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계서 우려 쏟아져
교과서 편수(편집·수정) 전담 조직을 부활하겠다는 교육부의 방침에 대해 시민사회는 “교학사 교과서 사태를 반성해야 할 정부가 더 노골적으로 국가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보수 성향의 단체나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정부가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국론 분열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10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편수실 부활이 권위주의 정부 시절 국정교과서 체제로 회귀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는 “교육 자체를 통제해서 국가의 정책을 반영하는 교육을 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을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하는 일본의 교육 현실을 우리가 비판하고 있는데, 편수실 부활은 일본과 비슷해지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검정 과정에서 교학사 교과서에 대해 누차 편법이나 특혜를 줘 온 교육부는 편수 기구를 주장할 수 있는 자격도 권위도 잃어버렸다고 본다”며 “이런 교육부가 설치하는 편수기구는 일제시대 식민사관을 퍼트린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와 다를 게 없다”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교육부가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의 당사자가 되려 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도 빗발쳤다.
고계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총장은 “교육부가 교학사 문제를 통해 여론의 흐름을 읽고 이번 사태에 대해 사과하고 국민 여론을 존중해야 하는데 오히려 역행하고 있다. 현 정권 들어 계속되고 있는 불통 논란에 한 번 더 기름을 붓는 것이다. 교육부는 사태가 더욱 악화하기 전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배경식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은 “교육부와 정치권이 지원사격을 했는데도 극소수를 제외한 대다수의 학교가 교학사 교과서를 외면했다는 것은 침묵하는 다수가 이번 역사 교과서 논란에 대한 심판을 내렸다는 뜻이다. 시민사회의 건강한 문제제기를 ‘외압’으로 호도해 교학사 교과서 채택을 철회한 학교를 특별조사하고, 나아가 편수실을 통해 교육의 정치적 독립성을 포기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합법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학생들도 편수실 부활은 사실상 국정교과서로의 회귀라며 비판했다. 차상우 민주사회를 위한 청소년회의 공동대표(광주중앙고 3학년)는 “교학사 교과서가 검정 체제에서는 채택이 안되니까 국정 체제로 가려는 것으로 보인다. 비상식적인 국가로 바뀌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보수 진영에서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보수 지식인으로 꼽히는 윤평중 한신대 교수(철학)는 “역사 교과서 문제는 폭발력이 있기 때문에 경제 살리기, 안보, 동북아 정세 등 한국 사회가 당면한 다른 현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것”이라며 “국가적 에너지가 낭비되는 이런 사안에 대해 관계 당사자들이 차분하고 냉정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보수 성향의 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김무성 대변인은 “국론 분열이 심각한 상황에서 편수 기능을 강화한다는 교육부에 국민이 신뢰를 보낼지 의구심이 든다. 편수위원을 선정하는 등의 과정에서도 교육부가 정권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느냐에 대해 교총 구성원들도 의구심을 갖고 있다. 편수 기능을 강화하려면 초정권·탈이념적인 국가교육과정위원회 설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진명선 박유리 김효실 박승헌 이재욱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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