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해상 여객선 참사] ‘제대로 된 탈출 매뉴얼’ 부재
전문가 “일반적인 사고 땐 통하나
화재·침몰 땐 밖으로 대피시켜야”
전문가 “일반적인 사고 땐 통하나
화재·침몰 땐 밖으로 대피시켜야”
“선내에서 기다리라”는 세월호 승무원들의 안내방송은, 2003년 2월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당시 “전동차 안에 대기하라”던 기관사의 안내방송과 닮았다. 두 사건 모두 대형 인명 사고로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탈출 매뉴얼’의 부재를 지적하면서도 ‘승무원의 지시를 따르지 않아야 살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는 것에 대한 우려도 내놓았다.
17일 공개된 청해진해운의 ‘세월호 운영관리 규정’을 보면, 폭발·비상조타·기관고장 등의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인명이 최우선이다. 사고처리가 최우선이다. 사태가 낙관적이어도 최악의 사태를 염두에 두고 행동하라. 선장 지시에 따르라’는 등 승무원 행동 지침이 자세히 담겼다. 선장은 총지휘를 맡고, 1등 항해사는 현장 지휘를, 2등 항해사는 승객들을 구할 구명보트 작동 등을 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이 비상 매뉴얼은 이번 사건에서 오히려 승객들의 발목을 선박에 묶어두는 족쇄가 됐다. 구조된 승객들은 승무원들이 10여차례에 걸쳐 “자리에 그대로 있으라”, “이동하지 말라”고 반복적으로 알렸다고 증언했다. 탈출 타이밍을 놓친 승무원들의 부적절한 지시가 인명 피해를 키운 것이다.
11년 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사건 당시에도 기관사가 여러 차례 승객들에게 “전동차 안에 대기하라”고 방송해 피해를 키웠다. 당시 처음 불이 났던 ‘1079호 전동차’와 반대 방향으로 운행하던 ‘1080호 전동차’ 기관사는 차량으로 연기가 들어오자 출입문을 닫았다. 이어 “잠시 후 출발할 것이니 기다려 달라”는 안내방송을 했다. 하지만 옮겨붙은 불로 전기가 끊겨 차량이 움직이지 않고, 출입문마저 열리지 않는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졌다. 결국 갇혀 있던 승객 142명이 사망했다. 당시 화재 사망자(192명)의 74%에 이르는 승객들이 타이밍을 놓친 안내방송 탓에 소중한 목숨을 잃은 셈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 뒤 직장인과 네티즌 사이에서는 “이제 승무원들 말은 못 믿겠다”, “가만있으라는 말을 따르면 죽고, 의심하고 움직여야 사는 것 아니냐”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인식이 확대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남청도 한국해양대 교수(기관공학부)는 “일반적인 선박 사고 때는 선박에 오래 머물수록 생존 가능성이 높다는 게 통설”이라고 했다. 승무원의 지시를 어기고 무조건 바다로 뛰어드는 것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 교수는 “이번 사고는 선체가 급격하게 기울면서 선박이 뒤집어진, 일반적인 상황과 다른 사고였다. 승객을 빨리 객실 밖으로 대피시켰어야 했는데 승무원들의 대응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소명옥 한국해양대 교수(승선학)는 “배가 화재나 좌초, 침몰 등의 비상 상황을 만나면 승객이나 선원들을 선실에 머물게 하기보다 데크(갑판)로 나오도록 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했다. 애초 비상 매뉴얼을 따랐다면 사고 규모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는 얘기다.
해양수산부는 안내방송의 문제점에 대해 “선박 비상 상황 시 탈출계획은 운항관리 규정에 포함돼 있다. 해경에서 이 부분에 대한 수사를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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