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류 사업 꿈안고 4년 전 귀국했다
돈벌이 없이 찜질방·고시원 전전
5만원 15장 복사…음식점에서 덜미
돈벌이 없이 찜질방·고시원 전전
5만원 15장 복사…음식점에서 덜미
설렁탕을 먹다 붙들린 건 23일이었다. 식당 주인조차 그가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휴학생인 줄은 몰랐다. 이아무개(23)씨 본인조차 자신이 지폐위조범이 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씨는 8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플로리다주립대학을 휴학하고 2010년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의 아버지는 지금도 텍사스주에서 한의사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미국에서부터 부모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한국으로 건너온 뒤에는 대구에 사는 고모에게 조금씩 용돈을 받아 생활비로 썼다.
그는 의류사업을 하겠다는 꿈을 품고 한국에 왔다. 정 안되면 영어강사로라도 뛸 생각이었지만, 실제로는 별다른 일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경찰에 “사업을 제대로 시작도 못해봤다”고 말했다. 찜질방과 고시원을 전전했고, 생활고에 시달렸다. 이씨가 머물던 서울 을지로6가의 고시원 원장은 “일하러 나가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이씨가 신경안정제를 먹고 쓰러져 있는 걸 얼마 전 발견하기도 했다. 불면증에 시달려 처방받은 거라고 했다”고 전했다. 마음의 병까지 앓았던 것이다.
급기야 그는 지폐 위조에까지 나섰다. 돈이 필요할 때마다 소형 컬러복사기로 5만원짜리를 찍어냈다고 한다. 고모에게 용돈으로 받은 5만원짜리 지폐 3장이 원본이 됐다. 위조한 돈으로 이씨는 서울 장충동 일대 식당에서 주린 배를 채웠고, 담배도 사 피웠다.
이씨는 23일 장충동의 한 설렁탕집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위조지폐범을 잡으려고 경찰이 뿌린 사진을 식당 종업원이 알아봤다. 경찰은 위조지폐가 사용된 업소의 주변 폐회로텔레비전(CCTV)으로 이씨를 특정했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이씨를 위조통화행사 및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고 28일 밝혔다. 5만원짜리 15장을 컬러복사한 혐의다. 경찰은 “통화위조 자체는 중대범죄이지만 생활비를 목적으로 한데다 조직적인 범죄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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