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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16년 앓은 병 빨리 나아 아빠랑 같이 살고 싶어요”

등록 2013-09-29 20:44수정 2013-09-29 22:29

그룹홈에 사는 B형 간염 한상현군
그룹홈에 사는 B형 간염 한상현군
10살부터 간염약 복용했지만
값싼 약 부작용 등 내성만 키워
간 수치 정상치의 15배 치솟아
비싼 약 갈아탔지만 건보 안돼
매달 25만원 약값 감당 ‘막막’

상현(16)이는 매일 아침 알약 2개를 먹는다. 비(B)형 간염 치료약이다. 벌써 7년째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상현이가 집을 떠나 아동보호시설에 들어간 2006년부터 먹어온 약이다.

어머니는 상현이가 어렸을 때부터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일주일~한 달씩 집을 나가 떠돌던 어머니는 상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쯤부터 돌아오지 않았다. 건설 일용직을 하던 아버지는 술을 많이 마셨다. 어린 상현이를 집에 홀로 방치했고 술취하면 소리를 질렀다. 보다 못한 이웃집에서 ‘아동학대’ 신고를 했다. 2006년 상현이 아버지가 동사무소 직원의 설득을 받아들여, 상현이는 아동보호시설로 향했다. 상현이는 보호시설 2곳을 거쳐 2008년 울산 남구 대현동의 그룹홈(공동생활가정) ‘요셉의집’에 정착했다.

집을 떠난 이후 상현이는 시름시름 앓았다. 감기인 줄 알았다. 2006년 보호시설의 배려로 찾아간 병원에서 비형 간염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태아가 뱃속에서 어머니의 질병을 물려받는 현상인 ‘수직감염’으로 추정했다. 곧바로 치료약을 먹기 시작했다. 비형 간염 약은 하루라도 빼먹으면 약효를 보기 어렵다. 어린 상현이가 공동생활을 하면서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기는 쉽지 않았다. “귀찮아서, 아니면 까먹고 약을 못 먹을 때가 가끔 있었어요. ‘이모’가 아예 아침에 제 밥그릇에 약을 집어 넣어두기도 했었어요.” 상현이는 ‘시설장’을 이모라고 불렀다.

최근 상현이는 약에 내성이 생겨 몸이 안좋아졌다. 불규칙한 복용도 문제였지만, 의료보험 적용을 받는 값싼 약을 먹은 부작용 때문이었다. 올해 간기능 수치가 정상 범위의 15배까지 올라갔다. 이제부터 의료보험 대상이 아닌 개당 6000원짜리 ㅂ제품으로 치료약을 바꿔야 한다. 다음달부터 최소 3년 동안 약값·진료비 등으로 매달 25만원가량이 필요하다. 그룹홈 살림살이로 감당하기 어려운 돈이다.

상현이가 비싼 약값을 지불해야 하는 것은 보험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탓이다. 지난해부터 국내에 출시된 ㅂ제품은 비형 간염 초기 치료에 사용할 경우 12살 이상부터 보험이 적용되는데, 내성이 발생해 뒤늦게 복용하는 환자의 경우 18살 이상부터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상현이는 최근 ‘약 먹는 일을 단 하루도 빼먹지 않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지난해 겨울 헤어진 지 6년 만에 아버지와 다시 만나고 나서다. 지난 설 연휴 때는 어렸을 때처럼 아버지 오토바이를 타고 3일 동안 바다낚시도 다녀왔다. 연휴 동안 상현이는 매일 아침 아버지가 없는 틈을 기다려 몰래 약을 먹었다. “아프다는 걸 티 내서 (아버지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자동차 공학자 한상현’이 꿈인 상현이의 미래는 한달 25만원에 달려있다. 최신형 스마트폰 값의 3분의 1도 안되는 돈이다. 5년 전부터 플루트를 배워온 상현이는 울산공업고등학교 관현악단 소속으로 얼마 전 전국대회에서 단체 은상도 탔다. 그러나 음악은 취미다. 상현이가 울산공고에 간 이유는 하루빨리 돈을 벌고 싶어서다. “제가 빨리 일자리를 얻어서 돈을 벌게 되면 아버지랑 다시 같이 살 수 있을 거예요. 그러려면 건강해야 하니까, 의사 선생님 말대로 약 먹는 일 빼먹지 않으려고요.”

울산/글·사진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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