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포된 납치용의자 은거지에서
필리핀 마닐라에서 유학중이던 한국인 여대생이 현지인에게 납치된 지 한달 여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그동안 필리핀에서는 한국인 피살 사건이 적지 않았으나, 2009년 이후 수도 마닐라에서 한국인이 납치 피살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 당국자는 9일 “지난달 3일 필리핀에서 20대 중반의 한국인 여성 유학생이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현지 경찰이 8일 밤 납치범 1명을 체포해 은거지를 수색한 뒤, 피랍 한인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의 주검을 발견했다고 연락해왔다”고 밝혔다. 주검의 부패 탓에 신원은 유전자 확인 등의 절차를 거칠 전망이지만, 현지에 머물던 가족은 주검에 입혀진 복장이 피해자 ㄱ씨의 것이라고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20대 중반으로 현지 대학에 재학중이던 ㄱ씨는 지난달 3일 저녁 9시께 친구 ㄴ씨를 만나러 외출했다가 연락이 끊겼다. 현지 경찰과 정부 당국은 연락 두절 직전 친구와의 통화 내용에 미루어, 택시에 탄 이후 시점에 납치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사건 발생 뒤 이틀 동안은 납치범들이 ㄴ씨에게 10여차례 전화를 걸어와 거액의 몸값을 요구하며 ㄱ씨의 목소리를 들려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5일 저녁 마닐라 북부 지역에서 ㄱ씨가 탔던 것으로 추정되는 택시와, 납치범으로 추정되는 현지인 1명의 총상을 입은 주검이 발견된 뒤 다시 연락이 닿지 않았다. 정부 당국자는 “이 시기에 납치범들 사이에 일어난 내분 과정에서 납치범 1명과 ㄱ씨가 숨진 것으로 보인다”며, “강도짓을 하려고 하다가 대상이 외국인이라 좀 더 인질로 삼아서 몸값을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납치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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