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몸 / 점 이야기
▶ 곱디고운 흰 살결에 작은 점들이 생겼습니다. 이번 여름 한낮의 뜨거운 태양볕을 고스란히 받고 또 받아낸 피부는 그렇게 검은 꽃을 피웠습니다. 해가 짧아진 이 겨울, 점을 빼볼까 했는데, 영화 <관상>을 보니 점 하나로 사람의 운명이 바뀌는 것 같더군요. 과학에서는 점은 몸의 멜라닌세포의 양에 따라 피부라는 수면 위로 상이 맺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합니다. 여러분은 얼굴 또는 몸 어디에 점이 있나요
영화 <관상>에서 등장한 에피소드 중 하나. ‘얼굴만 보면 안다’는 족집게 관상가에게 한 기생이 묻는다. 얼굴도 이만하면 반반한 편인데 왜 내게는 남자가 따르지 않느냐고. 그러자 관상가는 대답 대신 그녀의 코끝에 수박씨를 하나 얹어준다. 이리하면 팔자가 바뀔 거라고. 술기운 끝에 하는 농담처럼 들렸지만, 정말로 그녀는 코끝에 작은 점을 찍은 뒤 뭇 남자들을 홀리는 장안의 명기(名技)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흔히 미인의 조건을 떠올릴 때 첫째로 꼽는 것이 ‘잡티 하나 없이 맑고 깨끗한 피부’일 것이다. 심지어는 요즘은 남성들조차도 이 흐름에 가세해 말갛고 뽀얀 피부의 ‘밀크남’이 신세대 미남의 대명사 반열에 오르고 있다. 그러나 수없이 많은 미인들 가운데 미모로 첫손에 꼽히는 여배우들 중에는 오히려 얼굴에 점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신기한 것은 이들에게 있어 점은 오히려 ‘옥에 티’라기보다는 ‘매력 포인트’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마릴린 먼로의 얼굴에서 입술 옆의 점을 없앤다면 어떨지 상상해보라.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녀는 아름다울 테지만, 뭔가 빠진 듯한 밋밋한 느낌이 들 것이다. 적당한 위치에 정확히 자리잡은 점은 오히려 얼굴을 돋보이게 한다. 이 때문에 일부러 코나 입 주위에 일명 ‘애교점’이라는 점을 만드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
점이 짙어지거나 커지면 악성 흑색종일 수도
사실 이처럼 점을 일부러 얼굴에 만드는 것은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1600년대 이후 유럽의 귀부인들 사이에는 검은색 비단으로 별, 초승달, 하트 모양의 인공 점을 만들어 붙이는 것이 유행했다. 미인점(beauty spot)이라 불렸던 이 인공 점들이 처음 생겨난 이유는 당시 전 유럽을 강타했던 천연두 때문이었다. 천연두를 앓고 나면 이른바 ‘곰보’라 불리는 얽은 흉터가 남는데, 미인점의 원래 목적은 그 흉터를 가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붙여 보니 미인점은 흉터를 가려줄 뿐 아니라 시선을 한 점에 모아 다른 결점들을 감추는 데도 효과적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점차 미인점은 단순한 반창고의 수준을 넘어 이성의 눈길을 끌고 싶거나 누군가에게 말없이 메시지를 전하고 싶을 때 활용하는 수단으로 변모했다. 특정한 모양의 점을 얼굴의 어느 부위에 붙이느냐에 따라 해석하는 방법이 달랐다고 하니 당시 사교계의 귀족들 사이에서는 이 점의 위치에 따른 은밀한 메시지를 읽어내는 것도 하나의 비밀스러운 즐거움이었으리라.
애교점·미인점처럼
적당한 위치에 자리잡은 점은
사람의 얼굴을 돋보이게 하거나
이성의 눈길을 끌기도 한다 자외선으로부터 피부 보호하는
멜라닌세포 양이 많거나 적으면
검은점이나 흰점이 생긴다
여드름 같은 상처를 자극하면
멜라닌 침착돼 점처럼 변하기도 그렇다면 이 점은 왜 생길까. 일반적으로 가장 흔한 흑색점(lentigo)은 피부의 기저상피층에 존재하는 멜라닌세포의 멜라닌 과다 발현으로 인해 생겨난다. 흑색점은 대개 몇 밀리미터 정도로 작은 편이지만, 한 번 생겨나면 영구적으로 자리잡는 경우가 많다. 멜라닌세포는 자외선에 의한 피부 손상을 막는 작용을 한다. 자외선은 세포의 디엔에이(DNA)를 파괴해 세포에 해를 입히므로, 우리 몸은 자외선으로 인한 체세포의 손상을 막기 위해 멜라닌을 만들어 피부를 덮어두는 것이다. 타고난 멜라닌세포의 양은 유전에 의해 결정되지만-그래서 피부색에 따른 인종 구별이 오래도록 내려온 것이다- 자외선은 멜라닌 활성을 촉진하는 자극제 구실을 하므로 햇빛에 많이 노출될수록 피부가 검게 그을리곤 한다. 멜라닌세포의 역할이 기본적으로 피부를 보호하는 것이므로 피부에 상처를 입거나 혹은 호르몬의 균형이 깨지거나 하면 멜라닌세포가 과다 발현하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이것이 점으로 자리잡는 것이다. 속설에는 여드름을 자꾸 잡아 뜯으면 점이 생긴다는 얘기가 있는데, 상처가 생긴 피부 부위를 자꾸 자극하면 멜라닌이 침착되는 경우가 많아 실제로 점처럼 검게 변할 가능성이 높다.(그러니 상처는 가능하면 손대지 말자.) 일반적인 흑색점은 별다른 치료가 필요 없지만, 처음에는 옅은 색이었던 점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짙어지거나, 혹은 크기가 점점 더 커지면서 표면이 울퉁불퉁해지거나 점 부위에서 피가 난다면 악성 흑색종일 가능성이 높다. 악성 흑색종이란 멜라닌세포가 암세포로 변형되어 일어나는 피부암의 일종이다. 악성 흑색종의 경우 조기 발견과 치료가 필요하니 가끔은 내 몸의 점들이 변하지는 않았는지 살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일반적으로 점은 멜라닌세포의 과다증식 때문에 일어나지만, 반대로 멜라닌세포가 너무 적어져도 점이 생길 수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멜라닌세포가 파괴되면, 해당 부위의 색소가 탈락되어 흰색 반점이 생겨나게 된다. 이런 증상을 백반증이라고 하는데, 이제는 고인이 된 마이클 잭슨이 생전에 백반증으로 인해 고생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백반증은 대개 넓은 부위에 나타나기 때문에 외모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해당 부위의 피부가 자외선에 대해 취약해지는 등의 불편함이 생겨난다. 따라서 이를 치료하기 위한 방법들은 다양하게 나와 있지만, 일단 한 번 파괴된 멜라닌세포는 다시 생겨나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치료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곱개 점 가지고 태어난 ‘응칠’ 안중근 의사 지금과 같이 의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 점은 한 번 생겨나면 평생을 가지고 가야 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점들이 선천적으로 혹은 성장기에 발생하며 성인이 된 뒤에는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데-노인성 반점이나 기미 등은 제외하면- ‘변치 않는다’는 이 특징은 개인을 구별하는 독특한 이름표 역할로 많이 이용되곤 했다. 허균의 <홍길동전> 속에는 스스로를 진짜 길동이라고 주장하는 여덟 명의 동일 인물이 나타나자 그 아버지인 홍 승상은 “신의 천한 자식 길동은 왼편 다리에 붉은 점 일곱이 있사오니”라며 점을 이용해 진짜 홍길동을 구별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북두칠성을 신성시했던 우리의 풍습상 일곱 개의 점은 갓난아이가 장차 난세를 구할 영웅이나 후대에 이름이 남을 위인이 되리라는 것을 알려주는 하나의 증표이기도 했다. 삼국 통일의 선봉장이었던 김유신 장군이나 귀주대첩에서 거란의 10만 군사를 물리친 강감찬 장군은 북두칠성을 닮은 일곱 개의 점을 지니고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는가 하면, 안중근 의사는 일곱 개의 점을 가지고 태어나 ‘응칠’(應七)이라는 아명으로 불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점이 꼭 영웅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인조 반정의 선두에 섰던 김자점(金自點)은 이름처럼 미간에 점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이는 그의 아버지 손에 죽었던 커다란 지네의 저주로 인한 점이었다고 한다. 지네의 저주였을까. 김자점은 한때 영의정의 자리까지 오르고 인조의 옹주를 며느리로 맞는 등의 권세를 누렸으나 결국 역모 사건에 휘말려 비참하고도 끔찍한 죽음을 맞이한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 보자. 영화 <관상>에서 가장 조마조마했던 장면은 운명을 읽는 관상가가 숙부인 수양대군이 자신을 해하려 한다는 것을 믿고 싶어하지 않는 조카 단종에게 경고하고자, 수양대군의 미간에 세 개의 점을 몰래 그려 넣는 장면이었다. 미간에 존재하는 세 개의 점은 역적의 표지로 읽히기 때문이었다. 그의 의도대로 수양대군의 얼굴에서 이를 발견한 단종은 그때부터 숙부를 경계하여 내치려 하게 되고, 이를 감지한 수양대군은 한발 앞서 피비린내 나는 난을 일으키는 것으로 영화는 흘러간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과연 수양대군의 미간에 새로 생긴 점은 역적의 표지였을까, 스스로가 반정의 도화선으로 작용할 것일까. 영화는 흥미로웠지만 사실 점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이 좋다. 앞서 말했듯 점은 주로 멜라닌세포의 이상 증식 혹은 사멸로 인해 생겨나는 것이며, 이는 개인의 의지와 생각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남들과 다르게 나타나는 신체적 특성에 의미를 부여하여 해석하려는 경향이 존재한다. 하지만 때로는 생물학적 현상은 그저 생물학적 현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두는 것도 좋다. 이은희 과학칼럼니스트
적당한 위치에 자리잡은 점은
사람의 얼굴을 돋보이게 하거나
이성의 눈길을 끌기도 한다 자외선으로부터 피부 보호하는
멜라닌세포 양이 많거나 적으면
검은점이나 흰점이 생긴다
여드름 같은 상처를 자극하면
멜라닌 침착돼 점처럼 변하기도 그렇다면 이 점은 왜 생길까. 일반적으로 가장 흔한 흑색점(lentigo)은 피부의 기저상피층에 존재하는 멜라닌세포의 멜라닌 과다 발현으로 인해 생겨난다. 흑색점은 대개 몇 밀리미터 정도로 작은 편이지만, 한 번 생겨나면 영구적으로 자리잡는 경우가 많다. 멜라닌세포는 자외선에 의한 피부 손상을 막는 작용을 한다. 자외선은 세포의 디엔에이(DNA)를 파괴해 세포에 해를 입히므로, 우리 몸은 자외선으로 인한 체세포의 손상을 막기 위해 멜라닌을 만들어 피부를 덮어두는 것이다. 타고난 멜라닌세포의 양은 유전에 의해 결정되지만-그래서 피부색에 따른 인종 구별이 오래도록 내려온 것이다- 자외선은 멜라닌 활성을 촉진하는 자극제 구실을 하므로 햇빛에 많이 노출될수록 피부가 검게 그을리곤 한다. 멜라닌세포의 역할이 기본적으로 피부를 보호하는 것이므로 피부에 상처를 입거나 혹은 호르몬의 균형이 깨지거나 하면 멜라닌세포가 과다 발현하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이것이 점으로 자리잡는 것이다. 속설에는 여드름을 자꾸 잡아 뜯으면 점이 생긴다는 얘기가 있는데, 상처가 생긴 피부 부위를 자꾸 자극하면 멜라닌이 침착되는 경우가 많아 실제로 점처럼 검게 변할 가능성이 높다.(그러니 상처는 가능하면 손대지 말자.) 일반적인 흑색점은 별다른 치료가 필요 없지만, 처음에는 옅은 색이었던 점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짙어지거나, 혹은 크기가 점점 더 커지면서 표면이 울퉁불퉁해지거나 점 부위에서 피가 난다면 악성 흑색종일 가능성이 높다. 악성 흑색종이란 멜라닌세포가 암세포로 변형되어 일어나는 피부암의 일종이다. 악성 흑색종의 경우 조기 발견과 치료가 필요하니 가끔은 내 몸의 점들이 변하지는 않았는지 살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일반적으로 점은 멜라닌세포의 과다증식 때문에 일어나지만, 반대로 멜라닌세포가 너무 적어져도 점이 생길 수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멜라닌세포가 파괴되면, 해당 부위의 색소가 탈락되어 흰색 반점이 생겨나게 된다. 이런 증상을 백반증이라고 하는데, 이제는 고인이 된 마이클 잭슨이 생전에 백반증으로 인해 고생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백반증은 대개 넓은 부위에 나타나기 때문에 외모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해당 부위의 피부가 자외선에 대해 취약해지는 등의 불편함이 생겨난다. 따라서 이를 치료하기 위한 방법들은 다양하게 나와 있지만, 일단 한 번 파괴된 멜라닌세포는 다시 생겨나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치료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곱개 점 가지고 태어난 ‘응칠’ 안중근 의사 지금과 같이 의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 점은 한 번 생겨나면 평생을 가지고 가야 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점들이 선천적으로 혹은 성장기에 발생하며 성인이 된 뒤에는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데-노인성 반점이나 기미 등은 제외하면- ‘변치 않는다’는 이 특징은 개인을 구별하는 독특한 이름표 역할로 많이 이용되곤 했다. 허균의 <홍길동전> 속에는 스스로를 진짜 길동이라고 주장하는 여덟 명의 동일 인물이 나타나자 그 아버지인 홍 승상은 “신의 천한 자식 길동은 왼편 다리에 붉은 점 일곱이 있사오니”라며 점을 이용해 진짜 홍길동을 구별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북두칠성을 신성시했던 우리의 풍습상 일곱 개의 점은 갓난아이가 장차 난세를 구할 영웅이나 후대에 이름이 남을 위인이 되리라는 것을 알려주는 하나의 증표이기도 했다. 삼국 통일의 선봉장이었던 김유신 장군이나 귀주대첩에서 거란의 10만 군사를 물리친 강감찬 장군은 북두칠성을 닮은 일곱 개의 점을 지니고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는가 하면, 안중근 의사는 일곱 개의 점을 가지고 태어나 ‘응칠’(應七)이라는 아명으로 불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점이 꼭 영웅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인조 반정의 선두에 섰던 김자점(金自點)은 이름처럼 미간에 점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이는 그의 아버지 손에 죽었던 커다란 지네의 저주로 인한 점이었다고 한다. 지네의 저주였을까. 김자점은 한때 영의정의 자리까지 오르고 인조의 옹주를 며느리로 맞는 등의 권세를 누렸으나 결국 역모 사건에 휘말려 비참하고도 끔찍한 죽음을 맞이한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 보자. 영화 <관상>에서 가장 조마조마했던 장면은 운명을 읽는 관상가가 숙부인 수양대군이 자신을 해하려 한다는 것을 믿고 싶어하지 않는 조카 단종에게 경고하고자, 수양대군의 미간에 세 개의 점을 몰래 그려 넣는 장면이었다. 미간에 존재하는 세 개의 점은 역적의 표지로 읽히기 때문이었다. 그의 의도대로 수양대군의 얼굴에서 이를 발견한 단종은 그때부터 숙부를 경계하여 내치려 하게 되고, 이를 감지한 수양대군은 한발 앞서 피비린내 나는 난을 일으키는 것으로 영화는 흘러간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과연 수양대군의 미간에 새로 생긴 점은 역적의 표지였을까, 스스로가 반정의 도화선으로 작용할 것일까. 영화는 흥미로웠지만 사실 점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이 좋다. 앞서 말했듯 점은 주로 멜라닌세포의 이상 증식 혹은 사멸로 인해 생겨나는 것이며, 이는 개인의 의지와 생각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남들과 다르게 나타나는 신체적 특성에 의미를 부여하여 해석하려는 경향이 존재한다. 하지만 때로는 생물학적 현상은 그저 생물학적 현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두는 것도 좋다. 이은희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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