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68% 수급권자·장애인인데 2018년까지 서초구 원지동 옮겨
“공공의료 복원 없이 이전만 논의” 중구·종로구청장 “이전 반대”
서초구 “이전 약속 지켜져야”, 복지부 “시립병원 등이 맡을 일”
“공공의료 복원 없이 이전만 논의” 중구·종로구청장 “이전 반대”
서초구 “이전 약속 지켜져야”, 복지부 “시립병원 등이 맡을 일”
서울 중구에 사는 이강식(71)씨에게 중구에 있는 국립중앙의료원은 “몇 안 되는 믿고 갈 수 있는 병원”이다. “3년 전 한 대학병원에 입원했었어요. 의료급여 수급권자라 진료비는 별로 안 들었지만 병실료나 밥값이 너무 많이 들었죠. 한달에 40만원 안 되는 기초생활수급비로 생활하는데 그때 일주일 입원하고 들어간 돈이 100만원이 넘었어요.” 이씨는 “다른 종합병원은 위축되는 느낌도 든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씨는 폐렴으로 국립중앙의료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시설은 사립병원 못지않았는데 돈을 한 푼도 더 내지 않았습니다. 나 같은 서민도 잘 치료해주는 병원이라 편하고 믿음이 갔죠.” 이씨의 “믿음직한” 국립중앙의료원이 2018년 서울 서초구 원지동으로 이전한다. 장례시설인 서울추모공원 근처 부지로 서초구 남쪽 끝자락에 있다. 이씨 같은 의료급여 수급권자들은 물론 국립중앙의료원이 있는 중구 등의 주민들도 이전 자체를 반대한다.
국립중앙의료원은 1958년 중구 을지로6가에 세워진 이래 서울 도심에서 공공의료기관 구실을 해왔다. 국립중앙의료원 이용 환자의 68%가 의료급여 수급권자이거나 노숙인, 장애인, 65살 이상 노인 등 의료취약계층이다. 이용 환자의 35%를 차지하는 중구·종로구의 반대가 특히 심하다. 최창식 중구청장과 김영종 종로구청장은 10일 성명을 내어 “마땅한 대책 없이 국립중앙의료원을 이전하면 강북권 주민들과 취약계층의 생명을 위협하는 의료 사각지대를 만드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국립중앙의료원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제대로 된 검토 없이 이전이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01년 국립중앙의료원 이전 논의가 시작될 때만 해도 공공의료가 핵심 열쇳말이었지만, 지금은 이전 자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재수 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은 “병원 이전 논의는 애초에 공공의료 기능 복원을 목표로 이뤄졌는데 지금은 지엽적인 이전 문제만 논의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립중앙의료원 이전은 서초구에 대한 보상 측면까지 있다. 서울시와 보건복지부는 2003년 서초구 원지동 서울추모공원을 설립하며 반대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국립중앙의료원 이전을 내세웠다. 진익철 서초구청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추모공원 건립 때 서울시와 보건복지부가 했던 병원 이전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추모공원이 들어오면서 집값 하락을 겪었던 주민들은 국립중앙의료원 이전 소식에 기뻐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립중앙의료원의 공공의료 기능이 축소되리란 우려도 적지 않다.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운영위원장은 “대형 병원이 즐비해 3000개 넘는 병상이 있는 서초구에서는 효율성을 추구하는 민간병원의 구조를 따르게 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서울시가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현중 무상의료운동본부 정책위원장은 “적정한 진료를 눈치 보지 않고 받을 수 있는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쪽방촌과 고령층이 밀집한 도심지역에 공공병원은 반드시 필요하다. 시급히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보건의료정책과 관계자는 “기존 병원 부지에 지역 공공의료원을 세우면 좋겠다는 입장이지만 구체적으로 논의한 바는 없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중증외상센터, 감염병센터 등을 만들기 위해 구급 헬기가 드나들기 편하고 경부고속도로와 인접한 서초구로 이전할 수밖에 없다. 지역 주민을 위한 의료는 서울시립병원 등 지역 공공의료기관이 맡아야 한다”고 밝혔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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