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주택 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을 발표한 26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한 상가에서 한 시민이 부동산중개업소 앞에 붙어 있는 월세 시세표를 보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세금 늘어나는 집주인, 월세 인상 불보듯 뻔해
영세 자영업자 등 혜택 못볼 듯…서민대책 맞나?
영세 자영업자 등 혜택 못볼 듯…서민대책 맞나?
“어이 없네요. 전 어제 벌써 집주인한테 전화 받았습니다. 두 달 뒤 전세 만기에 월세로 돌리겠다고. 그런데 벌써부터 이 동네 월세보다 더 비싼 가격을 부르더군요. 약 15% 정도 더 비싸게 말입니다. 이게 말입니다. 연쇄반응이라는 것이 있잖습니까? 전 사실 집이 한 채 있는데 직장 때문에 전세로 나와 살고 있는 중이였지요. 현재 살고 있는 집이 월세로 돌아선다면 저 역시 제 집의 전세를 월세로 돌릴 수 밖에 없고, 또한 저 역시도 월세를 올리는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면 이번 정부 정책에 의해서 도대체 뭐가 달라지는 거죠? 정부의 세수 확보, 그것 뿐 아닌가요?”(아이디 th******)
정부가 서민들의 주거비용 부담을 덜어준다며 ‘월세 지원’ 정책을 발표한 다음날인 27일 인터넷 커뮤니티 ‘다음 아고라’의 부동산 토론방에 올라온 글이다. 세입자가 월세 세액공제를 받게 되면서 임대소득 노출로 세 부담이 늘어날 걸 우려하는 집주인들이 또다시 월세를 올릴 게 뻔해 정책 실효성이 없을 것이란 얘기를 담은 것이다.
정부의 월세 지원 대책 발표 이후 정책 실효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김수현 세종대 도시부동산대학원 교수는 27일 <시비에스>(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나와 “월세의 실 수요자인 서민들이 정작 혜택을 못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세금을 덜어주는 간접적인 방식(세액 공제)으로 월세를 지원해주겠다고 하지만 “자영업자나 안정적인 직장을 갖지 않은 서민들의 경우, 세액공제 대상이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혜택을 받지 못할 것이란 얘기다. 그는 “월세 시장을 안정시키고 월세 세입자들의 생활을 도와주겠다는 취지라면 세액 공제 같은 우회적 접근 방식이 아니라, 정공법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맞다”며 이를 위해 “임대차등록제와 임대료 보조라는 두 가지 패키지를 먼저 시작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누리꾼들도 “월세를 안 살아 본 이들의 전형적인 탁상행정”(@jn*****)이라며 비판적 시각을 보이고 있다. 많은 이들이 세입자가 돌려받은 세액 공제액 만큼, 집주인이 월세를 높일 게 뻔하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한 누리꾼(다음 아이디 ij****)은 “임대 소득 2000만원 이하의 소규모 임대업자는 세금이 면제된다지만 세금이 면제된다고 월세를 인상하지 않을 리 없다”며 “연 2000만원을 넘기지 않는 한 얼씨구나 좋구나 하며 다른 사람들이 인상한 가격을 따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누리꾼(다음 아이디 i*****)은 “서울 시내에 주방도 없는 원룸이 50만원 정도고 변두리의 방 2개짜리 조그마한 아파트 월세도 50만원은 넘는다”며 “반월세가 아니라고 가정을 했을 때 연봉 6500만원이 넘는 사람이 가족을 데리고 원룸에 살아야 공제받을수 있는 한달치 월세 60만원을 혜택이라고 포장하려는 정부의 전시행정이 가련하다”고 비판했다.
월세 지원책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민주당 전·월세 티에프(TF)는 이날 전·월세 문제 해결을 위해 ‘임대차등록제 법안’을 28일 발의하겠다고 발표했다. 법안은 3주택 이상 보유자가 1주택 이상을 임대하면 임대사업자로 의무 등록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임대인이 임대소득에 대한 세금과 보험료 증가분을 세입자에게 전가해 전·월세 가격을 상승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해 소득세와 법인세를 50~100% 감면하고, 일정 조건을 충족시키면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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