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정민석의 해부하다 생긴 일
해부학 실습실은 시끄럽다. 학생끼리 쉬지 않고 말한다. 어떻게 해부했는지, 어떤 구조를 찾았는지 따위의 이야깃거리가 그치지 않는다. 말할 때 중요한 것은 논리이다. 논리 없이 말하면 해부와 공부가 늦어지고, 따라서 미친 듯이 나가는 진도를 쫓아갈 수 없다.
미친 듯이 나가는 진도는 의과대학 공부의 한 특징이다. 의과대학 공부가 어려운 까닭은 깊기 때문이 아니라 넓기 때문이다.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전공의가 되면, 자기가 전공하는 과만 알면 되기 때문에 좁고 깊게 공부한다. 졸업하기 전에는, 전문의가 있는 26개 임상 과를 대충이라도 알아야 되기 때문에 넓고 얕게 공부한다. 의과대학 선생이 50분 강의 시간에 100장 넘는 슬라이드를 보여 주면서 수많은 병을 가르치는 것은 예삿일이다. 이처럼 넓고 얕게 공부할 때 더욱 필요한 것이 논리이다. 선생도 학생도 논리 있게 말해야 된다.
해부학 실습실에서도 미친 듯이 진도가 나가는데, 학생이 논리 없이 말하면 선생과 동료 학생한테 혼난다. 학생은 누구한테 혼나기를 무서워할까? “선생님보다 동료 학생이 무섭습니다. 선생님과는 맞닿는 시간이 얼마 안 되지만, 동료 학생과는 4년 동안 쉼없이 만나기 때문입니다.” 군대에서 사병이 장교보다 동료 사병을 무서워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장교님은 근무 시간에만 보는데, 동료 사병은 24시간 내내 봅니다. 동료 사병이 훨씬 무섭습니다.” 하여튼 의과대학 학생은 해부하면서 동료 학생한테 논리 있게 말해야 된다.
논리 있게 말하는 것은 별것이 아니다. 앞뒤 말이 이어지면 된다. 보기를 들면 다음과 같다. “오른쪽 허파는 3개의 엽으로 나뉘어 있고, 왼쪽 허파는 2개의 엽으로 나뉘어 있다. 왜 그렇지?” “심장이 왼쪽으로 치우쳐 있고, 따라서 오른쪽 허파보다 왼쪽 허파가 작아서 그렇다.” 논리 있는 정답이다. 정답이 아니지만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오른쪽은 3글자이니까 3엽이고, 왼쪽은 2글자이니까 2엽이다. 도다리와 넙치(광어)를 구별할 때 도다리(3글자) 눈은 오른쪽(3글자)에 있고, 넙치(2글자) 눈은 왼쪽(2글자)에 있다는 것과 비슷하다.” 어처구니없지만 나름대로 앞뒤 말이 이어지고, 허파엽의 개수를 외우는 데 도움 되니까 동료 학생이 좋아한다.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말하는 해부학 실습실은 논리를 익히기 알맞은 곳이다.
논리를 익혀 두면, 의사가 된 다음에 동료 의사한테뿐 아니라 환자한테도 잘 써먹을 수 있다. 논리 있게 말해야 환자가 의사를 잘 따르므로,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논리는 의사가 논문을 써서 먹고살 때에도 쓸모 있고, 나처럼 신문에 글을 써서 용돈 벌 때에도 쓸모 있다.
게다가 논리는 친구를 사귀거나 애인을 꼬일 때에도 써먹을 수 있다. “나는 식당에서 봉사료를 줄 때 천만 원 또는 오천만 원을 준다. 천 원과 만 원을 함께 주면 천만 원이고, 오천 원과 만 원을 함께 주면 오천만 원이다.” “진짜 천만 원은 파란만장이다. 천 원짜리 파란 지폐가 만 장이기 때문이다.” 두 이야기는 논리가 있으니까 그럴듯하고, 친구 또는 애인과 함께 웃어넘기기 좋다.
이처럼 논리는 좋은 도구이다. 사기꾼은 논리를 흉기처럼 나쁘게 쓴다. 의사인 경우에는 논리로 환자를 속이고 해칠 수 있다. 따라서 의과대학 학생은 논리와 함께 인간성을 배워야 한다. 다른 말로 논리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학생은 해부학 실습실에서 인간성도 배우는데, 인간성은 다른 글에서 이따금 다루고 있다.
군대에 가면 먼저 훈련소에서 훈련받듯이, 의과대학에 가면 먼저 해부학 실습실에서 훈련받는다. 훈련소에서 싸우는 방법뿐 아니라 군인한테 필요한 것을 배우듯이, 해부학 실습실에서는 해부학뿐 아니라 의사한테 필요한 것을 배운다. 그중 하나가 짜임새 있는 논리이다.
정민석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정민석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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