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희망은행’에서 창업 지원
취업 어려운 이들에 재기 종잣돈
재복역률 9.4%…일반 통계치 절반
“예서 망하면 끝이란 각오로 일해”
취업 어려운 이들에 재기 종잣돈
재복역률 9.4%…일반 통계치 절반
“예서 망하면 끝이란 각오로 일해”
강석현(가명·52)씨는 세차례의 전과가 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중학교 졸업 뒤 가죽 기술을 익힌 강씨는 20대 중반부터 사업을 했는데, 외환위기 때 거래처의 줄도산으로 어음 10억원을 막지 못해 처음 구치소 문턱을 넘었다. 2010년엔 5000만원짜리 부도로 채권자 두명에게 고소당해 두차례 더 감옥 신세를 졌다. 세번째 구치소에 들어갈 땐 출소 뒤를 생각하며 유독 눈앞이 캄캄했다. 취업은 엄두가 나지 않고 창업 자금도 구할 길이 없을 게 뻔했다. 그러나 강씨는 구치소에서 ‘기쁨과희망은행’을 만나며 재기를 꿈꾸게 된다. “사기 전과 있는 출소자에게 돈 떼일 걱정 없이 대출해주는 데가 어딨겠어요? 막다른 골목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가능성만 보고 기회를 주는 곳을 만난 거지요.”
강씨가 현재 서울 광진구에서 가방 제조업체를 운영할 수 있게 해준 기쁨과희망은행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에서 출소자들의 자립을 지원하기 위해 2008년 설립한 마이크로크레디트(무담보 소액 대출) 기관이다. 은행은 출소한 지 3년이 안 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교육·심사를 거쳐 연 2% 이자로 최대 1000만원(임대보증금 대출 시 2000만원)까지 빌려준다. 강씨는 출소와 함께 1500만원을 대출받아 2012년 5월 가죽 가방 사업을 시작했다. 지난 1년3개월 동안 하루를 온전히 쉬어본 날이 열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쉼없이 일한 결과, 지금은 한달에 가방 500~600개를 브랜드 회사에 납품하며 안정적인 수익을 내고 있다. 강씨는 “어렵게 기계값을 구했더라도 공장 건물 보증금 낼 돈이 없어 비싼 월세를 내다보면 또 엎어지는 건 시간문제였을 것”이라며 “내 기술과 경험을 믿고 기회를 준 은행에 매달 꼬박꼬박 돈을 갚을 수 있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어묵·빵 등 먹거리 행상을 하고 있는 박무열(가명·34)씨에게도 기쁨과희망은행은 특별하다. 청소년 때 저지른 중죄로 1998~2010년 교도소에 수감됐던 박씨는 2011년 이 은행에서 450만원을 대출받아 일을 시작했다. 박씨는 “내게 주어진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다. “20대를 통째로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여기서 망하면 끝이란 각오로 매일 14시간씩 일하고 있어요.” 그는 무엇보다 ‘인간적인 대우’가 눈물겹게 고마웠다고 했다. 박씨는 “은행에서 창업교육을 6주간 받을 때, 직원이든 강사든 누구나 우리(출소자들)에게 인사를 깍듯이 해줬다. 눈빛도 달랐다. 사소한 것 같은 여러 행동에서 ‘인격적으로 대우해준다’는 느낌에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강씨와 박씨처럼 지난 5년 동안 기쁨과희망은행에서 대출받은 출소자는 139명이다. 총 대출금이 23억원으로, 1인당 평균 1400만원꼴이다. 일반 소상공인의 평균 창업비용 6570만원(2011년 중소기업청 실태조사)에 견줘 적은 액수지만, 사회로 돌아온 출소자들이 ‘빈곤’이란 또다른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종잣돈이 됐다. 특히 출소자란 낙인과 나이가 겹쳐 재취업이 어려운 중년층이 많은 도움을 받았다. 139명 중 40대(45명)와 50대(66명)가 80.6%를 차지한다. 김일호 기쁨과희망은행 간사는 “첫 창업에 실패해 폐업을 하고도 재기를 위해 은행의 자조모임에 꾸준히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평균 연체율은 65.6%로,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출소자들이 많지만 불황을 감안하면 몹시 나쁜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기회’를 얻은 출소자들이 다시 교도소에 갈 확률은 뚜렷하게 줄어든다. 은행을 이용한 출소자의 재복역률은 9.4%(13명)로, 일반 출소자들의 재복역률 22.2%(2012년 법무부 통계)보다 절반 이상 낮았다. 실업과 범죄의 연결고리를 끊으려는 노력이 일정 부분 성과를 낸 것이다. 경기대 교정보호학과 이백철 교수는 “출소자들의 사회 복귀를 위해 창업교육, 대출지원, 사후관리까지 하는 국가 사업이 전무한데, 민간단체가 자체 사업으로 의미가 큰 성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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