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정년퇴임하는 미야지마 히로시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는 인터뷰에서 한국과 일본의 역사 해석 논란을 두고 ‘국민국가 지향의 20세기적 연구 패러다임을 버리고 21세기 패러다임으로 가야 소모적인 역사논쟁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류우종 기자 jryu@hani.co.kr
[한겨레가 만난 사람] 정년퇴임하는 미야지마 성균관대 교수
2002년부터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대학원)에서 강의해온 미야지마 히로시(66) 교수가 2월에 정년퇴임한다. 미야지마 교수는 한국사를 동아시아와 세계사적 시야에서 파악하면서 한국사 연구의 기존 틀(패러다임)을 바꿀 만한 획기적인 연구들을 내놓았다.
소농사회를 토대로 한 그의 ‘유교 모델’론은 서구 근대적 국민국가 완성을 지향하는 근대사학의 맹점을 드러내면서 식민사관으로 대표되는 일본 근대사학계의 한국사 인식 토대를 근본적으로 뒤엎어버린다. 그는 동아시아에서 일본만이 근대화에 성공했다는 근대화 패러다임은 허구이며, 이 패러다임을 뒷받침하는 일본 봉건제론은 메이지유신 이전까지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주변적 지위에 머물렀던 난점을 해결하고자 일본에 실재하지도 않았던 서구적 봉건제 개념을 끌어들여 끼워맞춘 것이라 말한다. 18세기까지 중국·조선 등 동아시아 사회가 서양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고 그는 본다. 따라서 일본 봉건제와 그것을 수용한 일본 근대사학은 잘못된 것이며, 식민사관이 주장한 조선사 정체론을 부정하기 위해 세운 조선사회 자본주의 맹아론도 서구 중심의 발전사관에 끼워맞춘 일본 근대사학의 잘못을 답습하는 것이다. 토지대장이나 과거제도 등 조선의 사회경제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토대로 한 그의 연구는 설득력이 높다.
13일 한겨레신문사를 찾은 미야지마 교수는 “한국과 일본 모두 20세기적 패러다임에 함몰된 역사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동아시아 시야서 한국사 연구
소농사회 토대로 한 ‘유교모델’론
일본 학계 한국사 인식 뒤집어놔
한·일 모두 ‘국민국가 완성’이란
근대화 패러다임에 지배당해
20세기 역사인식서 벗어나야
지금같은 비판엔 일본 긴장안해
한·일관계 전망 비관적이진 않아
-한국사 연구자가 적은 이유는? “일본에선 한국사에 대한 관심 자체가 크지 않다. 따라서 활동할 기회나 일할 자리도 많지 않다. 연구 기획 등에서 한국사 분야는 아예 빠져버리는 경우가 많다.” -왜 동아시아, 특히 조선 사회경제사에 관심을 갖게 됐나? “1967년에 입학해 1970년대에 대학생활을 했는데, 당시 일본 사학계는 사회경제사 연구가 압도적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다. 내 관심사는 조선 토지제도였다. 내가 조선사람들이 많이 사는 오사카 출신이어서 그들과 어울릴 기회가 많았던 것도 영향을 끼쳤다. 동양사 중 중국사는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하니까 나는 한국사를 택했다.” -지금까지 무슨 책을 냈나? “한국어판은 <나의 한국사 공부>(너머북스), <일본의 역사관을 비판한다>(창비) 등 모두 4권을 냈다. 일본에서 출간한 책도 있다. <조선 토지조사사업사 연구>(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 <양반>, <명청과 이조시대>(중앙공론) 등이다.” -소농사회론은 교수의 작품인가? “소농사회라는 말 자체는 내가 만든 게 아니다. 보통 농촌문제, 농촌사회 인식 차원에서 사용되는 말인데, 내가 말하는 소농사회는 그런 단순한 농촌구조가 아니라 국가 전체 구조 차원의 얘기다. 국가시스템으로서의 소농사회를 얘기한 것은 내가 처음일 것이다.” 소농사회는 토지를 소유하든 다른 사람 땅을 빌리든 기본적으로 자신과 그 가족의 노동력만으로 독립적인 농업경영을 하는 소농이 지배적인 농업사회를 가리킨다. 이는 대토지소유제를 토대로 한 유럽 영주계층의 직영지 경영 방식이나 광범위한 농업노동자들이 존재한 동남아·서남아시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미야지마 교수는 이런 독특한 소농사회가 중국에서는 10세기 송대에 등장해 명대에 확립됐고, 한국도 곧 그 뒤를 따랐으며, 일본에선 17세기 이후 도입됐다고 본다. 소농사회는 과거제 확립과 이의 토대가 되는 인쇄술과 서적의 보급, 신분제 해체, 농업과 상공업의 비약적인 발전과 상품·화폐 및 시장경제의 물적 토대였다. 송대 신유학을 집대성한 주자학은 과거제 채점기준이 되고 유럽·일본에는 없던 중앙집권적 관료사회의 지적·이념적 기반이 됐다. 과거 합격자의 신분이 세습되지 않는 유교모델 사회는 신분제 사회가 아니었다. 신분제는 사회적 분업이 자동으로 이뤄지는 시장이 없을 때 지배층이 분업을 강제하기 위해 만든 장치라고 보는 미야지마 교수는 유럽과 에도시대 이전의 일본이 신분제 사회였던 것은 시장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본다. -일본에선 여전히 일본 봉건제론이 대세인가? “지금 일본 사학계에서도 일본 봉건제론은 오히려 소수파다. 1980~90년대 이후 그렇게 됐다. 하지만 학교 교과서는 여전히 일본 봉건제론을 그대로 싣고 있다. 나는 일본 봉건제론과 거기에 대항한 조선 자본주의 맹아론 둘 다를 비판하고 대신 소농사회론을 제시했다. 조선에 봉건제가 없었다고 한 건 일본 봉건제론자들 주장과 다름없었기에 오해를 샀다. 특히 일제의 조선 토지조사사업이 조선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부분인데, 일제를 미화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하지만 내 책을 제대로 읽어보면 그게 아니라는 걸 알 것이다. 한국의 근대화는 이미 조선시대부터 그런 토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조선 토지조사사업사 연구>를 제대로 읽어본 사람은 일본에도 몇 안 될 것 같다. 그 책을 좀더 쉽게 요약해서 두 나라에서 다시 냈으면 좋겠다.” -또 다른 책은? “일본에서 올해 말 두 권이 나올 예정이다. 한 권은 <동아시아 소농사회론>, 또 하나는 <방법으로서의 동아시아사>. 이와나미 출판사에서 나오는데 이제까지의 발표 내용을 모아 엮은 것이다. 한국에서는 족보 연구서를 낸다. 오랫동안 내고 싶었던 것이다. 한국 족보는 왕실·귀족 중심의 유럽 족보와는 달리 개방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교학사 역사교과서 문제로 시끄러웠다. “한국 교과서 문제에 대해 별로 얘기하고 싶진 않다. 다만 한국이든 일본이든 역사교과서가 모두 20세기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모두 국민국가 완성이라는 근대화 패러다임을 제1의 과제로 설정했을 때의 역사인식에 아직도 지배당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는 두 나라의 입장이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지금 어떤 역사인식이 필요한지를 알려면 20세기를 넘어선 21세기 패러다임이 나와야 한다. 한국이 지금 같은 방식으로 일본을 비판하는 한 일본은 별로 긴장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이 유리했던 20세기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한국은 계속 불리할 수밖에 없다. 21세기 패러다임으로 넘어가 그 새로운 틀에서 동아시아사를 바라봐야 한다. 그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 방식의 일본 비판은 쓸데없는 에너지를 낭비하는 소모적인 것이다.” 그는 “일본에서 내는 책 두 권도 20세기 패러다임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나름대로 고민한 결과물”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컨대 지금의 중국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이는 20세기 패러다임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다. 경제는 급속도로 발전하는데 정치는 의회체제도 확립돼 있지 않다. 이걸 제대로 설명할 틀이 없다. 이는 세계사적으로도 큰 문제다. 이를 제대로 볼 수 있는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역사인식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그래야 생산적이다.” 미야지마 교수는 한 해 수백만명이 오가는 한-일 관계가 지난 150년간 경험해본 적 없는 새로운 시대, 역학 재편기에 들어갔다며 최근 불거진 갈등에 우왕좌왕하고 있지만 “비관적으로 보진 않는다”고 했다. 인터뷰/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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