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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소외층에 떠넘긴 기피시설…뉴욕 할렘가의 반격 25년

등록 2013-12-01 20:01수정 2013-12-01 22:39

2008년 9월23일 미국 뉴욕 할렘 지역에서 주민 170여명과 엠티에이와 위액트 관계자 등이 모여 ‘마더 클래라 헤일 버스 차고지’ 재건축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위액트 제공
2008년 9월23일 미국 뉴욕 할렘 지역에서 주민 170여명과 엠티에이와 위액트 관계자 등이 모여 ‘마더 클래라 헤일 버스 차고지’ 재건축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위액트 제공
[송전탑 갈등, 환경 불평등 문제다] 2부 대안을 찾아서
② ‘환경정의’의 본고장을 가다
지난달 22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시 할렘 지역의 ‘마더 클라라 헤일 버스 차고지’는 한창 새단장 중이었다. 내년이면 친환경 건축물로 재탄생하게 된다. 20년간 벌여온 ‘환경정의’ 운동의 소중한 결과물이다.

이 부지는 1939년부터 버스 차고지로 쓰여왔다. 뉴욕의 대중교통을 운영하는 공공기관인 ‘엠티에이’(MTA·Metropolitan Transportation Authority)는 1990년대 초 차고지 건물을 수선하면서 할렘 지역에서 활동한 미국 에이즈 아동의 대모인 클라라 헤일의 이름을 붙였다. 이곳이 다시 친환경 건축물로 바뀔 수 있게 된 건 할렘 지역 주민들과 시민단체 ‘웨스트할렘 환경정의행동’(위액트)의 역할이 컸다.

1988년 할렘 지역 주민들이 직접 만든 위액트는, 뉴욕 전체에 7개뿐인 버스 차고지 중 6개가 할렘을 포함한 맨해튼 북쪽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북쪽 사람들은 남쪽 도심에 거주하는 사람들에 비해 디젤버스가 내뿜는 매연 속 유해물질에 직접 노출될 일이 더 많았다. 이때부터 위액트와 할렘 지역 주민들의 ‘맑은 공기’를 위한 싸움이 시작됐다.

위액트는 1996년 미연방 환경보호청(EPA)을 설득해 뉴욕의 첫 공식 공기질 평가를 이끌어냈다. 평가 결과, 맨해튼 북쪽 지역에서 디젤 매연의 유해 물질인 극미세먼지(PM2.5)가 기준치보다 200% 이상 높게 측정됐다. 버스 수십대가 들락거리는 차고지 인근 주민들은 다른 지역 주민들에 비해 천식, 심혈관질환, 암 등을 앓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아동의 경우 천식으로 입원할 확률이 뉴욕의 다른 지역 아이에 견줘 6배에 이른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위액트는 1997년부터 엠티에이와 시·주정부, 시민들을 상대로 ‘깨끗한 공기, 깨끗한 연료’ 버스 캠페인을 벌였다.

위액트는 2003년 ‘버스 차고지 인근 주민 감독위원회’를 만들고, 엠티에이가 ‘지속가능하고 친환경적인 차고지 운영’을 할 수 있도록 주정부·의회 쪽에 꾸준히 압력을 넣었다. 4년 만인 2007년 엠티에이 쪽은 마침내 마더 클라라 헤일 버스 차고지를 친환경 건물로 재건축하기로 결정했다. 2008년엔 차고지 철거 및 재건축 과정에 주민 의견을 적극 반영하기 위해 엠티에이·위액트 관계자와 주민 대표 등으로 이뤄진 태스크포스도 생겼다. 차고지 재건축은 20여년간 펼쳐온 환경정의 운동의 소중한 결과물인 셈이다.

하수장 악취·버스차고지 매연
주민들 참여보장 운동 통해
환경전문가 고용해 유해성 입증
재건축·사회적 공론화 이끌어

“지역 이기주의 아니라
환경불평등에 대한 싸움
주민 배제·희생 강요 없다면
반드시 대안은 나온다”

뉴욕시 맨해튼 할렘가에서 만난 위액트의 활동가 제임스 버크는 차고지 운동 경험을 소개하면서 “환경정의 운동에서는 ‘협상’이 중요하다. 우리는 무조건 ‘우리 지역에 있어서는 안되는 시설’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연구를 통해 어떤 환경 불평등이 있는지 제시하고, 구성원 전체의 이익을 증가시킬 수 있는 대안을 당사자들과 함께 찾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위액트는 차고지 운동 경험을 바탕으로 전국 단위 환경단체 및 정치인들과 함께 미국 내 어느 지역이든 차고지를 지을 때 건축 계획이 얼마나 친환경적인지를 정부 인허가 평가항목에 포함하는 내용의 법안을 만들었으며, 현재 미연방 의회에서 법안을 심사 중이다.

위액트는 뉴욕의 ‘1호’ 환경정의 단체다. 25년 전인 1988년 맨해튼 북부 및 할렘 지역의 디젤버스 차고지 문제를 비롯해 ‘노스리버(허드슨강 하류의 별칭) 하수처리장’ 등 공공시설의 비민주적 위치선정과 부실 운영에 항의하는 지역 주민들이 모여 위액트를 만들었다. 버크는 “환경정의 운동이 주민 당사자의 투쟁에서 시작한 건 맞지만, ‘님비’(지역 이기주의)와는 다르다. 유색인종·저소득층이 많은 지역이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된 채 각종 시설 입지로 선정됐기 때문에 사회·환경 불평등에 저항하고 환경정의 실현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수처리장 문제의 경우 위액트는 맨해튼 자치구 행정기관 대표를 설득해 하수처리장 운영에 대한 연구를 맡을 환경 전문가를 고용하게 했다. 연구보고서는 주민들의 환경 피해를 과학적으로 입증해보였고, 위액트와 주민들은 1992년 뉴욕시와 주정부를 정식 고소했다. 위액트를 비롯한 뉴욕 환경단체들의 모임인 ‘뉴욕시 환경정의연합’(NYCEJA), ‘북동지역 환경정의네트워크’(NEJN)도 이때 생겼다. 결국 뉴욕 주정부는 1994년 하수처리장 수리 및 지역 주민들의 환경권 보장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110만달러(12억여원)의 펀드를 만드는 데 합의했다.

미국의 환경정의는 이렇게 ‘아래로부터’ 발전해왔다. 미국 환경정의의 상징인 1982년 노스캐롤라이나주 워런카운티의 폴리염화비페닐(PCB) 매립 사건도 마찬가지다. 흑인 거주 비율이 75%에 이르는 워런카운티에서 유독성 물질인 피시비의 매립이 시작된 지 2주 만에 주민 400여명이 시민불복종 운동으로 경찰에 체포됐다. 유색인종·저소득층·시골주민·정치적 약자라는 ‘4중고’에 시달리던 주민들의 극한 저항은 ‘환경 인종주의’ 논쟁을 촉발했고, 학계·종교계의 잇따른 연구보고서 출간으로 미국 내 수많은 ‘워런카운티들’이 잇따랐다.

이에 미국 정부는 1992년 환경보호청에 ‘환경정의국’을 신설하고 1993년 ‘국가환경정의자문위원회’를 구성했다. 1994년엔 대통령이 ‘소수집단·저소득층의 환경정의를 위한 행정명령’을 채택하며 본격 제도화에 나섰다. 1995년 정부가 발표한 환경정의 개념은 ‘인종·국적·소득수준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법규·정책의 개발·시행·집행에서 공평하게 대우받고 의미있게 참여하는 것’이다.

위액트 활동가 버크는 “위액트의 가장 중요한 구실은 문제를 겪고 있는 지역 주민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고 직접 해결할 수 있게끔 훈련·지원하는 일이다. 그리고 연구기관·공공기관 등의 관계자를 끌어들여 대안을 찾는 일을 돕는다. 주민 참여를 보장하고 일방적 희생만 강요하지 않으면, 대안은 찾아진다”고 말했다.

뉴욕(미국)/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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