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위와 ‘대화’ 약속해놓고
“동네상권 활성화 추진하면…”
뒤로는 ‘찬성 유도’ 설문조사
현명관 회장 ‘민심 잡기’ 편지
교회 헌금 뒤 ‘이간질’ 소문도
대책위 “개장 명분 쌓기” 반발
“동네상권 활성화 추진하면…”
뒤로는 ‘찬성 유도’ 설문조사
현명관 회장 ‘민심 잡기’ 편지
교회 헌금 뒤 ‘이간질’ 소문도
대책위 “개장 명분 쌓기” 반발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이 지난해 12월5일 회장에 취임한 뒤 서울 용산 마권장외발매소(화상경마장) 개장을 본격 추진 중인 한국마사회가, 홍보성 여론조사를 벌이고 인근 교회에 헌금을 하는 등 반대여론 무마 작업에 나서고 있다. 마사회는 지난해 9월 건물 완공 이후 주민들의 반대로 100여일간 개장이 미뤄져온 용산 화상경마장을 이달 24일 또는 2월7일 개장하려는 것으로 전해졌다.▷ 관련기사 : 용산 화상경마장 ‘학교옆 이전’ 강행 움직임
19일 마사회와 ‘용산 화상도박경마장 입점 저지 주민대책위원회’(대책위) 등의 말을 종합하면, 마사회는 최근 용산 화상경마장 인근 주민들을 대상으로 개장에 유리한 방향으로 여론을 유도하는 설문조사를 벌이고 있다. 마사회의 의뢰를 받아 서울마케팅리서치가 벌인 설문조사는, 용산 화상경마장 반대주민을 ‘일부 주민’으로 규정하면서 마사회의 입장을 홍보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경마장을 복합문화시설로 활용하고 주민 취업을 확대해 동네상권을 활성화하는 방안이 추진된다면 경마장 개장을 찬성하십니까?’, ‘새로 건립된 용산 화상경마장이 일부 주민의 반대로 개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와 같은 식이다.
마사회가 대화 상대로 인정하는 대책위는 설문조사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대책위에서 활동하는 주민 정방(43)씨는 “설문조사를 한다는 사실조차 우연히 조사원이 주민에게 묻는 모습을 보고 알게 됐다. 대화를 하기로 해놓고 인력과 물량을 앞세워 개장을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조사는 일방적인 질문으로 주민을 호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사회는 15일 현 회장 이름으로 ‘용산구 주민들께 드리는 글’을 주민들에게 전하기도 했다. 현 회장은 이 글에서 “한국마사회는 신 용산지사의 개장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개장 의지를 밝히고 “문화강좌를 운영하고 골목상권을 살릴 것”이라고 밝혔다.
주민들은 마사회가 용산 화상경마장의 일방적 개장을 앞두고 명분쌓기를 벌이고 있다고 보고 있다. 용산 화상경마장 근처에 있는 성심여고의 교사 홍용표(42)씨는 “2월7일 개장, 1월24일 개장 등 여러 가지 소문이 나오고 있다. 설문조사를 하고 회장이 글을 쓰고 하는 식으로 일단 명분을 쌓아놓고 혼란스러운 틈을 타 기습 개점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주민들 사이를 이간질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용산 화상경마장 근처 한 교회의 목사는 “마사회 홍보띠를 두른 사람들이 주민들한테 우리 교회가 헌금을 받는 등 경마장 개장에 찬성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우리를 포함한 대부분의 교회는 경마장이 가져올 중독 문제를 우려해 여전히 반대하고 있다. 이런 헌금을 했다면 하나님을 모욕한 것이다. 마사회에 돌려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한 마사회 관계자는 <한겨레>에 “대책위 공동대표 7명 가운데 2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찬성으로 돌아서고 있다”고 말했지만, 대책위는 “이전호 충신교회 목사가 외국 출장이 잦아 대책위에서 빠졌을 뿐 나머지 6명 공동대표는 여전히 모두 반대 입장”이라고 밝혔다. 공동대표 6명 가운데 학부모 등 5명은 ‘입점을 전제로 한 마사회와의 대화’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대책위 관계자는 “마사회의 명분 쌓기가 되레 공분을 쌓고 있다. 일방적인 여론조사로 여론을 파악했다고 할 게 아니라, 주민투표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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