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맨 왼쪽)이 23일 오전 서울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조합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신 위원장 옆으로 전날 민주노총 본부에 강제 진입하면서 경찰이 뜯어놓은 문 잠금장치가 보인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정면충돌 치닫는 노-정]
“체포영장만으로 강제 수색은 위법”
경찰청장 등은 ‘직권남용’ 형사고소
경찰 “정당한 법 집행” 반박속 ‘곤혹’
“체포영장만으로 강제 수색은 위법”
경찰청장 등은 ‘직권남용’ 형사고소
경찰 “정당한 법 집행” 반박속 ‘곤혹’
경찰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본부 강제 진입을 두고 불법 논란이 달아오르고 있다. 민주노총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 법률가 단체들의 도움을 받아 경찰의 불법행위에 대해 고소와 손해배상 소송을 하기로 했다. 경찰은 철도노조 지도부 검거에 실패한데다 위법 논란까지 가열되자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민주노총 법률원과 민변,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등은 23일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사무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경찰의 강제 진입은 명백한 불법행위”라며 “사건 관계자들을 상대로 책임을 물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들 단체는 “경찰청장과 서울지방경찰청장, 남대문경찰서장 등을 직권남용과 불법체포·감금 등의 혐의로 고소하고, 강제 진입으로 기물과 자료 등이 파손되면서 민주노총이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하게 된 데 대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덧붙였다. 소송 주체는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이다.
경찰의 강제 진입 다음날인 23일 민주노총 본부가 있는 경향신문 사옥은 아수라장이었다. 경찰이 유리를 부수고 들어간 정문은 비닐로 대충 막아놓았고, 계단에는 물에 젖었다 말라붙은 종이와 책 더미, 깨진 화분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민변 노동위원장인 권영국 변호사는 “타인의 주거지에 들어가 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야 하지만, 경찰은 체포영장만 가지고 출입문을 부수고 들어가 민주노총 사무실을 강제로 수색했다. 이는 형사소송법에서 허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경찰의 민주노총 본부 강제 진입에 ‘위법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윤남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구속영장과 달리 체포영장이 발부된 피의자를 수색할 목적으로 타인의 건물 등에 강제로 들어가는 것은 근거 규정이 없기 때문에 위법하다”고 말했다. 구속영장은 피의자의 범죄 혐의가 공소 제기를 할 수 있을 만큼 드러나고 도망이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을 때 발부하기 때문에 강제 진입의 근거를 법(형사소송법 137조)에 명시해 두고 있지만, 단지 수사기관의 출석 요구에 불응하는 경우에 발부되는 체포영장에 대해선 그렇지 않다는 설명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구속영장에 대한 판단은 영장실질심사를 거치는 등 엄격하게 이뤄지지만 체포영장은 수사 시작 단계에서 수사 편의를 위해 발부하기 때문에 심사도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경찰이 체포영장만으로 사무실 등에 강제로 진입해 수색하는 것은 주거의 자유와 사생활의 비밀을 보장한 헌법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태도다. 이성한 경찰청장은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체포영장을 집행하는 데 별도의 수색영장은 필요 없다고 판단했다. 형사소송법을 검토한 뒤 절차에 따라 집행했다”고 말했다. 경찰이 앞서 수색영장을 별도로 신청했다가 기각당한 데 대해선 “체포영장을 좀더 보완하기 위해 수색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체포영장으로 수색을 할 수 있으니 기각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20일 민주노총 본부에 대한 수색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은 ‘수색의 필요성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기각한 바 있다.
경찰 내부에선 5000여명의 경찰력을 투입해 무리하게 민주노총 본부에 진입하고도 파업 지도부 체포에 실패하고, 위법 논란까지 휘말리면서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체포 작전이 무위로 돌아가면서 수사·정보·경비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경찰의 무능이 만천하에 공개된 셈이다. 한마디로 참담하다”고 말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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