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사건 조사당시 검찰에 진술
법정선 “내 생각 진술한 것” 번복
“업무매뉴얼 확인”도 말 바꿔 부인
검찰 진술조서 미리 파악 드러나
법정선 “내 생각 진술한 것” 번복
“업무매뉴얼 확인”도 말 바꿔 부인
검찰 진술조서 미리 파악 드러나
국가정보원의 대선 여론조작 및 정치개입 사건 재판 과정에서 원세훈(62) 전 국정원장과 인터넷 게시글·댓글을 단 심리전단 직원들 사이의 지시관계를 인정한 국정원 직원의 진술이 공개됐다.
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이범균) 심리로 열린 원 전 원장 및 이종명 전 3차장,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의 공판에서, 검찰은 증인으로 나온 심리전단 직원 황아무개씨가 검찰 조사 당시 “원장님 지시가 있으면 (이종명) 차장, (민병주) 국장, 과장(파트장)의 단계적 회의를 거쳐 (지시가) 구체화돼 일선 직원에게 전달된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이날 검찰의 말을 종합하면, 황씨는 검찰에서 “원장님이 제주해군기지에 대한 대응을 지시하면, 제게는 ‘제주해군기지는 전 정권부터 추진했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라’라는 구체적인 지시사항으로 전달됐다.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은 말단 직원에겐 지시와 같아서 직원이 열람하고 숙지하는 게 관행이었다”고 말했다. ‘원 전 원장→차장·단장·파트장→직원’의 지시체계에 따라 인터넷 게시글·댓글 작업이 이뤄졌다고 인정한 심리전단 직원의 진술이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하지만 황씨는 이날 재판에선 “잘 알지는 못하고 당시 내 생각을 진술한 것”이라고 말했다.
황씨는 또 검찰에서 “이아무개 파트장은 지난해 11월 ‘선거가 얼마 안 남아 불순세력이 활동하니 반대클릭 활동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11월부터 파트원들이 찬반클릭 활동을 더 많이 했다”고 진술했다. 이는 심리전단 5파트 직원들이 지난해 9월부터 ‘오늘의 유머’(오유) 누리집에서 ‘테스트 차원’으로 찬반클릭 활동을 하다가 효과가 없어 중단했다고 말해온 것과 어긋난다. 황씨는 지난해 9월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업적을 홍보하는 ‘오빤 엠비스타일’ 동영상의 후속으로 이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홍보한 ‘오빤 독도스타일’ 동영상도 윗선의 지시로 ‘오유’에 올렸다고 진술했다.
황씨는 지난해 1월 방송 토크쇼 <힐링캠프>에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출연한 뒤 커뮤니티 사이트 ‘82쿡’에 “대선후보 자격을 충분히 갖췄다. 올해 국민의 선택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지네요”라고 쓰기도 했다. 이에 대해 황씨는 이날 재판에서 “이슈·논지와 무관하게 개인적으로 쓴 글”이라고 했다. 하지만 황씨가 해당 글을 쓰는 데 사용한 아이디는 업무를 위해 만든 것이다. 황씨는 “글 대부분 업무 수행 과정에서 지시받은 내용”이라고도 말했다.
황씨가 법정에 나오기 전 자신의 검찰 진술조서 내용을 미리 확인한 사실도 드러났다. 황씨는 검찰에서 “업무 매뉴얼을 사내 전자우편으로 받아 첨부파일을 열어 확인했다”고 진술했지만 이날 법정에서는 “구두로 들었지만 업무 매뉴얼을 본 적은 없다”고 말을 바꿨다. 이런 진술 번복에 대해 추궁받자 황씨는 “진술조서를 살펴보니 오류가 있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검찰이 “어떻게 조서 내용을 봤냐”고 묻자 “본 건 아니고 곱씹어봤다”고 대답했다. 검찰이 다시 “조서 내용을 누구한테 들었냐”고 캐묻자 “사무실…”이라며 말을 흐렸다. 황씨의 조서를 열람·복사한 원 전 원장 쪽이 법정에서의 진술 내용을 지시한 게 아닌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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