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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말 관리사’, “툭하면 119”…말도 못할 위험

등록 2013-09-08 21:01수정 2013-09-09 10:33

4일 오전 11시께 경기도 과천 경마공원 안 삼포마사에서 마필관리사들이 말굽교체 작업에 나서고 있다.
4일 오전 11시께 경기도 과천 경마공원 안 삼포마사에서 마필관리사들이 말굽교체 작업에 나서고 있다.
낙마로 전신마비…허리 차여 장 파열…산재율 26배
송공조(56)씨는 여러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 30년째 서울경마장에서 ‘마필관리사’로 일하면서다. 마필관리사는 “바람에 낙엽이 흔들리는 것에도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로” 예민한 말을, 가장 가까이에서 먹이고 씻기고 돌본다. 조교사를 도와 경주마로 거듭날 수 있는 순치 훈련도 시킨다. 송씨는 1995년께 말을 훈련하다 낙마해 전신마비가 왔다. 옆으로 다른 말이 지나가자 놀란 말이 펄쩍 뛰어오른 탓이다. 중환자실에서 넉달가량 지낼 만큼 큰 사고였지만 요양 1년 만에 경마장으로 돌아왔다.

2007년에도 중환자실에 실려갔다. 경주로 바깥으로 도망나온 말을 제자리에 돌려보내다 허리를 채여 갈비뼈 2곳이 부러지고 비장이 파열됐다. 1년 동안 요도에 관을 꽂아 피를 뽑아내다가 이번에도 완치 전에 다시 일터로 향했다. 지금은 목에 고정 핀을 14개 꽂고 일한다. 2011년 말 정리운동을 시키다 목을 다친 탓이다.

송씨와 함께 일하는 박경현(45)씨에게는 ‘25년 마필관리사 근무 경력’이 장애진단 4개란 상흔으로 새겨졌다. “새벽에 구급차가 경마장으로 들어서는 걸 보는 게 흔한 일이니까, ‘에휴 누가 또 다쳤구만’ 생각하며 웃고 말 지경이야. 살아있다는 것만 해도 감사하다고 생각해요.” 왼쪽 다리만 두번이나 다쳐 보조기구 없이 걷지 못하는 박씨는 허리·척추 부위에도 장애진단을 받았다.

이들이 일하는 서울경마장 마필관리사들의 산업재해율은 최근 5년 간 연평균 13.89%다. 전체 업종 평균 산재율 0.52%의 26배가 넘는다. 2011년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산업재해 다발 등 공표 대상 사업장 명단’을 보면 단일 사업장으로 전국 1위다.

예민한 말 ‘경주마’로 빨리 쓰려

열악한 환경서 무리하게 순치

1420마리 위한 워킹머신 6대뿐

마사회, 마주제 시행 뒤 나몰라라

노조 “직접 고용·환경개선 나서야”

산재가 많이 발생하는 원인으로는 무리한 순치(길들이기) 과정, 순치시설 부족 등 열악한 작업환경이 꼽힌다. 목장에서 태어나 순치 과정을 거치지 않은 말들을 경마장에 들여와 길들이기까지는 1년여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본인이 투자한 말을 하루빨리 경마에 투입시키려는 마주들의 채근 탓에 급하게 순치시키는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하기 일쑤다. 전국경마장마필관리사노동조합 이혜경 정책홍보선전실장은 “외국에는 순치 과정을 거쳐 일정 정도 경주마 요건을 가진 말들을 들여오는데, 우리는 그런 제도가 없다. 순치 장비·장소라도 충분해야 하는데 경마장의 말 1420마리를 워킹머신 6대(각 6~8칸)로 소화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노조는 한국마사회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주마 등록 규정을 바꾸고 작업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물론 나아가 마사회가 마필관리사들을 다시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1993년 개인 마주제가 시행되면서 마사회 직원이었던 마필관리사들의 고용주체는 조교사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마사회가 마필관리사들의 면허 인·허가권과 고용승인권 등을 갖고 있다. 은수미 민주당 의원은 “경마장 환경개선에 대한 책임은 마사회에 있지만 이들은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환경개선, 산재예방 등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이는 위험도 큰 직종을 외주화해 노동자가 사용자의 책임 아래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배제한 부당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마사회 김정수 경주자원관리팀장은 “마필관리사 채용에 관여하는 건 승부조작이 없도록 하기 위해 범죄경력 등을 조회하는 수준일 뿐이다. 개인마주제가 시행되고 있으므로 직접 고용할 수 없다. 시설 문제는 향후 개선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글·사진/김효실 방준호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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