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계, 청와대에 항의서한 박재동 화백(왼쪽)과 정지영 영화감독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27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앞에서 ‘철도민영화 반대! 민주노총 침탈규탄! 문화예술계 비상시국선언’을 마치고 청와대에 항의서한을 전달하고자 행진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조계사 표정
경찰 기동대 150여명 주변배치
시민-보수단체 설전 벌이기도
불자들 “불편-포용해야” 엇갈려
경찰 기동대 150여명 주변배치
시민-보수단체 설전 벌이기도
불자들 “불편-포용해야” 엇갈려
27일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에도 서울 종로구 조계사는 열기가 가득했다. 오전 10~11시 예불에 참여한 신도 150여명은 한 스님의 목탁과 염불 소리에 맞춰 일제히 불상을 향해 절했다.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대웅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고 예불 장면을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며 신기해했다.
박태만(55) 전국철도노조 수석부위원장 등 조합원들이 피신해 들어온 지 사흘째를 맞은 조계사 경내는 평온을 되찾은 듯했지만, 경내로 들어가는 일주문 밖은 여전히 긴장감이 팽팽했다. 경찰 기동대 3개 중대 150여명은 조계사를 오고가는 사람들을 주시했고 무전기로는 끊임없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쏟아졌다.
일주문 밖 속세에선 철도파업을 둘러싼 갈등 양상이 잇따랐다. “저기 (철도노조원들이) 가 있으니까 끄집어내려는 것 아니냐. 나는 불자니까 길을 열어달라.” 낮 12시10분께 한 보수단체 회원은 조계사의 일주문을 넘어서려다 경찰과 부딪혔다. 지나가는 시민들은 이 보수단체 회원을 비난했고, 또 어떤 이는 “코레일 사장이 노조를 다 죽이려는 셈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조계사 관계자들과 신도들은 “절에서 행패부리는 거 아니다”라며 보수단체 회원들에게 항의하기도 했다.
앞서 낮 12시 조계사 맞은 편에서는 시멘트 관련 중소기업 단체인 한국콘크리트협동조합이 ‘철도노조 불법파업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철도파업에 따른 물류난으로 매출에 타격을 입을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한국민족예술인단체총연합은 오후 1시 같은 장소에서 ‘철도민영화 반대 및 민주노총 침탈 규탄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으나 민주노총 앞으로 기자회견 장소를 옮겼고,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등 25개 보수단체로 구성된 보수대연합은 오후 4시 같은 장소에서 ‘철도노조 수배자 퇴출 촉구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다가 취소했다.
신도들의 표정은 엇갈렸다. 20년째 조계사에 다닌다는 김미자(65)씨는 “조계사는 도심에 있는 절이라 연말연시에 많은 신도들이 송년과 새해를 위한 기도를 한다. 그런데 철도노조원들이 들어와서 마음의 안식을 얻는 기도도량이 살벌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계사에서 불공을 드린 지 50년 됐다는 이현숙(75)씨는 “절은 살인자가 온다고 하더라도 내쫓으면 안 된다. 그것이 불교의 가르침이고, 종교의 역할이다”라고 말했다. 조계사에서 수행하는 한 스님은 “엇갈리는 불자들 사이에서 스님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이다. 아무쪼록 일이 평화롭게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24일 저녁 박태만 수석부위원장 등이 경내에 들어오고 나서 조계사는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성탄절인 25일은 성당이나 교회보다 조계사가 더 큰 관심을 끌었다. 조계종 화쟁위원회의 중재로 최연혜 코레일 사장과 박 부위원장이 26일 만났고 이어 실무진들의 회담이 시작됐지만 결실은 맺지 못했다. 하지만 조계종 ‘철도 문제 해결을 위한 특별위원회’가 27일 국민통합적 대화기구를 제안하는 등 불교계의 중재 노력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재욱 기자 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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