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수 교수
진도체육관에서 자원봉사 하는 박준수 교수
화장실 닦고 설거지하고 쓰레기 분류하고…
“사고 수습 길어질 듯…학생들과 다시 올 것”
화장실 닦고 설거지하고 쓰레기 분류하고…
“사고 수습 길어질 듯…학생들과 다시 올 것”
보라색 장화를 신고 빨간색 조끼를 입은 남성이 지나갔다. 목에 걸린 ‘자원봉사원’ 표찰 옆에 노란 리본이 달렸다. 28일 진도실내체육관에서 만난 자원봉사자 박준수(60·사진)씨는 1층 남자화장실 바닥에 열심히 걸레질을 하고 있었다.
그는 25~29일 체육관과 팽목항에서 개인 자격으로 자원봉사 활동을 했다. “뉴스를 보다가 하도 답답해서 오기로 결정했어요. 집사람에게 다녀오겠다고 하니 흔쾌히 그러라고 하더군요. 아이들한테도 허락받았어요.”
박씨는 2012년부터 순천향대 산학협력단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대학생부터 중학생까지 다섯이나 되는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고 25일 아침 일찍 경기도 성남 집을 떠났다.
그때부터 진도 생활이 시작됐다. 아침 7시쯤 일어나 체육관 화장실과 샤워장, 세면장부터 청소한다. 천막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는 전국 각지에서 들어온 라면, 음료수, 의약품 등 구호물품을 분류하고 직접 나른다. 일손이 부족한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일을 돕는다. 실종자 가족들과 자원봉사자들, 취재진이 식사를 하는 천막 식당 구석에서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를 분류하는 것도 그의 일과다. 실종자 가족들이 덮는 이불의 먼지도 턴다. 천막을 치고 천막 위로 비를 막을 비닐을 씌우기도 한다. 잠은 체육관 밖 천막에서 잔다.
중소기업 기술 이전·사업화 전문가인 그는 2005년 ‘진도 홍주 명품화 프로젝트’에 참여해 진도와 인연을 맺었다. “그때 진도 지역에 등록돼 있는 제조업자들만 홍주의 판매권을 가질 수 있도록 했어요. 대기업이 진도에 공장을 만들어 홍주 사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거주 기간을 조건으로 달았지요. 그래서 지금까지 지역 중소상인들을 보호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박 교수는 한때 진도 개발 사업도 검토했다고 한다. 진도와 맹골도 같은 여러 섬들을 배를 타고 돌아본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 박 교수에게 세월호 침몰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이쪽 지리를 알다 보니 이번 사고가 더 어처구니 없게 느껴지죠. 그때도 맹골수도 물살이 워낙 빨라서 그쪽으로 다니질 않았어요.”
박씨는 천주교 봉사 단체 빈첸시오회 회원이기도 하다. 9년째 경기 하남과 광주 근처 복지시설에서 주말마다 식사 봉사를 해왔다고 한다. 할머니들 앞에서 노래방 기계 마이크를 붙잡고 노래를 불러드리는 것도 그의 일이다.
전북 진안이 고향인 박 교수는 열심히 농사짓고도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게 싫어 도망치듯 서울로 올라와 공부를 했다. 그 때문인지 어려운 사람들을 외면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박 교수는 30일 “사고 수습이 길어질 것 같다”며, 집에 잠시 들렀다가 다음달에 대학생들과 함께 다시 진도로 내려오겠다고 했다.
진도/글·사진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30일 오후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들이 머물고 있는 전남 진도체육관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물걸레질을 하고 있다. 진도/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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