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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화상경마장 들어선 뒤 술집·성인오락실만 ‘우후죽순’

등록 2014-03-16 20:49수정 2014-03-16 22:28

대전 월평동 마권장외발매소(화상경마장)
대전 월평동 마권장외발매소(화상경마장)
르포 l 화상경마장 입주지역 표정
찢어진 마권 조각들이 거리에 쌓여 있었다. 그 위로 차와 사람들이 뒤엉켜 북새통을 이뤘다. 사람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다 잃었다. 기분 안 좋으니 말 걸지 마라.” <한겨레> 취재진에게 한 남성은 버럭 역정을 냈다.

14일 저녁 6시10분께, 한국마사회가 운영하는 대전 월평동 마권장외발매소(화상경마장·사진) 앞으로 3000여명의 경마꾼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날 오전 11시40분부터 시작된 경마 11경기가 모두 끝났다. 사람들은 담배를 꺼내 피우거나 고개를 숙인 채 거리를 떠났다. 몇몇 경마꾼들은 인근 편의점으로 몰려가 복권을 샀다. 화상경마장 앞 네거리에는 1만원짜리 점퍼를 파는 노점이 펼쳐졌고, 몇몇 노점상은 다음날치 경마 예상지를 팔며 경마꾼들의 발길을 잡으려 애썼다. 남성전용 휴게방, 안마방, ‘19살 미만 출입금지’ 표시를 내 건 성인오락실, 술집들이 이들의 배경을 이뤘다.

“중학교 다니면서 늘상 봐온 풍경이에요. 집에 가려면 화상경마장 앞을 꼭 지나야 하니까요.” 대전 월평중학교 3학년 최혜은(15) 학생이 말했다. 화상경마장에서 동쪽으로 290여m 떨어진 곳에 월평중이 있다. 경마장 앞에서 월평중이 바로 보인다. “담배 피우고 술 취해 싸우는 아저씨들을 보면 솔직히 무서워요. 얼마 전엔 친구가 이 앞을 지나다 경마하러 온 아저씨한테 ‘돈 줄 테니 몸을 만지게 해 달라’는 말을 들었어요. 그래도 집에 가려면 어쩔 수 없어서 친구들과 같이 가거나 혼자 갈 땐 뛰어서 가요.”

대전 화상경마장 일대 월평동은 15년 전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인접한 둔산동 정부대전청사 착공과 발맞춰 1993년 월평동 일대가 개발될 때만 해도 건설·아이티(IT) 회사 등이 입주하고 주거지역이 새롭게 형성되면서 활기를 띄어가던 동네였다. 1999년이 이런 아수라장의 시작이었다. 1993년부터 이곳에서 횟집을 운영해온 김대승(52)씨는 “건전했던 지역이 지금 유흥가 천지가 돼있다”며 한숨부터 쉬었다. “1990년대만 해도 생활하기 좋은 곳이었어요. 1999년 화상경마장이 들어오면서부터 모든 게 변했죠.”

취객·쓰레기 넘치고 교통체증
직장인 대상 상점·식당 문닫아
주변 초등학교 신입생 수 급감
“아이있는 가정, 못 버티고 방빼”

금·토·일요일 경마가 있는 날이면 거리는 술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들과 쓰레기로 넘쳤고 교통체증이 빈번해졌다. 오락실과 유흥가가 펼쳐지며 회사들도 하나둘 자리를 떴다. 더불어 식당 등 직장인을 상대하던 상점도 문을 닫았다. 실제로 경마장에서 90여m 떨어진 13층짜리 주상복합건물의 1~2층 상가는 1층 성인 오락실 한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비어있었다.

아이를 둔 젊은 부부들도 떠나고 있다. 다세대건물이 밀집해 있는 주택가와 아파트 단지는 각각 화상경마장에서 불과 50여m, 200여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월평중을 비롯해 초등학교 2곳도 화상경마장에서 300~450여m 거리에 있다. 월평초는 학생수가 급감하는 추세다. 화상경마장이 들어선 1999년 120여명이던 신입생은 지난해 49명으로 줄었다. 월평초 3학년 아들을 둔 학부모 장정미(42)씨는 “주변 엄마들이 이런 교육환경에서 아이 키울 수 없다며 떠나는 일이 많다. 나 역시 아이가 중학교 진학하면 이사를 가야 할까 고민 중이다. 아이가 우르르 나오는 경마꾼들을 바라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고 말했다.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2동 화상경마장 근처 풍경도 비슷하다. 14일 오전 11시께 의정부 화상경마장으로 삼삼오오 들어가는 경마꾼들 사이로 주민 허아무개(28)씨가 1살·4살 아들을 데리고 걷고 있었다. 허씨는 “화상경마장이 있는 줄 모르고 이사를 왔다. 금요일이나 주말에는 아이들 데리고 산책을 하거나 집밖으로 나오는데, 이런 모습을 계속 봐야 해서 다음 달 다시 이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허씨와 아이들 곁으로 경마를 하러온 차들이 줄지어 섰고, 상인들은 차량 사이를 뛰어다니며 경마 예상지를 팔고 있었다.

의정부2동 주민들은 화상경마장 탓에 ‘잠재적인 불안’에 시달린다고 입을 모았다. 의정부 화상경마장에서 220여m 떨어진 의정부서중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있다는 임은주(40)씨는 “늘 마음속 한편에 불안한 마음이 있다. 돈 잃고 나오는 분들 기분 언짢을 때 아이한테 무슨 일이 있지는 않을까, 사행성 짙은 시설 옆에서 자연스럽게 경마도박을 받아들이게 되면 어쩌나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한겨레>가 전국의 화상경마장 29곳을 분석해보니, 대구를 뺀 28곳이 의정부와 대전처럼 도심에 있었다. 이 가운데 학교와 5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 16곳일 정도로 대부분 주거지와 붙어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는 2009년 사행산업 건전화 방안 종합계획을 발표해 ‘2013년까지 장외매장(화상경마장)의 매출이 전체 경마장 매출의 50%를 넘지 않는 구조’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2009년 이후 화상경마장의 매출 비중은 2009년 70.5%에서 2012년 72.2%로 오히려 높아졌다.

전문가들은 사행성 짙은 시설이 주거지와 인접한 도심에 들어서면 도시 생태계 자체를 바꾼다고 지적했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도시계획학)는 “화상경마장 같은 시설이 생기면 술집, 유흥업소, 환전소 등 관련 시설들이 늘어나게 돼 건전한 경제활동은 점차 사라질 수밖에 없다. 이런 시설은 도박중독자를 양산하고 도박에 따른 음주·다툼을 불러 가정 파괴와 공동체 갈등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도시계획 단계부터 확실히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전 의정부/글·사진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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