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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단독] 목맨 김일병 발견한 선임병 “중대장이 거짓진술 압박했다”

등록 2014-03-03 08:13수정 2014-08-06 16:54

기울어진 군 사법의 저울
내무반 동료 김준수씨 양심고백
전역 이후 인터넷에 진실 털어놔
“수사 초기 충동적 자살로 몰아
중대장, ‘관심 병사’ 상담 일지 짜깁기”
2011년 12월 가혹행위를 당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아무개(당시 20살) 일병의 조의금 290여만원을 여단장인 도아무개 대령이 횡령한 일이 드러났다. 이 사실만으로도 공분을 사고 있지만, 김 일병의 자살과 이에 대한 군의 수사 과정을 들여다보면 가혹행위 은폐, 기록 조작, 허위진술 강요 등 더욱 심각한 의혹이 들끓는다. 최초 발견 때 김 일병은 “숨을 쉬고 맥박이 뛰었다”고 여러 동료들이 전하고 있다. 하지만 응급 수송 등 군의 대처가 늦었다는 증언이 나온다.

▷ 관련기사 : ‘군 조의금 횡령 사건’ 알고보니…‘병사 자살 수사’도 은폐·조작 의혹

1만3000여명. 건군 이래 사망한 군인 가운데 군 수사당국이 자살로 결론낸 이는 이렇게 많다. 하지만 유족들은 군의 수사 결과를 믿지 못한다. 군 의문사가 많은 까닭이다. 2009년 활동을 마친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군이 자살·사고사라고 수사 결론을 낸 579건 가운데 ‘진상규명 불능’으로 처리한 사건은 48건, 부대 간부 주도로 은폐·조작한 것으로 결론낸 사례는 11건에 이른다. 그러나 국방부는 1만3000명의 죽음 가운데 단 한 건도 수사 결과를 번복하지 않았다.

이처럼 군 내부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가 투명하게 진실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는 폐쇄적인 군 사법체계에 있다. 부대의 철조망 너머 사법체계의 최정점에 자리잡은 지휘관은 성역이었다. 구속 여부를 결재하고 수사 보고를 받고 재판장을 임명하고 법정형 미만으로 형량을 줄일 수 있는 권한이 사단장급 이상의 지휘관에게 주어져 있다. <한겨레>는 ‘제복 입은 60만 시민에게 사법 정의는 이뤄지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 사법 감시의 사각지대인 군 사법체계를 깊이 들여다봤다.

2012년 3월3일 모든 병사들이 잠든 깊은 밤이었다. 당시 일병이었던 김준수(23·사진)씨는 작은 손전등에 의지해 내무반에서 일기를 써내려갔다.

‘어느덧 그 아이가 숨진 지 석달이 지났다. 2011년 12월3일. 나는 부사관 필기시험을 마치고 부대로 복귀했다. 그 아이는 내게 충성클럽(매점)에 가자며 다가왔다. 그때는 몰랐었다. 그 아이의 마지막 부탁이자 구조요청이었음을. 다음날이었다. 그 아이의 목에는 녹색의 굵은 밧줄이 감겨 있었다. 간부들은 몇몇 병사들에게 서로 피해볼 것 없지 않냐며 입단속을 당부했고 진실을 왜곡할 것을 압박했다. 나는 헌병대 조사에서 사실들을 왜곡했다. 남은 군생활이 두려웠다. 나는 살인자다….’

2012년 11월 전역한 김씨는 한 인터넷 게시판에 이 ‘일기’를 올렸고, 숨진 김아무개(당시 20살) 일병의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털어놨다. 김 일병이 가혹행위를 당했고, 평소 우울증 약을 먹는데도 부대에서 상담·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28일 대전역에서 <한겨레> 기자와 만난 김씨는 “김 일병에 대한 미안함을 평생 마음에 담아두고 살아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고 말했다.

헌병대는 김 일병이 충동적으로 자살한 것으로 전제하고 수사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헌병이 ‘(숨진) 병사가 약을 많이 먹어서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라는 식으로 물었고 ‘네’라고 답했다”고 말했다.

헌병대는 목격자 진술 내용을 조작했다는 의혹도 받는다. 김씨는 “당시 헌병 조사 때 실제로 진술한 내용과 제대하고 나서 유가족들이 보여준 수사기록이 달랐다. 헌병은 조사 당시 진술기록을 다 보여주지도 않고 지장을 찍게 했다”고 주장했다. 또다른 목격자 김아무개 일병이 사고 현장을 발견한 시점도 군 수사기록에 거짓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권익위 관계자는 “군 수사기록에는 (또다른) 김 일병이 오후 2시 근무를 마치고 행정관에 갔다가 5분 만에 (자살한) 김 일병을 발견했다고 기록돼 있지만, 실제 현장 조사를 벌인 결과 근무지부터 화장실까지는 걸어서 10분 이상이 걸릴 만큼 먼 거리다”라고 말했다.

헌병대가 사망사고 조사를 시작하기 전, 당시 전아무개 중대장은 김 일병을 처음 발견한 김씨를 따로 불렀다. 전 중대장은 그에게 “육군 부사관 지원을 할 예정이라고 들었는데, 사망사건에 연루되면 기록에 남고 굉장히 큰 오점이다. 너도 나도 진급하는 데 힘들지 않겠냐”며 “내가 (숨진 김 일병이 먹던 항우울제인) 프로작을 직접 관리했고 매일 상담했다고 (헌병대에) 진술해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 중대장은 이른바 관심사병으로 매일 면담해야 할 책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게 병사들의 증언이다. 그 대신 행정보급관, 소대장, 병장 등이 작성한 관찰일지 등을 짜깁기한 상담일지를 연대 행정통합업무시스템에 기록했다. 부작용으로 자살 충동이 우려되는 약물인 ‘프로작’ 관리도 박아무개 상사에게 맡겼다. 김 일병은 자살하기 40여일 전인 2011년 10월21일 프로작 여러 알을 한꺼번에 복용해 위세척을 받은 일까지 있었다. 박 상사는 국민권익위원회 조사에서 “병사가 배급받은 약을 매일 먹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고 했다.

전 중대장은 김 일병의 조의금 290여만원을 가로챈 여단장 도아무개 대령과 관사에서 자주 술을 마시고 지각 출근했다고 여러 전역 병사들은 진술했다. 국민권익위원회 자료를 보면, 김아무개 원사가 전 중대장의 잦은 지각 등 근무태만을 도 대령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김준수씨는 “여단장 관사에 청소하러 갈 때마다 술병이 나뒹굴었고, 냉장고에는 술이 가득 있었다”고 전했다.

도 대령이 여단장으로 부임한 2011년 이래 해당 부대의 자살·사고 사망자는 3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가 이어지자 도 대령은 2012년 봄 김 일병이 목맨 채 발견된 화장실로 군법사(승려)를 불러 수맥이 흐르는지 점검하게 했다. 도 대령은 올해 장군 진급 심사 대상자다.

대전/글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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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병 자살 사건은

육군수도기계화보병사단 26여단 본부중대 소속 김아무개(당시 20살) 일병은 2011년 12월4일 부대 화장실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됐다. 김 일병은 군 입대 직후 복무 부적응(자살 징후) 등으로 판정받아 이른바 ‘관심사병’으로 분류돼 특별 관리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선임인 정아무개 일병은 김 일병에게 잠을 재우지 않고 욕설과 인격 모독을 가했다. 부대 간부들은 이 사실을 알고도 김 일병과 정 일병의 내무반만 격리했다. 전체 병사가 60여명인 작은 부대에서 김 일병은 이후에도 정 일병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

김 일병은 우울증 치료를 받는 가운데 자살했다. 군 수사기관은 우울증 악화로 자살했다고만 결론내렸고, 김 일병의 부모도 이를 받아들여 부검도 하지 않은 채 장례를 마무리지었다. 그러나 김 일병의 선임이었던 김준수씨가 2012년 11월 ‘살인을 방관했다’고 고백하면서 문제제기가 이뤄졌다.

유족들의 민원제기로 이 사건을 조사한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달 24일 김 일병을 순직 처리하라고 국방부에 권고했다.

권익위의 조사에서는 도아무개 여단장이 김 일병의 조의금 290여만원을 가로채 헌병대 등 부대 간부들에게 회식비로 건넨 사실도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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