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정아무개(22)씨는 최근까지 서울 관악구의 한 여성전용 원룸에 살았다. 건물 입구에는 폐회로텔레비전(CCTV)이 달려 있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진 든든했다. “건물 주인아저씨가 ‘부모님이 연애 사실을 알고 있느냐. 모른다면 내가 알리겠다’고 했어요. 시시티브이로 제가 건물 앞에서 애인과 작별 인사 하는 걸 봤다더라고요. 관리사무소에 가서 보니 카메라에 줌(확대) 기능도 있었어요.” 정씨는 “사생활 간섭도 불쾌했지만, 범죄 예방 목적인 줄 알았던 시시티브이에 감시당했다는 생각에 곧바로 집을 옮겼다”고 말했다. 정씨는 이사한 뒤에도 동네 골목에 설치된 시시티브이 쪽 창문은 잘 열지 않는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수집된 내 정보를 통해 어떤 행동을 유도받거나 원치 않는 결정을 해야 한다면, 내 정보를 내 뜻대로 지키는 데 실패한 것이다. 이런 정보인권 침해 결과로 흔히 금전적·정신적 피해만을 떠올리지만, 그렇지 않다. 정씨의 사례처럼 사실상의 ‘감시’로 이어질 수 있다.
국가와 기업의 차원으로 확대되면 그 결과는 더 심각해진다. 사소한 듯 보이는 각종 개인정보의 무단 수집·이용을 방관하면, 공권력과 기업의 시민 감시가 강화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정보인권 침해는 표현의 자유, 사상·양심의 자유, 형사절차상의 권리 등 다른 기본권 위축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라고 지적한다.
2011년 12월 검찰은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 일대의 휴대전화 기지국을 뒤졌다. 민주통합당 대표 선출 예비경선에서 불거진 금품 살포 의혹을 수사한다는 명목이었다. 검찰은 통화내역을 뜻하는 ‘통신사실 확인자료’를 각 통신사로부터 받아, 당일 오후 5시부터 10분간 이뤄진 모든 통화내역을 샅샅이 살폈다. 원치 않게 통화내역이 검찰에 제공된 것을 알게 된 한 언론사 기자는 2012년 6월 헌법재판소에 ‘기지국 수사’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재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
이처럼 휴대전화 정보도 기본권 침해의 주된 수단으로 쓰인다.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야 통화내역과 감청이 가능하지만 영장 발부 기준은 느슨한 편이다. 휴대전화 가입자의 인적사항은 영장 없이 수사기관의 요청만으로 제공된다.
2008년 촛불집회 때는 수사기관에서 집회와 관련된 시민단체 간부의 휴대전화를 위치추적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휴대전화 실시간 위치추적은 통화하지 않는 대기모드인 경우에도 10분 간격으로 단말기의 위치가 자동으로 확인되고, 해당 기지국의 위치정보가 담당 수사관의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로 발송되는 수사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는 순간에도 수사기관에 이용될 수 있는 정보가 속속 수집된다. 편의점·대형마트에서 쓰는 ‘판매시점 정보관리시스템’(POS)은 고객의 성별, 나이대, 구매 요일·시간·제품 등을 모두 저장한다. 물품 결제수단인 신용·체크카드 정보도 남기 때문에 누구인지 파악할 수 있다. 수사기관이 집회·시위 현장 근처에 있는 편의점들을 조사하면 ‘열성 집회 참가자’들의 명단을 작성하는 일도 가능하다.
범죄를 예방한다며 곳곳에 설치된 시시티브이는 집회·시위의 감시꾼으로 활용된다. 정보인권 침해가 폭넓은 정치적 권리를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진보네트워크센터’ 장여경 정책활동가는 “시시티브이가 주로 정부 정책에 항의하는 사람들을 ‘감시’하는 목적으로 쓰이면서 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8년 촛불집회 때 서울 세종로에 교통관제 등 목적으로 설치된 시시티브이는 집회 참가자들을 향해 ‘줌’하고 회전했다. 이를 발견한 인권단체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 2009년 ‘용산참사’ 당일 저녁 열린 긴급 촛불집회 때도 한 민간업체의 시시티브이 4대가 집회 참가자들을 상세히 담아냈다. 당시 한 언론은 이날 촬영이 “경찰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는 업체 담당자의 인터뷰를 실었다.
제주 서귀포시 강정동 해군기지사업단 정문, 해군기지 건설공사장 주요 출입구 위에도 시시티브이가 설치돼 있다. 건설공사 현장시설 보호가 설치 목적이라면서도 정작 시시티브이는 건너편에 앉아 있는 시민들을 바라보고 있다. 경찰은 시설보호용 시시티브이에 찍힌 영상을 ‘업무방해죄’ 기소용 증거자료로 활용했다.
범죄예방 넘어 일상의 감시로
집회현장선 공권력 ‘방패막이’
경찰이 집회 참가자 색출 위해
편의점 카드이용 명단 검색도
초고압 송전탑 건설 갈등이 빚어지는 경남 밀양에도 시시티브이가 깔리고 있다. 주로 송전탑 찬성 주민들의 집 앞이다. 한 주민은 “공사 현장 가는 길에 있는 찬성 주민들 집 앞에 시시티브이가 달려 있어서, 송전탑 반대 주민들이 이동하는 것을 확인해 기소하는 데 악용하는 게 아니냐”고 불안해했다.
정보인권은 노동권과도 연결된다.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지 각종 수단을 동원해 감시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이뤄진다. ㅅ여대 경비노동자 최아무개(55)씨는 “반장이 계속 시시티브이에서 잘 보이는 위치에 있으라고 얘기한다. 시시티브이에서 사라지면 바로 전화가 온다. 인권을 유린당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정보업체인 ‘구글’은 2012년 ‘구글 맵스 코디네이터’ 서비스를 내놨다. 직원의 휴대전화에 애플리케이션을 깔면 직원의 현재 위치를 5초마다 회사로 전송해준다. 회사가 직원들의 위치와 이동경로를 실시간으로 파악해 업무 효율을 높인다는 취지다. 구글은 직원의 근태, 승진, 급여 기록 등을 검토해 회사를 그만둘 가능성이 높은 직원을 예측하는 서비스도 개발중이다. 구글의 라즐로 복 인적자원부장은 “직원 스스로 회사를 떠날 생각을 미처 하기도 전에 그 직원의 머릿속을 들여다본다”고 말한 바 있다.
정보인권에 대한 감수성은 기본권 수호의 핵심 요건일 수밖에 없게 됐다. 최철웅 계간 <문화과학> 편집위원은 “정보가 작은 유에스비 하나에 모두 담길 정도로 디지털·데이터베이스화했을 때 정보의 활용 가능성은 엄청나다. 국가·자본이 개인정보를 탐내는 건 이 때문이다. 시민들이 개인정보 자체를 내가 결정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리, 어떤 정보를 제공하고 선택하고 그 정보가 어떻게 어느 범위까지 활용될 것인지를 스스로 통제하는 게 매우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감시사회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시주체의 의지에 따라 훈육되거나 혹은 그에 맞추어 생활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정보인권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 그 자체와 직결되는 권리”라고 말했다.
김효실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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