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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기 실린 죽도의 끝에 바람이 먼저 눕는다

등록 2014-03-04 19:33수정 2014-03-05 15:39

검도는 한순간에 승부가 난다. 강한 집중력과 체력, 오랜 인내의 수련이 검도 고수로 가는 바탕이다. 제주에서 치과를 하며 20년간 검도를 수련한 6단 김경숙씨가 죽도를 거머쥐고 겨눔세를 취하고 있다.
검도는 한순간에 승부가 난다. 강한 집중력과 체력, 오랜 인내의 수련이 검도 고수로 가는 바탕이다. 제주에서 치과를 하며 20년간 검도를 수련한 6단 김경숙씨가 죽도를 거머쥐고 겨눔세를 취하고 있다.
[건강과 삶] 여자검도사범회 김경숙 회장
제주 오름에 바람이 분다. 비릿한 내음을 품은 바람은 거친 제주 자연을 부드럽게 품고 있다.

부드럽게 선 상태에서 죽도를 겨눈다. 날카로운 눈매가 제주 바람을 제압한다.

선명하게 각이 선 팔 근육을 배경으로 검도 6단의 내공은 작은 체구를 거인처럼 인식하게 한다.

당긴 턱과 세운 목덜미, 반듯하게 편 등줄기와 편한 듯 힘을 뺀 양어깨. 그리고 마치 구름을 밟고 있는 듯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 가벼운 두 다리. 바로 검도에서 말하는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자연체’의 교과서이다.

치과의사 김경숙의 검도 [건강과 삶 #21]

두 손으로 부드럽게 잡은 죽도의 끝에 여검사의 기(氣)가 모이자 미세한 떨림이 감지된다. 한동안 기떨림이 계속되더니, 제주 오름의 정적을 깨는 기합 소리가 ‘쩌렁, 쩌렁’ 폭발한다.

제주 탄생 신화의 주인공 ‘설문대 할망’의 외침도 저러했을까? 옥황상제의 딸인 설문대 할망은 아버지 모르게 바깥세상으로 나와 하늘과 땅을 갈랐고, 화가 난 옥황상제의 미움을 받아 땅으로 내려온 설문대 할망의 치마폭에 담았던 흙이 쏟아지며 제주도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런 거인 할망의 유전자를 내려받은 듯, 여검사의 기합은 듣는 이들을 소름끼치게 할 만큼 힘이 있다.

머리치기와 손목치기, 허리치기의 기본 동작에 검도 22년의 진한 노력이 그대로 묻어난다.

검도 4단 이상의 여성 고단자 모임인 ‘한국여자검도사범회’ 회장인 김경숙(60)씨가 제주에 사는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닌 듯하다.

제주에서 태어나 초등학생 때 서울로 유학 가서, 연세대 치대를 졸업하고 곧바로 제주에 내려와 치과를 개업한 김씨는 제주 출신의 여성 치과의사 1호였다. 이미 30년 전이다. 온종일 구부리고 앉아 진료하는 직업이라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각별한 노력이 필요했다. 대학 시절부터 김씨는 치대의 홍일점 산악부원이었다. 전국의 산을 돌아다녔다. 제주에 내려와선 마라톤에 입문했다. 수십 차례 뛴 풀코스 최고기록은 4시간40분. 철인 3종에 도전하기 위해 수영도 했다.

1995년 8월에는 히말라야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원정대에 합류했다. 당시 41살의 김씨는 한국 최초의 에베레스트 등반대 여성 팀 닥터가 돼, 두 달간 해발 6500m의 에이비시(ABC)캠프에서 등반대원의 건강을 지켜줬다. 동상과 늑골골절상, 치질, 화상, 고소증세 등 대원들의 각종 질병을 치료해주며 젊은 시절부터 그리던 고산 등반의 꿈을 이뤘다.

어느 날 신문 광고를 보고 찾아간 검도 도장은 운동 마니아였던 김씨를 강하게 사로잡았다. 입문 1년 만에 초단을 딴 김씨는 일주일에 5번씩 도장에 가서 검도를 배우며 땀을 흘렸다. 마흔의 뒤늦은 나이에 시작한 검도였지만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죽도를 내리쳤다. 국내 대회에 출전해 입상도 했다.

검도는 한순간에 승부가 난다. 강한 집중력과 체력, 오랜 인내의 수련이 검도 고수로 가는 바탕이다. 제주에서 치과를 하며 20년간 검도를 수련한 6단 김경숙씨가 죽도를 거머쥐고 겨눔세를 취하고 있다.
검도는 한순간에 승부가 난다. 강한 집중력과 체력, 오랜 인내의 수련이 검도 고수로 가는 바탕이다. 제주에서 치과를 하며 20년간 검도를 수련한 6단 김경숙씨가 죽도를 거머쥐고 겨눔세를 취하고 있다.

제주출신 여성치과의사 1호
마흔에 시작한 검도…6단 올라
호구 벗고 찬 기운 맞을때 희열

찬물 샤워하고 채식·현미 즐겨
여든 넘어서도 검도 계속할 것

“저는 뭐를 하든지 끝장을 보는 성격 같아요. 공부도 그랬고 등반도 그랬고 검도도 그런 마음으로 했어요.”

김씨가 검도에서 감동받은 것은 일본의 90대 노검사들의 결기였다.

“10년 전에 한 달간 일본에 머물며 검도를 배웠어요. 마침 3일간 열리는 교토 검도연무대회를 보게 됐어요. 머린 하얀 노제자들의 부축을 받으며 문지방을 넘어 도장에 들어선 허리 구부정한 노인이 호구를 입고 죽도를 들더니, 엄청난 기합과 함께 상대를 향해 돌진했어요. 아주 반듯한 자세로 죽도를 휘둘렀어요. 그 모습은 기운이 팔팔한 젊은이들과 다름이 없었어요. 충격이었죠. 그래서 결심했어요. 여든 넘어서도 검도를 해야겠다고….”

검도는 한순간에 승부가 난다. 강한 집중력과 체력, 오랜 인내의 수련이 검도 고수로 가는 바탕이다. 제주에서 치과를 하며 20년간 검도를 수련한 6단 김경숙씨가 죽도를 거머쥐고 겨눔세를 취하고 있다.
검도는 한순간에 승부가 난다. 강한 집중력과 체력, 오랜 인내의 수련이 검도 고수로 가는 바탕이다. 제주에서 치과를 하며 20년간 검도를 수련한 6단 김경숙씨가 죽도를 거머쥐고 겨눔세를 취하고 있다.

검도 덕분에 김씨는 치과의사에겐 직업병이라고 할 수 있는 목 디스크나 오십견 같은 통증이 없다. 갱년기 증세도 경험하지 못했다. 추위도 잘 느끼지 않는다. 겨울에 검도를 한 뒤 꼭 찬물로 샤워를 했다. 환자의 이를 뽑을 때 힘을 써야 하지만 김씨는 그리 힘들지 않다. 살짝 잡아 본 김씨의 손은 찌릿할 정도로 강한 기운이 느껴진다.

“10㎏의 무게가 나가는 호구가 땀에 흠뻑 젖도록 운동을 한 뒤 호구를 벗으면 찬 기운이 강하게 다가와요. 희열이죠.”

검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했다. 석검에서 동검, 철검으로 진화했다. 한민족도 오래된 검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조선 정조 14년(1790년)에 간행된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본국검법’은 신라 화랑인 황창랑으로부터 시작된 세계 최고의 검법으로 알려져 있다. 화랑도에게 필수 수련과목이었던 격검이 그 시작이다.

김씨가 수련하는 검도는 일제에 의해 전해진 검도이지만 한국의 검도인들은 조선시대 모양이 갖추어진 조선세법이 현대 검도의 모태라고 믿고 있다. 현재 국내 유단자 수는 약 10만명에 이르렀고, 여성 유단자 수도 3000명을 웃돈다.

김씨는 “검도는 격렬한 운동이지만 보호장비가 있어 부상 위험이 적고 각자의 힘에 맞게 운동 강도를 조절할 수 있어서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즐길 수 있다”고 말한다.

검도는 한순간에 승부가 난다. 강한 집중력과 체력, 오랜 인내의 수련이 검도 고수로 가는 바탕이다. 제주에서 치과를 하며 20년간 검도를 수련한 6단 김경숙씨가 죽도를 거머쥐고 겨눔세를 취하고 있다.
검도는 한순간에 승부가 난다. 강한 집중력과 체력, 오랜 인내의 수련이 검도 고수로 가는 바탕이다. 제주에서 치과를 하며 20년간 검도를 수련한 6단 김경숙씨가 죽도를 거머쥐고 겨눔세를 취하고 있다.

5년 전부터 채식을 하는 김씨는 채식이 자신의 지구력을 키워준다고 믿는다. 채식을 하면서 체중도 줄고 피부도 맑아졌다. 성격도 더욱 온순해졌다. “채식이 좋아요. 하루아침에 육식을 끊어야 해요. 조금씩 채식으로 옮기려 하면 실패하기 십상이죠. 백미가 아닌 현미를 먹어요. 현대인들은 과다한 영양 섭취를 해서 건강을 망칩니다.” 대학 시절 산에서 만난 동갑내기 산악인 남편 이종량(제주산악연맹 회장)씨와 금실 좋기로 유명하다. 남편의 외조가 큰 힘이 됐다고 김씨는 자랑한다.

건강하기에 김씨는 왕성한 사회활동도 한다. 제주지역 환경운동연합 의장을 8년간 했고, 지금은 환경연합 부설 교육센터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김씨는 검도 7단이 목표이다. 6단을 따고 6년을 수련해야 7단을 딸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된다. 김씨는 5단을 따고 5년간 수련한 뒤에 6단 심사에 응시했지만 4번을 떨어진 뒤에 6단을 땄다.

김씨의 머리를 감싸는 두건엔 이렇게 쓰여 있다. “단련은 천일(千日)을 하고, 연습은 만일(萬日)을 한다. 그러나 승부는 일순간.” 그만큼 검도는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제주/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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