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구 삼각산동 삼각산고등학교 옥상 위에서 이 학교 학생들이 우리동네햇빛발전협동조합의 시민햇빛발전소 1호기 앞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서울환경운동연합 제공
서울시, 20% 자립목표로 지원
시민들 나서 태양광발전기 짓고
십자성마을 등 11곳 ‘자급자족 도전’
수도권 등 최대 소비지역도 동참
“도시인, 전기 생산자로 거듭나면
농촌의 원전·송전탑 갈등도
환경불평등 문제도 줄일 수 있어”
시민들 나서 태양광발전기 짓고
십자성마을 등 11곳 ‘자급자족 도전’
수도권 등 최대 소비지역도 동참
“도시인, 전기 생산자로 거듭나면
농촌의 원전·송전탑 갈등도
환경불평등 문제도 줄일 수 있어”
지난 2일 <한겨레> 취재진이 찾은 서울 강동구 천호동 십자성마을. 북반구의 북두칠성처럼 남반구에서 방위를 가늠하는 별인 남십자성에서 이름을 따온 이 마을은 1974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베트남전 상이용사들을 위해 만들었다. 이 마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여러 주택 옥상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기다.
이들은 지난해부터 전자기기를 안 쓸 땐 전원을 차단하는 멀티탭을 쓰고 문틈의 바람을 차단하는 등 절전과 에너지 효율화에 힘쓰는 한편 신재생에너지 생산을 통해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려는 시도에 나섰다. 주택용 3㎾급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려면 800만원가량이 드는데, 정부와 서울시에서 절반을 지원해준다. 1년 새 46가구 중 10가구가 400만원씩을 들여 발전기를 설치했고 지난달에만 6가구가 새로 신청했다.
“1960년대 월남에선 총칼로 싸웠지만, 지금은 후손들에게 ‘덜 늙은’ 지구를 물려주려고 에너지 문제에 분투하고 있습니다.” 해병대 출신인 노성남(68)씨는 십자성마을회 이사이자 에너지자립마을 홍보담당이기도 하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보면서 다들 많이 놀랐어요. 원전을 줄이고 에너지를 아끼는 게 애국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런 ‘에너지 전환’의 씨앗들이, 국내 최대 에너지 소비 지역인 서울과 수도권 곳곳에 자리잡아가고 있다. 십자성마을처럼 서울시의 ‘에너지자립마을 조성사업’에 참여하는 주민공동체는 지난해 7곳에서 올해 11곳으로 늘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에너지 위기 및 기후변화 대처에 나서고 있고, 원전 의존도를 낮추려는 시민들의 실천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는 2020년까지 전력자립률을 20%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에너지 효율화와 절전운동으로 전기 소비를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확대하는 등 지원책을 벌이고 있다. 2011년 현재 서울의 전력소비량은 연간 4만6903GWh(기가와트시)로 전국 전력소비량의 10.31%를 차지하지만, 전력생산 비중은 0.28%(1348GWh)여서 자립률이 2.95%에 그친다. 지난해 말 서울환경운동연합이 주축이 돼 만든 태양광 발전 협동조합인 우리동네햇빛발전협동조합의 강병식 사무국장은 “서울의 전기소비량은 20년 동안 2.8배가 늘었다. 6년마다 원전 1기 분량의 전기를 더 쓰게 된 셈이다. 소비하는 에너지를 대부분 외부에서 끌어오는 서울의 에너지 소비가 늘어나면, 다른 지역에 원전·송전탑 건설의 고통을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직접 태양광 발전소 건설·운영에 참여하며 신재생에너지 사업자가 된 시민들도 늘고 있다. 지난 6월 서울 강북구 삼각산동 삼각산고등학교 옥상에는 ‘시민햇빛발전소(20㎾)’ 1호기가 준공됐다. 시민들이 협동조합을 꾸려 학교에 만든 최초의 태양광 발전소이자 우리동네햇빛발전협동조합의 1호기다. 시민들이 공동 소유하는 우리동네햇빛발전협동조합은 여기서 만든 전력을 팔아 조합원들에게 배당을 한다. 이 발전소를 짓는 데 삼각산고 학생·교사 37명과 지역 주민 35명 등 시민 225명이 조합원으로 참여했다.
11일 삼각산고에서 만난 조합원 정미숙(49) 교사는 시민햇빛발전소가 ‘살아있는 환경교육의 장’이 된다고 설명했다. “2011년 혁신학교로 지정되면서부터 범교과 프로젝트 수업으로 ‘기후변화’ 과목을 도입했습니다. 이때 참조한 독일의 ‘지속가능발전 교육 프로젝트’처럼, 학생들에게 학교 수업을 넘어 실제 ‘참여’를 통해 지역사회 의제와 연결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게 좋겠다고 선생님들이 자연스럽게 합의했죠.” 학교는 선례가 없는데다 학교시설 개방이 불편했지만, 교육 효과와 임대료 수익 등을 기대하며 태양광 발전소를 받아들였다.
이 조합의 손정은(18) 학생 이사는 “처음엔 지구를 위한 일, 환경을 위한 일로 시작했는데, 활동을 하면서 공부도 더 하게 되고 밀양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서 서울시민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게 됐다. 서울이 전기를 많이 쓰는데 왜 내가 아닌 다른 지방 사람이 희생해야 하나. 차라리 자가발전을 해서 우리가 쓸 전기는 우리가 생산하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호기 부지를 찾는 데 8개월여가 걸렸지만, 긍정적인 소문이 나면서 현재는 4호기까지 장소가 결정됐다. 내년 4월 준공 목표인 강북구 수유동의 한신대 신학대학원 2호기는 현재 새 조합원을 모집하고 있다.
지난해 말 협동조합법 시행 이후 서울시에 등록한 태양광 발전 협동조합은 10곳이다. 우리동네햇빛발전협동조합의 삼각산고 발전소와 노원햇빛과바람발전협동조합의 노원구청 주차장 발전소(30㎾)는 운영을 시작했고, 허가·계약 단계인 발전소가 8기다. 서울시는 ‘서울형 발전차액지원제도’에 따라 올해 10곳의 태양광 발전소 사업에 668만5000원을 지원했고, 내년에는 170개 사업자에 1억400만원을 지원하는 것으로 예산안을 짰다.
서울 이외의 지역에서도 에너지 전환 움직임이 활발하다. 2011년 수도권 최초로 시민 소주주들이 모여 민관 협력 주식회사인 경기도 시흥시민햇빛발전소를 만들었고, 지난 5월엔 안산시민햇빛발전소 1호기가 문을 열었다. 대구·울산·경남 등에서도 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이 생기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와 밀양을 비롯한 전국의 송전탑 건설 갈등은 도시민이 친환경에너지 생산에 참여하는 계기가 됐다. 서울 에너지자립마을 중 하나인 동작구 상도동 성대골마을의 김소영 어린이도서관장은 “2010년만 해도 ‘탈핵’이란 단어를 사용하기가 조심스러웠다. 2011년 후쿠시마 현장을 다녀온 사람을 섭외해 특강을 열었는데, 오전 10시부터 시작한 강연이 주민들의 질문으로 오후 3시30분까지 이어졌다. 2년여가 지나면서 주민들 스스로 자신들이 단순한 전기절약 차원을 넘어 탈핵운동을 하고 있다고 말하기 시작했고, 밀양에 연대하는 주민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강북구 주민인 박선화(46) 우리동네햇빛발전협동조합 조합원은 다른 지역 주민에 대한 부채감을 털어놨다. “송전탑이 필요한 건 대소비처인 서울과 수도권, 산업도시에 전기를 나르기 위해 다른 지역을 대용량 생산거점으로 삼기 때문이죠. 어느 지역에건 환경불평등을 낳는 사업을 없애려면 도시민들이 나서서 소비생활을 바꾸고 직접 친환경에너지를 생산해야 합니다. 우리는 전기를 공기처럼 편하게 소비하는 데만 익숙해서 전기 생산자가 된다는 게 생소할 수 있지만, 한번 시작해보면 그리 어렵지 않더라고요.”
김효실 이재욱 김미향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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