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5팀 직원, 원세훈 전 국정원장 공판에서 증언
“상부의 지시로 한 것…매일 이슈·논지 전달 받아”
대선 때 박근혜 후보 공식 계정 글도 리트위트해
“상부의 지시로 한 것…매일 이슈·논지 전달 받아”
대선 때 박근혜 후보 공식 계정 글도 리트위트해
국가정보원 심리전단 안보5팀(트위터팀) 직원이 지난해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공식 트위터 계정의 글도 리트위트(퍼나르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안보5팀 직원들 스스로도 당시 트위터 활동에 대선 개입 소지가 있다는 우려를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 “너무 세게 하는 거 아니야?” 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이범균) 심리로 열린 원세훈(62) 전 국정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온 안보5팀 직원 이아무개씨는 “직원들끼리 선거 개입으로 오해받을 우려가 있다는 얘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이씨는 검찰 조사 때는 “저희들끼리 얘기하면서 너무 세게 하는 거 아니냐, 신중하게 하고 자제하자는 논의를 했다. 저도 조심해서 한다고 했는데, 제가 쓴 트위트와 리트위트 글을 보니, 그 안에 빠져 있다 보니 느끼지 못했다. 선거 지지·반대로 보일 수 있겠다”고 말했다. 트위터팀 직원들은 이런 우려를 서로 얘기했지만 상부에 보고하지는 않았다고 이씨는 밝혔다.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의 변호인이 “특정 정치인·정당을 지칭한 이슈·논지는 없다고 했는데 어떻게 선거 개입 우려를 느꼈다는 것인가”라고 묻자, 이씨는 “나는 이런 의도로 썼는데 남들이 보면 선거운동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우려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공식 트위터 계정 글도 리트위트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이씨는 “박근혜 후보의 공식 계정인 줄 몰랐다. 알았으면 안 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검찰이 “박근혜 후보의 공식 계정인 줄 몰라도 트위터 글 내용이 박근혜 후보의 정견을 알리고 지지하는 것인데, 이것이 북한의 선전·선동에 대응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나. 특정 후보 입장을 전파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 아니냐”고 캐묻자, 이씨는 “실수였다. 그런 지시는 절대 없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모두 40개의 트위터 계정을 만들어 관리했는데, 이 가운데 20개는 자신이 직접 트위터 글을 작성하고 20개는 자동프로그램에 등록해 특정 글을 리트위트하는 데 주로 썼다고 밝혔다.
■ 글 영향력 높이려 매뉴얼까지 심리전단 트위터팀이 단순히 글을 올리는 수준을 넘어 글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조직적인 활동을 벌인 사실도 드러났다. 검찰이 이날 공개한 김아무개 직원의 전자우편 첨부파일 중 ‘4·25논지’를 보면, ‘글을 작성하면 논지 작성 일괄전송’ ‘파워 팔로어 전파 확산’ ‘오늘의 핫이슈 지정해 지시’ ‘우파 글 확산을 오후 시간에 활용’ ‘단체 일대일 우파 글 확산’ ‘우파 글 집중확산’ ‘시간대 분할해 24시간 타임라인 많이 들어오는 시간대 집중’이라며 영향력을 높이는 구체적인 방법이 쓰여 있다.
이씨는 자동프로그램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 “실적을 올리는 측면도 있다. 업무 실적을 보고할 때 작성한 트위트 수 및 팔로어 수도 보고했다. 팔로어 수가 실적에 반영되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이씨는 상부의 지시로 업무 차원에서 트위터 활동을 한 것이 맞고, 개인적으로 하지는 않았다고 진술했다. 팀원들이 모인 상황에서 파트장으로부터 구두로 매일 그날의 이슈·논지를 전달받았다고 했다. 이씨는 검찰 조사에서는 “이슈·논지를 내부 전자우편으로 전달받았다. 이슈·논지를 만드는 직원이 고생이 많다. (상부에서 이슈·논지의) 표현이 이상하다고 하면 고치라고 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법정에선 “당시 체포돼 정신이 없어서 그렇게 진술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아닌 것 같다”고 부인했다.
이씨는 트위터 글을 쓰거나 리트위트한 뒤 자신의 글을 다른 사람이 퍼날랐는지 여부는 확인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재판장은 “방어 심리전을 한다면 누가 보고 어떤 반응인지 챙겨 보는 것도 필요한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