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29일 광주시 북구 망월동 묘역(3묘역)이 조성돼 청소차에 실려 온 5월 희생자들의 주검을 옮기고 있다.
젯상도 못차리던 ‘금단의 땅’…한국 민주주의 상징
1980년 5월 신군부가 5·18 희생자들의 주검을
청소차에 싣고와 처리하려고 조성한 공간
이후 이한열·강경대 열사 등 학생·노동운동
희생자들의 주검도 묻히게 돼…‘민주 성지’로 인식
1980년 5월 신군부가 5·18 희생자들의 주검을
청소차에 싣고와 처리하려고 조성한 공간
이후 이한열·강경대 열사 등 학생·노동운동
희생자들의 주검도 묻히게 돼…‘민주 성지’로 인식
‘박근혜 대통령 사퇴, 국가정보원 사건 특검 실시’를 요구하며 분신한 이남종(41)씨의 주검이 4일 광주시 북구 망월동 구 묘역에 안장된다. 전남 구례 출신인 고인은 광주 서강고와 조선대를 졸업했으며, 학사장교로 군 생활을 한 뒤 광주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며 편의점 매장관리 등을 하며 공무원 시험준비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국회의 등 시민·사회단체는 고인을 민주열사로 규정하고, 유족들과 상의해 장지를 망월동 묘역으로 결정했다. 광주장례위원회는 4일 오후 3시30분부터 광주시 동구 옛 전남도청 앞 금남로에서 노제를 지내기로 했다. 이씨의 하관식은 4일 오후 5시 열린다. 광주광역시의회는 논평을 통해 “이 불행한 사태는 불통과 독선의 정치가 낳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거꾸로 가는 역사가 한 생명을 앗아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씨가 안장될 망월동 구 묘역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상징같은 곳이다,
“만감이 교차하네요. 시간이 멈춰선 망월동 구 묘역은 군부가 만든 시궁창같은 공간인데, 추모객들이 꽃을 피운 곳이지요. ”
박구용 전남대 교수(철학과)는 “여전히 시민들은 망월동 구 묘역을 역사의 상징적 장소로 여기고 있다. 5·18정신이 세상에 온전히 구현됐다면 망월동 묘역의 상징성은 끝난다. 망월동 묘역은 사람들에게 잊혀져 가고 있지만 상징성은 사라지진 않는다”고 말했다.
망월동 구 묘역은 1980년 5월 신군부가 5·18 희생자들의 주검을 청소차에 싣고와 처리하려고 조성한 공간이다. “당시 가족들이 원하면 선산으로 가고, 마땅치 않으면 망월동 묘역으로 갔다. 가족들이 못찾은 주검은 청소차로 실어와 그냥 묻어버렸다. 부패하니까….” 정수만(67) 전 5·18유족회장의 회고다. 망월동 묘역은 1997년 5·18 신묘역이 완성돼 80년 오월 희생자들이 이장된 뒤 망월동 구 묘역으로 불린다. 신묘역은 2002년 7월 국립5·18민주묘지로 승격됐다.
망월동 구 묘역은 옛 전남도청 앞 분수대와 함께 80년 5·18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80년 5월 26일 밤 시민군들이 계엄군에 맞서 싸우다가 총에 맞아 숨진 뒤, 살아 남은 자들은 망월동 구 묘역 앞에서 학살을 기억하며 눈물을 삼켰다. “망월동 묘역 참배 자체가 투쟁이었지요.” 80~90년대 학생·재야운동에 참여했던 이경률 광주시인권담당관은 “80년년대 오월엔 민주성지 광주를 찾는 학생들이 핵심적으로 찾는 곳이 망월동 구 묘역이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망월동 구 묘역은 한 때 유족들도 젯상을 차리기조차 힘든 금단의 땅이었다. 당국이 오월이면 추모객들의 발길을 막았기 때문이다. 81년 5월17일 망월동 구 묘역에선 5·18유족들과 시민·학생 400여 명들이 참여한 가운데 첫 추모제가 열렸다.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은 추모제를 열었다는 이유 등으로 국가보안법 및 집시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 10월형이 확정돼 복역했다. “세상에 당시 당국에선 ‘추모제라고 하면서 젯상도 차리지 않았다’며 불법 시위로 몰았다.” 학생들과 시민들은 오월이면 산을 넘어서 망월동 구 묘역에 모여 추모제에 참여했다. 당국은 82년부터 3년동안 집요한 공작을 통해 5·18 희생자 24명의 주검을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하기도 했다.
망월동 구 묘역은 80~90년대 민주화 시위나 노동운동 과정에서 숨진 이들이 묻히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망월동 구 묘역엔 현재 1987년 6월 9일 민주화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숨진 고 이한열 (연세대) 열사와 1991년 민주화 시위 도중 진압경찰에 맞아 숨진 고 강경대(명지대) 열사 등 민주화 운동 관련자 묘지 41기가 모셔져 있다. 국립5·18민주묘지로 오월 영령들의 주검이 옮겨간 자리엔 149기의 가묘가 조성돼 있다. 광주시는 북구 망월묘지 3묘역 주차장 154㎡의 터에 10억원을 들여 추모·기념관을 조성할 방침이다.
망월동 구 묘역은 “과거와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현장”이다. ‘박근혜 정부 시대’, 망월동 구 묘역은 우리에게 “안녕들하십니까?”라고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상봉 전남대 교수(철학과)는 “ 망월동은 침묵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공간이었다. 말을 많이 하면 할수록 부질없어지는 곳….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장소”라며 “이번에도 고인이 망월동 묘역으로 오신다는 것은 80년 5월에 제기됐던 (분단과 독재 등) 모순들을 극복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우리는 어쩌면 진행중인 비극의 한복판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사진=5·18기념재단 제공
희생자들을 묻기 위해 파놓은 묘지 구덩이
희생자들의 주검이 안치된 관.
80년 5월의 절대공동체를 상징하는 옛 전남도청 앞 분수대의 시민대토론회 모습.
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장 상인들이 시민군들을 위해 주먹밥을 만들려고 밥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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