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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성기보다 더 예민한, 외계인과도 통할 듯한…

등록 2014-01-24 20:00수정 2014-01-25 12:22

손엔 얼굴이 없지만 표정이 있다. 성난 손, 힘든 손, 지친 손, 기쁜 손, 설레는 손. 손은 심장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지만 우리 몸의 어느 기관보다 마음을 가장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 신체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손엔 얼굴이 없지만 표정이 있다. 성난 손, 힘든 손, 지친 손, 기쁜 손, 설레는 손. 손은 심장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지만 우리 몸의 어느 기관보다 마음을 가장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 신체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몸 / 손
▶ 우리 몸에서 가장 정밀하고 섬세한 움직임을 하는 곳은 어디일까요. 손입니다. 가장 고등한 영장류인 침팬지와 보노보는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이 완전히 마주 볼 수 있어야 가능한 ‘핀셋 집기’를 할 수 있는데요, 인간의 손도 그렇지요. 5개의 손가락과 손바닥으로 이뤄진 나의 손은 나의 마음입니다.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쓰고 악기를 연주하고 손을 잡습니다. 지금 당신의 손이 은유하고 있는 삶은 어떤 모습인가요. 손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아이를 처음 내 품에 안았을 때 손끝에 느껴지던 감촉을. 아직 양수에 젖은 아기의 피부는 마치 푸딩 같았다. 너무도 몽글몽글하고 말랑말랑해서 쥐면 손가락이 푹 들어갈 것만 같은 연약한 피부. 아이의 그 살결을 손끝으로 느끼던 순간, 비로소 아이를 낳았다는 강렬한 안도감과 만족감이 온몸을 채웠다. 그 느낌은 아이의 울음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보다, 아이의 새까만 머리카락을 처음 보았을 때보다 더욱더 강력하고 견고했다. 손은 그 어떤 감각기관보다 현실을 붙잡는 힘이 있었다.

진화론자들은 진화의 가지에서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달라진 지점을 ‘손’을 가진 시점으로 꼽는다. 사람은 두 주먹을 꼭 쥐고 태어났다가 힘없이 손을 떨구며 세상을 떠난다. 손에 잡힐 듯 생생한 이미지에 현혹되고,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가는 것들을 잡고자 미친 듯이 질주한다. 진화론자들은 동물과 가장 확연히 구분되는 사람됨의 기원을 ‘손’에서 보았다. 까마득한 시간의 언젠가, 인간은 두 발로 땅을 딛고 섬으로써 손을 보행과 이동의 의무에서 면제해 주는 대신 도구를 만들고 사용하는 임무를 맡겼다. 도구를 만들고 사용하기 위해서는 대상을 단단히 쥐어야 할 뿐 아니라, 세밀하게 조작이 가능해야 한다. 그런 점에 있어서 인간의 손은 최상이었다. 손가락이 길고 가늘어 물체를 감쌀 수 있을 뿐 아니라, 엄지가 다른 손가락과 마주 보고 있어 엄청난 악력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성인 남성들의 악력은 40㎏ 정도이며, 단련을 하면 54㎏에도 이른다. 심지어 갓 태어난 갓난아기조차도 손아귀 힘만으로 자신의 체중을 지탱할 수 있을 정도다.

손가락 끝과 끝 마주 댈 수 있어
세밀하고 정교한 작업 가능해져
동물은 없는 이 능력으로 인류는
문화와 예술, 문명을 이룩해냈다

전체 뼈 25% 이상 손에 몰려있고
신경말단도 빽빽하게 퍼져있어
주변을 빠르고 예민하게 감지
평생 250만번 이상 움직이며
많은 일을 묵묵히 수행한다


물건 잡는 능력 최대화시키는 지문

하지만 악력이 센 것만으로 인간의 손이 인간됨의 기원이라 말하기에는 부족하다. 나무 위에 사는 동물이라면 제 몸 하나쯤은 거뜬히 버티기 때문이다. 인간의 손이 지닌 또 하나의 비밀은 엄지손가락의 끝과 다른 손가락의 끝을 마주 댈 수 있다는 것이다. 손이나 손가락 전체가 아니라 아주 좁은 끝부분만도 붙일 수 있는 능력은 인간의 손에 세밀하고 정교한 작업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한다. 정교하게 작동하는 손은 깃털을 뽑고 낟알을 고르는 데도 유용했고, 붓과 젓가락, 바늘처럼 작고 섬세한 도구들을 이용할 수도 있었으며, 찰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거나 복잡하게 얽힌 매듭을 풀어낼 수도 있었다. 인류는 이를 바탕으로 문화와 예술과 문명을 이룩해 냈다.

인간의 한 손은 총 27개의 뼈로 이루어져 있다. 성인의 몸 전체 뼈가 206개이니 전체의 4분의 1이 넘는 수의 뼈가 신체표면적 5%에 불과한 손에 몰려 있는 셈이다. 뼈가 많은 만큼 이들을 이어주고 잡아주는 근육과 인대도 많아 손의 정교한 움직임을 돕는다. 또한 손에는 1㎠당 수천개에 이르는 신경말단이 빽빽하게 퍼져 있어서-이 비율은 신체의 모든 기관들 중 최고다. 심지어는 예민함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성기보다도 손에 분포된 신경말단이 더 많다. 가장 ‘현실적인 감각’을 손으로 느낀다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인 듯하다-주변 환경을 가장 빠르고 예민하게 감지한다. 헬렌 켈러의 경우처럼 ‘손으로 세상을 보고 듣는’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보통 사람들도 충분히 주머니 속의 동전이 얼마짜리인지 정도는 너끈히 구별할 수 있다.

또한 손을 이루는 피부는 다른 피부와 다르다. 일단 손은 피부색에 관계없이 모두 희거나 분홍색을 띠며, 아무리 털이 많은 사람도 손에는 털이 나지 않는다. 대신 손에는 많은 수의 독특한 땀샘이 존재한다. 이곳에 존재하는 땀샘의 입구는 약간 솟아올라 손바닥 전체에 가느다란 융선을 만든다. 이것이 바로 지문이다. 유독 손에 존재하는 땀샘만이 융선을 형성해 지문을 만드는 것은 물건을 잡는 손의 능력을 최대화시키기 위해서다. 매끈한 표면보다는 굴곡이 있는 표면이 마찰력이 커서 미끄러지지 않고, 바짝 마른 수건보다는 젖어서 축축한 수건을 더 꽉 잡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그래서 손바닥에 있는 땀샘은 더위와는 관계없이 스트레스 상황에서만 반응한다. 수렵 채집 시절,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무엇이든 쥐고 던지거나 휘둘러야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에 손바닥의 땀샘은 스트레스 신호에만 반응하도록 설정된 것이다.

하지만 최근 손바닥의 땀샘,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이 놓인 패턴이 형성한 무늬인 지문은 개인을 식별하는 용도로 더 많이 쓰인다. 손의 융선은 임신 23~29주 사이에 자리잡는데, 유전의 영향이 아니라 환경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독특한 지문을 가지게 된다. 심지어는 유전자 정보가 같고 하나의 자궁을 공유했던 일란성 쌍둥이라 하더라도 미묘한 태내 환경 차이에 따라 지문이 다르게 형성되므로 지문은 개인을 구별하는 데 있어 디엔에이(DNA)보다 더 유용한 측면이 있다. 진화상의 필요에 의해 선택된 형질이 환경이 바뀌면서 새로운 용도를 획득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이 반지를 손가락에 끼워주며 미래를 약속하는 것은 가장 보편적인 구애 방식이다. 그리고 왼손의 네번째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는 것은 그 손가락이 심장과 직접 이어져 있다는 옛 믿음에서 나온 전통이다. 이제는 고전이 된 영화 <이티>(E.T.)에서 어린 지구 소년 엘리엇과 먼 외계에서 온 방문자 이티는 손가락을 마주대며 마음의 빗장을 풀었다. 또한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소설을 영화화한 1992년 작 <연인>(L’amant)에서는 수많은 짙은 베드신을 제치고 가장 에로틱했던 장면으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은 것은 자동차 뒷좌석에 나란히 앉은 젊은 남녀가 아무 말 없이 서로의 손가락만을 희롱하던 장면이었다. 이처럼 손은 심장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기관 중 하나이지만, 사람과 사람, 심지어 외계인의 마음까지도 잇는 능력이 있는 듯하다.

안정, 믿음, 우정, 환희, 신비의 촉감

실제로 손은 사람들 사이의 친밀도를 높여준다. 2010년 미국 캘리포니아 의과대학(UCSF)의 연구진은 미국프로농구(NBA)팀 소속 선수들의 스킨십을 분석한 결과, 동료들끼리 손뼉을 마주치고 주먹을 맞대거나 손으로 어깨나 등을 토닥이는 등의 손을 이용한 교류가 잦은 팀일수록 패스 성공률도 높을 뿐 아니라 팀의 승률도 높았다는 사실을 찾아낸 바 있다. 또한 캘리포니아공대의 연구진은 두명의 실험자를 마주 앉게 한 뒤 각각 집게손가락으로 상대를 가리키게 했는데, 두 손가락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손끝에서는 미세한 떨림이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했다. 정밀 카메라로 찍어 분석해 본 결과 이들이 손가락으로 서로를 가리키는 시간이 늘어나자 그들의 손가락 떨림의 진동과 방향이 점차 일치되기 시작했고, 이들의 뇌에서는 친밀감을 담당하는 영역이 활성화되었다고 한다. 실제로도 손을 이용한 스킨십은 사람들 사이의 긴장을 완화시키고 뇌 활동에 변화를 일으켜 친밀함을 더하는 작용을 함이 증명된 것이다.

손은 인간에게 있어 인간됨을 갖게 해준 근원이자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이다. 손은 일생 동안 250만번 이상 움직이지만 결코 불평하지 않으며, 가장 복잡하고 가장 많은 일들을 가장 오랫동안 묵묵히 수행하며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한다. 또한 아기들은 어머니의 부드러운 손길이 주는 보살핌에서 안정을 느끼고, 넘어지지 않게 잡아주는 굳센 아버지의 손에서 믿음을 배운다. 친구가 내민 활기찬 손에서 우정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고, 연인의 고운 손에서 사랑의 환희를 느낀다. 갓 태어난 아이의 조그만 손에서 생명의 신비를, 황혼의 끝자락에서도 놓지 않는 동반자의 주름진 손에서 인생의 만족을 얻는다는 것까지 고려한다면 인간은, 아니 인류는 손에서 시작해 손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삼 내 곁에 존재하는 손들에게 감사하며 그들의 손을 한번쯤 꼭 잡아주는 것이 어떨까.

이은희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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