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옷은 몸을 보호하고 보정하는 기능도 있지만, 이성을 유혹하는 구실도 한다. 국내 속옷회사의 패션쇼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토요판/몸] 노출의 사회학
▶ 하얗고 긴 다리가 눈에 훅 들어옵니다. 초콜릿색 어깨 근육에 자꾸 눈이 가네요. ‘하의 실종’과 ‘상의 탈의’가 미덕인 시대, 노출은 자신감의 표현입니다. 그럼에도 노출하지 않는 신체 부위가 있지요. 특별한 관계가 아니면 그곳은 드러내지 않는다는 합의는 어떻게 하게 된 걸까요. ‘벌거벗은 원숭이’와 ‘원숭이’의 서로 다른 노출 행태를 통해 숨은 에로스를 생각해봅니다.
한동안 유행처럼 떠돌던 말이 있다. 단추로 앞을 여미는 셔츠나 블라우스를 입고 맨 위의 단추를 하나만 풀어놓으면 지성(知性)적이고, 두 개를 풀면 야성(野性)적이나, 세 개를 풀면 실성(失性)한 상태라는 말이다. 요즘의 노출 경향을 감안해본다면 이는 다소 시대에 뒤떨어진 비유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의복의 노출 정도에 따른 사회적 인식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꽉 조인 의복에서 오는 답답함을 슬쩍 거부한 것은 지적이며, 약간의 노출은 성적인 매력을 자극할 수 있지만, 지나친 노출은 오히려 거부감이 들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갓난아기는 벌거숭이로 태어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옷은 제2의 피부이다. 우리는 옷을 통해 몸을 가리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이는 인간이 포유류 중에 눈에 띄게 ‘벌거벗은’ 상태라는 점과 비교해 볼 때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볼 때 벌거벗은 동물이다. 이에 동물행동학자인 데즈먼드 모리스는 인간에게 생물학적인 특징에 따라 이름을 지어준다면 ‘털 없는 원숭이’가 가장 적합할 것이라 단언한다. 외부의 기온과 상관없이 일정하게 체온을 유지하는 능력을 지닌 포유류의 피부는 털로 뒤덮여 있는 것이 보통이다. 털은 대부분의 포유류에게 있어 추위로 인한 체온 손실을 막아주고, 때로는 낙타의 경우처럼 더위로 인한 체온 상승 역시도 막는 역할을 하기에 매우 중요하다. 인간은 다르다. 갓난아이는 거의 벌거숭이로 태어난다. 온몸에 돋아 있는 솜털은 털로서 기능을 거의 하지 못하기에 있으나 마나 하다. 비단 벌거숭이로 태어나는 포유류가 인간만은 아니지만(쥐의 경우도 거의 털이 없는 새끼를 낳는다) 인간만큼 그 상태 그대로 성장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인간은 성장하더라도 모발만이 특징적으로 자라나며, 성적 성숙기를 지나면서 겨드랑이와 성기 주변에만 약간의 체모가 추가될 뿐, 나머지는 여전히 솜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기에 ‘털 없는 원숭이’라는 모리스의 명명은 매우 타당해 보인다.
포유류는 온몸 털로 덮였지만
생식기 주변에는 털이 없다
이성의 눈에 더욱 잘 띄어
번식 가능성 높이기 위해서다 ‘털 없는 원숭이’인 인간은
옷을 제2의 피부로 삼으면서
기를 쓰고 성 관련 부위 가린다
다른 포유류와 차별화를 통해
이성을 유혹하려 하기 때문이다 모리스가 인간을 ‘털 없는 원숭이’로 칭한 것은 인간이 지닌 동물학적 본성을 정확히 파악하여 인간만이 지닌 인간성의 특징을 근본적으로 고찰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우리가 몸의 노출에 대해 왜 모순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본질적인 이해가 가능할 수 있다. 우리는 몸을 드러내는 것을 찬양하는 동시에 천시하곤 한다. 때로 드러낸 몸은 건강함과 매력의 상징으로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천박함과 모욕의 상징으로 읽히며 거부와 경멸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발정기에 들어선 수컷 침팬지와 암컷 비비원숭이의 몸은 털로 뒤덮여 있지만, 성기에는 털이 없으며 이들은 이를 감추기보다는 가능한 한 눈에 잘 띄게 드러내려고 한다. 평소에 네발로 기어다니는 침팬지가 두발로 직립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리적으로 본다면 인간의 노출된 피부는 체온 유지와 피부 보호라는 측면에서는 매우 불리하다. 따라서 인간은 이를 극복하고자 제2의 피부인 옷을 만들어냈다. 동물의 털가죽을 둘러 추위를 막거나 큰 천으로 몸을 가려 햇빛을 차단하는 것, 다치기 쉬운 팔과 다리 혹은 다치면 치명적인 머리, 가슴 등을 단단한 재질로 덮어 가리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이는 생존을 위한 생물학적 필요성에 의한 행동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많은 문화권에서 나타나는 의복의 형태는 외부 생식기를 비롯하여 성적인 것과 관련된 부위를 가리는 형태이다. 특히나 이런 부위에 대한 노출은 이성이 있는 경우 더욱 금기시된다. 이는 다른 동물들과 비교해 보건대 매우 특이한 현상이다. 온몸이 털로 뒤덮인 포유류들에게는 유일하게 털로 덮이지 않은 부위가 생식기이며, 이들은 이성에게 이 부위를 더욱 드러내고자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빅토리아 시대엔 피아노 다리도 가려
동물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가능한 한 이성의 눈에 잘 뜨이고 그들의 눈에 유혹적으로 보이게 만들어 번식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다른 곳은 모두 드러내면서 유독 성과 관련된 부위만은 기를 쓰고 가리는 인간의 노출 패턴은 생물학적 속성을 위배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인간이 여타의 동물들과는 다르게 털이 없는 몸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어쩌면 가장 생물학적 본능에 의한 행동일 수도 있다. 다른 동물들이 털로 덮여 있는 몸을 지니고 있기에 털을 없애고 드러냄으로써 이성에게 어필하려고 한다면, 반대로 털이 없는 몸을 지닌 인간은 이 부위를 가리고 숨겨 차별화를 시도함으로써 호기심을 유발하여 이성을 유혹하려고 하는 것으로도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학자들의 연구를 보면 노출과 은폐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로 노출은 은폐가 있기 때문에 존재하며, 은폐 또한 노출의 개념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시대에 따라 선호하는 노출의 부위가 변화하는 것 또한 설명이 가능하다. 요즘에는 미니스커트와 핫팬츠가 유행이어서 긴 다리를 시원스레 드러내는 것이 이상하지 않지만, 빅토리아 시대 유럽 여성들의 경우 가슴선은 유두가 보일 정도로 깊게 패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리는 발가락 끝도 제대로 노출하지 않았다. 이는 다리가 매우 성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으로, 당시에는 사람이 아닌 피아노의 다리조차도 정숙지 못하다는 이유로 덮개로 가리던 시절이었다고 하니 그 금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가릴수록 해당 부위를 더욱 두드러지게 하였고, 그 안에 존재하는 것에 대한 상상을 불러일으켜 더욱 에로틱한 느낌을 가지게 만들곤 했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벌거벗은 몸을 지니고 있다. 이로 인해 인간은 오히려 강조하고 싶은 부위를 은폐함으로써 몸의 여타 부위와 다른 차별성을 시도한다. 그리하여 인간의 근원적 미의식은 온전히 드러내는 것보다 상상의 여지를 둔 채 감추는 것이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느끼도록 형성되었는지도 모른다. 그 방식은 눈만 빼놓고 온몸을 검은 천으로 꽁꽁 감싸는 방식에서 성기 부분만 유난히 과장되게 장식하는 방식까지 천차만별이지만, 그 이면에는 노출과 은폐의 대비를 통해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고자 하는 생물학적 본능이 숨어 있다.
이제 지루했던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더위가 시작되는 철이다. 이런 계절에는 옷에서 보온과 보호의 의미는 더 이상 필요 없다. 그렇다면 옷이 가지는 제3의 의미, 자신의 몸을 더욱 매력적으로 드러내는 존재라는 데 초점을 맞춰본다면 어떤 식으로 옷을 입어야 할지 가늠이 될 수 있다. 정말로 멋스럽게 스스로를 드러내고 싶다면, 가장 멋스럽게 가려야 할 곳이 어딘지를 가늠해 보면 될 테니까.
이은희/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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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엉덩이를 드러낸 암컷 비비원숭이의 모습. 영장류의 몸은 털로 뒤덮여 있지만, 성기에는 털이 없으며 이들은 이를 감추기보다는 되도록 눈에 잘 띄게 드러내려고 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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