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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간’을 내준 아들아, 아빠처럼 살지 말거라

등록 2014-04-04 19:46수정 2014-04-06 16:04

아들에게 간을 이식받은 박태성씨를 1일 오후 전라남도 목포중앙병원에서 만났다. 십이지장 궤양으로 입원한 지 보름째인 박씨가 병원 앞에서 이식수술 받은 부위를 보여주고 있다. 윤형중 기자
아들에게 간을 이식받은 박태성씨를 1일 오후 전라남도 목포중앙병원에서 만났다. 십이지장 궤양으로 입원한 지 보름째인 박씨가 병원 앞에서 이식수술 받은 부위를 보여주고 있다. 윤형중 기자
[토요판]
(22) 박태성의 간 이식
▶ 장기이식엔 세 가지가 있습니다. 뼈나 힘줄, 피부조직 등 자신의 신체 일부를 다른 곳에 이식하는 자가이식과 같은 종 간에 신장, 간, 심장 등을 이식하는 동종이식이 있습니다. 돼지 등 동물의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이종이식은 아직 시술이 이뤄지진 않지만,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분야죠. 아들에게 간을 이식받은 아버지를 통해 장기이식이 몸과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봤습니다.

현대 의학은 어떤 면에서 인간의 신체를 기계처럼 만들었다. 고장 난 기계에서 수리가 불가능한 부품을 새것으로 교체하듯, 회복이 어려운 장기를 적출하고 건강한 장기를 몸 안에 이식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기계와는 달리 여전히 통제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바로 인간의 면역 체계가 타인에게서 받은 장기를 ‘침입자’로 인식해 공격한다는 점이다. 공격을 받은 장기는 결국 조직과 세포가 죽어나가며 괴사한다. 이런 문제는 유전자가 거의 동일한 일란성 쌍둥이를 제외하곤 여지없이 발생한다.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으로부터 몸을 지켜주고, 손상된 기관을 치유하는 면역 체계가 장기를 이식받은 사람에겐 취약점이 되는 셈이다.

사실 면역 체계를 조절하는 것은 장기이식 과정의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식할 장기를 찾는 과정부터 수술, 재활, 그 이후의 생활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면역 체계와 관련이 있다. 수백년간 장기이식이 발전한 역사 자체도 인간의 면역 체계를 조절하기 위한 연구의 과정이었다. 이미 추락했지만, 한때 황우석 신드롬이 우리 사회를 강타했던 것도 줄기세포가 면역 체계를 완전히 통제하여 장기이식을 가능케 한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불우 가정과 모진 사회 탓하며
술로 세월 보내다 간경화 말기
군수에게 보낸 누나의 편지로
비용 지원받아 수술 성공했지만
몸 쇠약해져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장기이식 대기자는 2만6천여명
지난해 이식수술은 3718건뿐
수술 후 면역억제제 평생 복용
부작용 막지만, 면역체계 약화
평생 조심조심하며 살아야 해

만 16살 생일 지나자마자 이식수술

결국 장기이식을 받은 사람은 평생 동안 자신의 면역 체계를 약화시키는 ‘면역억제제’를 주기적으로 복용하며 살아야 한다. 마치 몸 안의 장기를 위해 신체를 보호하는 갑옷을 허물어야 하는 운명인 것이다. 그렇게 무장해제된 몸은 어떤 반응을 일으킬까. 타인의 장기가 내 몸 안에 들어온 느낌은 무엇일까.

장기이식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지난 1일 전라남도의 목포중앙병원에서 박태성(46)씨를 만났다. 박씨는 2012년 8월23일 아들인 박상현(가명·18)군에게서 간을 이식받았다. 8월 초가 생일인 상현군이 만 16살이 되던 해였다. 생일을 막 지나서 수술을 한 이유가 있었다. 현행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의 제11조는 만 16살 이상이 돼야 장기 제공이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성인이 되지도 않은 아들의 간을 이식받은 박씨는 어떤 심경이었을까.

“그땐 정말 얼척(‘어처구니’의 전라도 방언)이 없었죠. 거의 반 혼수상태로 병원에 누워 있는데, 상현이가 들어오더라구요. 그러곤 여동생과 의사가 상현이에게 이식을 받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어요. 장기 상태도 괜찮고, 몇 달 지나면 생일이 지나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다고 했어요. 근데 내 눈엔 아이가 너무 말라 보였죠. 그래서 ‘니 하지 마라. 너는 몸도 약하고 어려서 안 된다’고 했어요. 그런데 상현이가 ‘저 할게요’라고 하는 거예요. 정말 미안하고, 면목없었죠.”

박씨는 2011년 간경화 말기 판정을 받았다. 그는 “간의 3%만이 기능을 하고 있어 이식을 받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고 의사가 얘기했다. 사실상의 사망 선고였다”고 회고했다. 비형간염 판정을 받고도 절제하지 않고 술을 마신 결과였다. 간의 염증상태가 지속돼 간 기능이 저하되는 간경화에 걸리면 배의 물이 차서 폐 등의 장기를 누른다. 복수를 빼지 않으면 쉴 새 없이 기침이 나오고 피를 토하기도 한다. 처음 간경화 말기 판정을 받았을 때, 박씨는 간 이식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이식받을 장기를 찾는 일이 어렵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산하기관인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올해 1월을 기준으로 장기이식 대기자가 2만6036명이지만, 지난해 한해 동안 이뤄진 장기이식 수술은 3718건에 불과하다. 장기이식을 원하는 사람에 비해 실제 수술을 받는 사람이 현저히 적다 보니, 매년 장기이식 대기자는 크게 늘고 있다. 대기자 수는 2004년 1만684명으로 처음으로 1만명을 돌파해 2010년엔 1만8189명에 이르렀고, 2012년엔 2만2695명에 달했다. 매년 평균 수천명씩 늘고 있는 추세다. 이런 이유로 긴급성을 요하는 환자가 제때에 장기이식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박씨가 장기이식을 받기 어렵다고 생각한 이유는 더 있었다. 장기이식관리센터를 통해 이식받을 장기를 찾는 일이 어렵다 보니, 긴급한 환자의 경우 가족들에게서 먼저 이식 대상을 찾는다. 가족의 경우 유전적인 유사성이 높기 때문에 거부반응이 적을 가능성도 높다. 박씨는 가족에게서 장기를 이식받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가 십여년째 집을 나간 가장이기 때문이다. 집을 비운 세월 동안 아내 역시 이혼해 집을 나갔고, 박씨의 어머니 김말순(가명·68)씨가 상현이와 그 누나 성은(가명·20)이를 키웠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이들 셋은 한달에 40여만원의 정부보조금과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후원금 10만원으로 생활했고, 전남 영암에서 월세 10만원짜리 방에서 살았다. 이 월셋방은 상현군의 할머니 김씨가 동네 문중 제각(제사를 지내는 건축물)을 관리해주는 대가로 싸게 빌린 곁방이다. 중고차 사업을 하다 실패한 박씨는 이런 가족들의 곁을 떠나 공사판 등을 전전하며 세월을 보냈다. 집을 떠난 십여년간 어떻게 지냈냐고 묻자, 박씨는 쉽게 속을 꺼내지 못했다. “그 얘기하면 길어져요.”

3년 전 간경화로 병원에 누워 있는 박씨에게 여동생이 찾아왔다. 여동생은 자신의 간을 오빠인 박씨에게 주겠다고 나섰다. 장기 중에 스스로 재생하는 간이나, 인체에 두 개가 있는 신장 등은 살아있는 사람에게서 적출이 가능하다. 이 외에도 골수, 췌장, 소장, 췌도 등이 생체이식이 가능한 장기다. 심장, 폐, 각막 등의 장기이식은 뇌사자나 사후 기증에 의해서나 가능하다.

박씨 여동생은 간의 일부를 적출하기엔 장기의 크기가 작다는 진단 결과가 나왔다. 결국 어머니 김씨는 손자인 상현군에게 조심스레 얘기를 꺼냈다. “아빠에게 간을 이식해 줄 수 있겠니?” 어릴 때부터 아빠와 정을 쌓지 못하고 지낸 상현군에게 민망한 부탁이었다. 그렇지만 상현군은 서슴없이 “예”라고 답했다.

새 생명 찾았지만 곧 우울증 찾아온 이유

수술을 승낙한 상현군을 데리고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 조직적합도와 장기의 상태 등이 이식하기에 적절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문제는 또 있었다. 바로 수술비였다. 누나인 박성은씨가 고민 끝에 영암군수에게 편지를 썼다.

“저희는 할머니 손에 자란 두 남매입니다. 10여년 전 집을 나간 아버지가 얼마 전 돌아오셨는데 간 이식 수술을 받지 않으면 더 살기 어렵습니다. 제 남동생이 아버지에게 간을 이식하겠다 했지만, 돈이 없어 수술을 못 받고 있습니다. 도와주세요.”

영암군수는 남매의 사정을 아동복지 전문기관인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전남가정위탁지원센터’에 전달했다. 재단은 수술비 2300만원을 긴급하게 지원했고, 결국 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냈다. 이 당시 어린이재단은 수술비와 아동들에게 지원할 생계비를 마련하기 위해 후원자를 찾고 있었다. 이때 재단이 보낸 메일을 우연히 건네받은 기자는 ‘아버지에 간 이식 16살 아들, 병원비 걱정에 애타는 추석’을 보내고 있단 기사(2012년 9월28일치)를 썼다. 재단은 후원비를 더 모아 수술비를 완납했고, 이후에도 병원비와 생계비로 지금까지 1260만원을 지원했다.

박씨는 자녀들이 아버지처럼 살지 않기를 절실히 바란다. 박씨 역시 같은 마음이었으나, 아버지의 전철을 상당 부분 뒤따랐다. 박씨의 부친 역시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매일 술을 마시고 어머니와 3남1녀인 우리 형제들을 엄청 때렸어요. 저는 그런 아버지를 증오했죠. 맏이인 제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어머니를 지키려고 아버지와 맞서 싸웠어요. 그렇게 맞서다 제가 뒤돌아서면 아버지가 몽둥이로 제 머리를 내리쳐 기절한 적도 여러번이에요. 아버진 그렇게 술로 세월을 보내다 제가 열아홉살 때 돌아가셨죠.”

박씨는 “울릉도에서 태어난 아버지가 무슨 연유인지 모르지만, 호적에 등록돼 있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런 이유로 박씨는 중학교 다닐 적에 퇴학을 당했다고 한다.

“처음 학교를 다닐 땐, 괜찮았는데 나중엔 자꾸 호적을 가져오라고 하니까. 그게 없어서 결국 퇴학당했어요.”

호적 없이 어떻게 학교에 입학했는지, 그런 이유로 퇴학이 가능한지 등의 질문엔 박씨가 제대로 답변하진 못했다. “어린 나이여서 그런 자세한 사정은 잘 모른다”는 게 박씨의 대답이었다. 그렇게 중학교를 그만둔 그는 열일곱살에 부산에 있는 한 신발공장에 취직했다. 가정, 학교와 마찬가지로 첫 직장 역시 그에겐 안 좋은 기억이었다.

“어린 나이에 취직을 해서인지, 공장에서 선배들에게 두들겨 맞고 봉급을 떼이기 일쑤였어요. 그때부터 사회에 대한 반항심이 생겼죠. 아버지 때문에 그토록 싫어하던 술을 먹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었어요.”

술로 세월을 보낸 결과 그에게 병마가 찾아왔다. 가정을 이뤄 잘 살아보겠다는 꿈도 산산이 부서졌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아들이 간을 이식해 줬고, 새 생명을 얻었다. 수술을 받고서 새 삶을 살겠단 의지를 다졌다. 하지만 곧 우울증이 찾아왔다.

“간을 이식받는다고 몸이 무조건 좋아지는 것이 아니더라구요. 면역억제제를 먹다 보니 늘 삶이 제한적이에요. 외출을 해도 조심하게 되고, 계단만 조금 올라도 숨이 차죠. 약간의 감기 기운만 있어도 병원에 입원을 해야 해요. 폐렴으로 발전하면 정말 위험한 지경이 되는 거죠. 면역력이 약해야 장기가 사는데, 그러다 보니 몸이 힘들어요. 수술을 받고서 이제 일도 열심히 하고, 잘 살아보려 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죠. 특히 자식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어 안타까워요.”

이식받은 간은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등 기초 영양소의 대사, 해독과 살균, 호르몬 조절 등 본래 간이 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면역 체계에 의한 부작용은 피하지 못한다. 이날 병원에서 만난 박씨는 십이지장 궤양으로 보름째 입원 중이었다. 박씨는 병원복과 마스크를 한 채 기자와 만났다. 인터뷰 중에도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그는 면역억제제를 하루에 두번 복용 중이라고 했다.

“워낙 조심해도 일년에 서너번 입원합니다. 한번 병에 걸리면 잘 낫지도 않아요. 후유증으로 당뇨와 고혈압도 생겼어요. 이런 몸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우울증이 생겼는데, 항우울증 약을 먹다 보니 기억손상도 와요.”

면역억제제는 당뇨와 고혈압을 유발한다.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장기이식센터가 2009년에 밝힌 연구 결과를 보면, 면역억제제는 췌장에서 인슐린을 분비하는 베타세포를 손상시킨다. 결국 혈액 속에 당 농도를 조절하는 인슐린 분비에 지장을 줘 당뇨를 유발하는 것이다. 항우울제는 기억력 손상 등의 부작용이 있다.

아들 상현에게 너무나 미안한 과거

장기이식이 발전해 온 역사에서 두 가지 중요한 기점이 있다. 하나는 1954년 미국의 조지프 머리가 일란성 쌍둥이 사이의 신장이식 수술에 성공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1972년 스위스 제약회사 산도즈의 보렐 연구팀이 노르웨이의 흙 속에서 부작용이 적은 면역억제 성분을 만드는 곰팡이를 발견한 것이다. 이 부산물로 만든 약이 ‘사이클로스포린’이다. 이 약은 장기이식의 거부반응을 급격히 낮췄다.

장기이식에서 남은 과제도 여러가지다. 면역억제제를 평생 먹으며 어떻게 건강을 유지할 것인지,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사람들에 비해 턱없이 적은 장기공여자의 문제도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과학자들은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해 돼지 등 동물의 장기를 인체의 장기와 비슷하게 만들어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황우석 신화가 허물어진 뒤에도 줄기세포가 여전히 관심을 받는 이유다. 줄기세포 연구에도 여러 문제점이 제기된다. 생명의 씨앗인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연구가 어느 수준까지 윤리적으로 합당한지, 연구자가 인간복제를 시도하지는 않을지, 인간에게 장기를 제공할 목적으로 유전자를 조작한 동물을 만들고 필요할 때 죽여 장기를 적출하는 것이 합당한지 등은 논란거리다.

박씨는 인터뷰를 빌려 아들에게 꼭 하고픈 얘기가 있다고 했다.

“이혼한 아내가 데리고 나간 아들이 고아원에 있다는 것을 10여년 전에 알았어요. 그때 고아원에 가서 아이를 데려왔죠. 그런데 그 이후 지갑에 있는 돈이 자꾸 없어지는 거예요. 아이는 자기가 훔치지 않았다고 했죠.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화를 참지 못해 아이를 때렸고, 그 와중에 아이의 손목이 부러졌어요. 그게 아동학대 신고가 돼서 아이는 보호기관으로 가고, 저는 다시 집을 나왔죠.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아이가 고아원에서 앵벌이를 했던 거예요. 돈을 어디선가 구걸해 오거나, 훔쳐오지 않으면 엄청 두들겨 맞았다고 해요. 그래서 손버릇이 나빠졌던 건데, 나는 그런 것도 모르고 아이를 때렸죠. 그런 아이가 아빠를 미워하지 않고 자신의 장기를 빼서 줬어요. 너무나 미안하고, 나처럼 살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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