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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그리움에 지친 가족들, 심리상담실로 종교시설로

등록 2014-04-23 20:41수정 2014-04-24 10:45

[세월호 침몰 참사]
체육관 옆 천막법당·성당 차려져
종교 없지만 찾아오는 가족도

정신과 상담의 “가족들 쇼크상태
슬픔 해소해줄 일종의 샌드백 필요”
“사랑하는 내 딸 ○○아! 엄마가 너를 어떻게 보낼 수 있겠니. 엄마, 아빠가 항상 너하고 같이 있을 테니까 무서워하지 말고 외롭다고도 생각하지 마. 알았지! 너를 많이 많이 사랑해.”

정성껏 써내려간 글씨에서 절절한 그리움이 느껴졌다. 21일부터 진도체육관 옆에 차려진 대한불교조계종 ‘천막 법당’ 천장에는 가족들의 애달픈 마음을 담은 종이가 붙었다. 가족들은 갈색 방석 3개가 놓이면 꽉 차는 천막 법당에서 108배를 했다. 때로는 체육관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진도 향적사나 쌍계사로 간다. 천막 법당을 지키는 향적사 법일 스님은 “가족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선장이나 선사의 초기 대응에 화가 많이 쌓여 있더라. 총체적으로 잘못됐다며 괴롭다는 말을 많이 한다”고 했다.

23일 오후 2시. 천막 법당 맞은편에 차려진 천막 성당에서는 천주교 수원교구 교구장인 이용훈 주교가 집전하는 미사가 진행됐다. 생때같은 자식 이름을 목에 건 어머니 4명은 핏빛 없는 얼굴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주검이 들어오는 항구를 오가느라 얼굴이 검게 그을린 한 아버지는 신부의 손을 꼭 잡고 울먹였다. 한 가족이 “아이를 찾아서 안산으로 간다”며 수녀에게 인사를 하고 떠났다. 수녀는 “시신이나 인양이라는 말은 가족들 앞에서 쓸 수 없다”며 ‘아이’라고 표현했다. 떠나는 부모의 양손에는 지난 1주일 동안 체육관 생활을 함께 한 이불과 옷가지가 들렸다. 진도성당에서 나온 한 수녀는 “성당에 다니지 않는 가족들도 온다”고 했다.

체육관 옆 간이 천막에 마련된 부산 장신대 심리상담실에는 지난 이틀 동안 6명이 상담을 받았다. 하정미 박사(사회복지)는 “2명의 아버지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족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워야 할지, 남은 가족들을 어떻게 돌봐야 할지 모르겠다며 찾아왔다”고 했다.

마음의 상처는 이를 지켜보는 이들에게도 옮는다. 대구에서 체육관으로 자원봉사를 온 한의사 정아무개(60)씨는 “피해 가족의 슬픔을 내가 똑같이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나라 전체가 상을 치르고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체육관에 머무는 자원봉사자들과 기자들도 심리상담소를 찾았다고 한다. 서울에서 왔다는 한 젊은 기자는 “실종자 가족들이 얼마나 힘들지 아는데도 취재를 해야 했다. 마음이 너무 힘들다”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괴로움을 토로하는 자원봉사자 3명에게도 병원 치료를 권했다고 하 박사는 전했다.

서울대 의료지원단도 20~22일 체육관 옆 간이 진료소에서 가족과 자원봉사자 15명의 정신과 상담을 했다. 김석주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가족들은 지금 매우 심한 쇼크 상태에 있다. 분노와 슬픔을 해소해줄 일종의 ‘샌드백’이 필요하다.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옆에서 울어주는 게 가장 좋다”고 했다. 김 교수는 ‘전국민적 트라우마’에 대해 “사고 원인, 구조 과정 등 시스템의 부실함이 드러났다. 죄 없는 아이들의 희생에 미안하다고 느끼는 모든 사람들은 우리가 그 시스템의 일원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진도/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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