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생명] 바다의 혼획 현장
▶ 자유로이 푸른 바다를 헤엄치는 고래에게 가장 두려운 일은 무엇일까요? 포획이 금지된 지금은, 어민들이 고기를 잡기 위해 쳐 놓은 그물에 걸리는 일(혼획)입니다. 폐로 호흡하는 고래는 그물에 걸리면 숨을 쉬지 못해 익사하기 쉽거든요. 고래와 인간의 공존을 고민할 때 고래 혼획은 전통적 과제입니다. 혼획을 줄이기 위한 정책이 현재는 따로 없습니다. 고래에게 부디 그물에 걸리지 않고 살기만을 바랄 뿐이라니, 고래로서는 서운할 일입니다.
지난 11일 경상남도 남해군 미조면 남해군수산업협동조합 위판장은 소란스러웠다. 혼획(그물에 걸림)돼 죽은 고래를 실은 배가 항구에 들어온 것이다. 죽은 고래는 몸길이 4.8m, 둘레 2.6m에 무게 1.5t, 암컷 밍크고래였다. 밍크고래는 어쩌다 그물에 걸려 죽었을까. 15일 남해군수협위판장을 찾았다.
잡힌 밍크고래는 이미 해체장으로 보내진 뒤였다. 손가락만한 굵기의 멸치를 상자에 쓸어 담고 있던 한 아주머니가 고래가 들어오던 날의 분위기를 전했다. “나는 그날 일하느라 멀리서 봤어. 우리는 고래 자주 보는걸. 재작년인가는 매일같이 봤어. 저 아저씨가 고래 산 사람이야.”
그가 가리킨 사람은 그날 경매에서 밍크고래를 낙찰받은 남해군 수협 58번 중매인 천철웅(51)씨였다. 그는 2323만원을 지급하고 산 고래를 포항 구룡포의 해체장에 되팔았다. 위판장에서 멸치 경매 중이던 천씨가 말했다.
“고래는 버리는 부위가 거의 없어요. 시세가 그때그때 다른데 몸길이, 둘레, 가죽 두께에 따라 값이 달라요. 신선도가 가장 중요하지요. 그 밍크고래는 내장이 부패된 상태라 손해 좀 봤어요.”
밍크고래를 잡은 동남호의 선장 박춘배(61)씨는 남해와 여수 사이 바다에서 조업 중이었다. 전화통화에서 박씨는 처음 봤을 때 고래가 이미 죽어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주장은 ‘익사’였다.
“11일 새벽 5시에 발견했어요. 고래는 앞으로만 가고 뒤로 못 가요. 붕장어를 잡는 통발(고기를 잡는 원통형 어구. 30~40㎝ 정도의 크기)에 든 물고기를 먹으려고 통발을 삼키다가 통발을 걸어둔 줄에 꼬리가 걸린 거예요. 오도 가도 못하니까 숨을 쉬러 나가지 못해 죽은 거죠.”
박씨가 밝힌 고래가 잡힌 곳은 북위 34도 10분 50초, 경도 127도 40분 00초였다. 전라남도 여수 소리도 남방 10마일 해상이었다. 박씨는 고래를 잡은 게 처음이 아니다. 6년째 동남호를 타고 있는 박씨는 2010년부터 지금까지 7마리의 밍크고래를 ‘혼획’했다. 운이 나쁜 고래가 그물에 걸려 죽은 것이라고 박씨는 말했다.
-고래를 많이 잡으셨네요.
“2011년에 4마리, 2010년에는 2마리 잡았어요. 7마리째예요. 안 그래도 주변에서 고래를 다른 고기처럼 잡는다고 합니다. 4마리 잡았을 때는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러웠어요. 올해는 잠잠해서 이제 잡힐 때가 됐다고 생각했어요.”
-남들은 한 마리도 잡기 어렵다는데, 비결이라도 있나요?
“그건 이야기하면 안 돼요. 고래를 계획적으로 잡으면 징역살이합니다. 특별한 건, 고래가 다니는 길을 아는 거죠.”
통영해양경찰서 남해파출소 김영민 경장은 박씨의 고래를 ‘혼획’으로 인정했다. 이날 오전 10시 위판장에 도착하니 죽은 고래가 바닥에 누워 있었다고 김 경장은 말했다. “외관상으로 작살에 찔린 상처 같은 불법포획의 흔적이 없었습니다. 주둥이랑 꼬리 쪽에 그물에 쓸린 흔적이 보여 혼획으로 판단한 후 유통증명서 발급을 허락했습니다.”
남해수협은 유통증명서를 발급하고 밍크고래의 등 쪽 시료를 채취해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로 보냈다고 답했다.
2011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고래자원의 보존과 관리에 관한 고시’를 보면 고래 포획은 법으로 금지돼 있다. 국제포경위원회 회원국인 한국은 1986년부터 포경을 금지했다. 단, 혼획·좌초·표류된 고래는 유통을 허가했다. 해경이 불법성이 없다고 판단해 고래를 잡은 어선의 입항 및 유통을 승인하면 수협은 고래를 발견한 어민에게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다는 의미의 유통증명서를 발급한다. 수협은 고래의 디엔에이 시료를 채취해 고래연구소에 보내야 한다. 이렇게 모인 디엔에이는 불법 포획된 고래가 아니라는 증거가 된다.
고래 포획은 법으로 금지됐지만
혼획·좌초·표류될 경우엔
수협의 유통증명서 발급받으면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다
2012년 2633마리가 혼획됐다 고래를 살려주면 보상금 없지만
내다 팔면 2000만원 이상 벌어
“지금 제도로는 혼획을 가장한
포획을 막을 수가 없어요” 혼획 또는 좌초·표류돼 죽은 고래는 고래고기를 공급하는 창구 구실을 한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 자료를 보면 2011년 1054마리, 2012년 2633마리가 혼획됐다. 그러나 유통증명서 발급은 2011년 277건, 2012년 1126마리뿐이었다. 절반 넘게 불법유통되는 셈이다. 동물보호·환경단체들은 혼획된 고래를 보호하는 정책이 마련돼 있지 않다며, 사실상 정부가 혼획을 통해 고래 포획을 방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법적으로는 살아 있는 고래를 발견한 어민은 고래를 살릴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해양경찰에 신고한 다음 서울대공원, 부산아쿠아리움 같은 해양동물 전문구조치료기관에 보내 방류해야 한다. 그러나 어민들이 스스로 고래를 놓아준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죽은 고래는 고래를 발견한 어민의 소유로 인정하지만, 산 고래를 방류할 경우 어민이 법적으로 받을 수 있는 보상금이나 어구 복구 비용은 따로 없다. 그래서 어민들은 고래 혼획을 ‘바다의 로또’라고 생각한다. 이날 박씨에게도 밍크고래는 복권 당첨 같은 행운이었다. “배를 타면 고기를 한 마리라도 더 잡을 생각만 하지요. 그중에서도 고래는 복권 당첨이에요. 고래 1마리가 장어 3000㎏이랑 값이 같으니까요. 그 정도면 3일치 작업량과 맞먹습니다.” -고래는 어떻게 잡혔나요? “배 타는 사람들은 고기가 있는 곳에 고래도 온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알아요. 고기를 잡으려고 투망을 하면, 그물이 가라앉는 데 시간이 걸리잖아요. 고래가 가라앉고 있는 통발을 먹으려다 줄에 몸이 걸리는 거죠. 7~8시간마다 그물을 걷어올리니까 그날도 그사이쯤 죽었을 거예요.” 현재로서는 고래가 실제 혼획됐는지 아니면 어민들이 어구에 걸린 고래를 놓아주지 않고 고의로 죽게 두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고래 몸이 작살에 찔렸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해경이 금속탐지기로 금속 성분 검출 여부를 조사하고 육안으로 몸에 난 상처를 관찰하는 정도다. 동물보호단체 핫핑크돌핀스의 황현진 대표가 말했다. “지금 제도로는 혼획을 가장한 포획을 막을 수가 없어요. 어민 입장에서는 고래를 살려줘봤자 얻을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는데, 고래를 팔면 비싼 고래고기 값을 벌잖아요. 살려주는 어민에게 적당한 금액의 보상금을 줘야 해요. 또 혼획된 죽은 고래라도 시장에 유통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린피스가 2012년 9월 발표한 ‘사라지는 고래: 한국의 불편한 진실’ 보고서를 보면 2009년 국제포경위원회에 보고된 한국 밍크고래의 사망 원인 중 33%가 혼획이었다. 혼획으로 인한 밍크고래의 높은 사망률은 어민들이 의도적으로 고래를 익사시키거나 사살하도록 조장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고래 혼획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래가 그물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고래가 싫어하는 음향경고장치를 달 수 있다. 음향경고장치는 고래들이 싫어하는 주파수의 소리를 높여서 일종의 충격을 주는 기계다. 그러나 어민들에게 몇십만원씩 하는 기계를 구입하도록 강요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고, 무엇보다 고래는 기계를 뛰어넘을 만큼 머리가 똑똑하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 안용락 박사가 말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쇠돌고래가 그물에 걸리는 걸 막기 위해 핑어(PINGER)라는 기계를 많이 써요. 그런데 아직 한국 어민들은 음향경고장치가 다른 고기까지 쫓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 잘 쓰지 않아요. 또 돌고래들이 정말 똑똑하거든요. 시범을 해봤더니 처음에는 겁을 내고 접근을 안 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다가오더래요. 소리가 나는 곳에 먹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연안을 헤엄치는 고래가 제 수명 다하고 사는 길은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방법뿐이다. 아니면 그물을 풀어주는 마음 착한 어민을 만나길 소망해야 한다. 정말 고래는 운이 나빠 그물에 걸려 죽는 걸까? 말 못하는 고래를 위한 혼획 방지 정책은 없다. 남해/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혼획·좌초·표류될 경우엔
수협의 유통증명서 발급받으면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다
2012년 2633마리가 혼획됐다 고래를 살려주면 보상금 없지만
내다 팔면 2000만원 이상 벌어
“지금 제도로는 혼획을 가장한
포획을 막을 수가 없어요” 혼획 또는 좌초·표류돼 죽은 고래는 고래고기를 공급하는 창구 구실을 한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 자료를 보면 2011년 1054마리, 2012년 2633마리가 혼획됐다. 그러나 유통증명서 발급은 2011년 277건, 2012년 1126마리뿐이었다. 절반 넘게 불법유통되는 셈이다. 동물보호·환경단체들은 혼획된 고래를 보호하는 정책이 마련돼 있지 않다며, 사실상 정부가 혼획을 통해 고래 포획을 방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법적으로는 살아 있는 고래를 발견한 어민은 고래를 살릴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해양경찰에 신고한 다음 서울대공원, 부산아쿠아리움 같은 해양동물 전문구조치료기관에 보내 방류해야 한다. 그러나 어민들이 스스로 고래를 놓아준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죽은 고래는 고래를 발견한 어민의 소유로 인정하지만, 산 고래를 방류할 경우 어민이 법적으로 받을 수 있는 보상금이나 어구 복구 비용은 따로 없다. 그래서 어민들은 고래 혼획을 ‘바다의 로또’라고 생각한다. 이날 박씨에게도 밍크고래는 복권 당첨 같은 행운이었다. “배를 타면 고기를 한 마리라도 더 잡을 생각만 하지요. 그중에서도 고래는 복권 당첨이에요. 고래 1마리가 장어 3000㎏이랑 값이 같으니까요. 그 정도면 3일치 작업량과 맞먹습니다.” -고래는 어떻게 잡혔나요? “배 타는 사람들은 고기가 있는 곳에 고래도 온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알아요. 고기를 잡으려고 투망을 하면, 그물이 가라앉는 데 시간이 걸리잖아요. 고래가 가라앉고 있는 통발을 먹으려다 줄에 몸이 걸리는 거죠. 7~8시간마다 그물을 걷어올리니까 그날도 그사이쯤 죽었을 거예요.” 현재로서는 고래가 실제 혼획됐는지 아니면 어민들이 어구에 걸린 고래를 놓아주지 않고 고의로 죽게 두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고래 몸이 작살에 찔렸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해경이 금속탐지기로 금속 성분 검출 여부를 조사하고 육안으로 몸에 난 상처를 관찰하는 정도다. 동물보호단체 핫핑크돌핀스의 황현진 대표가 말했다. “지금 제도로는 혼획을 가장한 포획을 막을 수가 없어요. 어민 입장에서는 고래를 살려줘봤자 얻을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는데, 고래를 팔면 비싼 고래고기 값을 벌잖아요. 살려주는 어민에게 적당한 금액의 보상금을 줘야 해요. 또 혼획된 죽은 고래라도 시장에 유통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린피스가 2012년 9월 발표한 ‘사라지는 고래: 한국의 불편한 진실’ 보고서를 보면 2009년 국제포경위원회에 보고된 한국 밍크고래의 사망 원인 중 33%가 혼획이었다. 혼획으로 인한 밍크고래의 높은 사망률은 어민들이 의도적으로 고래를 익사시키거나 사살하도록 조장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고래 혼획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래가 그물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고래가 싫어하는 음향경고장치를 달 수 있다. 음향경고장치는 고래들이 싫어하는 주파수의 소리를 높여서 일종의 충격을 주는 기계다. 그러나 어민들에게 몇십만원씩 하는 기계를 구입하도록 강요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고, 무엇보다 고래는 기계를 뛰어넘을 만큼 머리가 똑똑하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 안용락 박사가 말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쇠돌고래가 그물에 걸리는 걸 막기 위해 핑어(PINGER)라는 기계를 많이 써요. 그런데 아직 한국 어민들은 음향경고장치가 다른 고기까지 쫓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 잘 쓰지 않아요. 또 돌고래들이 정말 똑똑하거든요. 시범을 해봤더니 처음에는 겁을 내고 접근을 안 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다가오더래요. 소리가 나는 곳에 먹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연안을 헤엄치는 고래가 제 수명 다하고 사는 길은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방법뿐이다. 아니면 그물을 풀어주는 마음 착한 어민을 만나길 소망해야 한다. 정말 고래는 운이 나빠 그물에 걸려 죽는 걸까? 말 못하는 고래를 위한 혼획 방지 정책은 없다. 남해/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