‘지난 2년간 고속철도 승무원에 대해 실시한 안전교육 내역을 제출하라’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박수현 의원의 서면질의에 대해 지난 1월9일 보낸 답변서에서 “공사는 위탁승무원에 대한 교육을 직접 실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코레일관광개발 쪽은 간접고용 승무원에 대한 차별을 지적한 철도노조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지난 2월11일 내놓은 보도자료에서 “코레일의 열차팀장은 열차 내 안전업무를 책임지고 있으며, 케이티엑스 승무원은 단순 고객 안내서비스를 담당한다”고 새삼 강조했다. 하루 평균 약 15만명이 이용하는 케이티엑스 고속철도 안전의 현주소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