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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그녀가 죽인 걸까, 그러나 주검이 없어…

등록 2013-07-12 19:06수정 2013-07-14 15:10

실종 당일인 2004년 7월29일 엘리베이터 시시티브이에 이종운 변호사의 마지막 모습이 포착됐다. 에스비에스 <그것이 알고 싶다>(341회, 2005년 5월28일 방영) 화면 갈무리
실종 당일인 2004년 7월29일 엘리베이터 시시티브이에 이종운 변호사의 마지막 모습이 포착됐다. 에스비에스 <그것이 알고 싶다>(341회, 2005년 5월28일 방영) 화면 갈무리
[토요판] 표창원의 죄와벌
<22> 이종운 변호사 실종사건
유능했던 30대 변호사가
휴가 이틀 전 사라져버렸다
가족은 실종 신고를 했지만
약혼녀의 말은 전혀 달랐다
그 말들은 사실이 아니었다 

약혼녀에겐 동거남이 있었다
실종 전 생명보험도 가입했다
‘잠적’ 주장 증거도 조작됐다
끝내 주검을 찾지 못한 검찰은
사기 등의 혐의로만 기소했다

서울 서초동에서 법무법인을 운영하던 임용 3년차인 이종운 변호사(당시 33살)는 성실하고 일 잘하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수입도 억대에 이르고 곧 결혼할 미모의 약혼녀까지 있어서 주변의 부러움을 많이 사던, ‘엄친아’의 전형이었다. 이 변호사는 2004년 7월31일부터 1주일간 여름휴가를 떠나기로 했다. 그런데 휴가 이틀 전인 29일 그가 사라졌다.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서둘러 퇴근한 뒤, 휴가가 끝나고도 출근을 하지 않고 연락도 닿지 않은 것이다. 곧 고향에 있는 이 변호사 가족에게 연락이 갔고, 수소문한 끝에도 이 변호사의 흔적을 찾지 못한 가족들은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당시만 해도 경찰은 ‘범죄 연루 정황이 발견되지 않은 성인 남성의 실종’에 대해서는 웬만해서는 즉각적인 수사를 실시하지 않았다. 수사 인력과 비용,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거니와 자칫 잘못하면 가족이나 지인 간의 사적인 다툼에 경찰이 도구로 이용되고, ‘사생활 침해’의 문제로 귀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가족과 이 변호사의 법무법인이 보인 깊은 우려와 전후 정황에 의문이 남아 경찰이 즉각 내사에 착수했다.

법무법인 직원들은 이 변호사가 29일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이른 시간에 퇴근했다고 전했다. 직원들은 이 변호사가 “내일 봅시다”라는 말을 남겨 휴가 전날인 30일에는 출근할 것으로 확신했다고 진술했다. 가족 역시 이 변호사가 결혼을 2개월 남겨두고 있고 직장이나 주변과 아무런 문제도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잠적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혼인신고서의 남편 연락처는 동거남의 것

중견 인터넷 관련 회사에 웹디자이너로 재직하던 이 변호사의 약혼녀 최아무개(당시 30살)씨의 말은 달랐다. 최씨는 이 변호사와 2년간 교제했고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다. 이 변호사가 자신에게 결혼을 전제로 ‘3억원의 돈과 고급 승용차, 큰 사무실’ 등을 요구했는데 자신에게 그런 경제적 능력이 없다고 했더니 결혼을 다시 생각해 보자며 가버렸다는 것이다. 최씨는 헤어지기 직전 현금 5000만원을 인출해서 이 변호사에게 주었고, 이 변호사가 아마도 그 돈으로 ‘장기간 잠적중인 것 같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경찰은 일단 이 변호사의 사무실이나 집 어디에서도 범죄 흔적을 찾지 못했고, 주변 사람들의 진술에서도 범죄 연루 정황을 확보하지 못했다. 자기 보호 능력이 있는 성인 남성의 실종이고, 가장 가까운 약혼녀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해 일단 이 사건을 ‘자발적 가출’로 보고 내사종결했다.

이 변호사의 가족은 경찰에 수사를 재개해 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청했다. 이 변호사의 실종 이후 약혼녀 최씨의 의심스런 행동과 주변 정황들을 알게 됐다며 가족은 경찰에 단서와 근거들을 제기했다. 이 변호사가 돈을 요구했다는 약혼녀 최씨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오히려 경제력이 없는 최씨를 위해 이 변호사가 오피스텔을 구입해 최씨 명의로 해 준 사실이 드러났다.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니 결혼에 회의를 느끼고 잠적했다’는 최씨의 주장도 거짓이었다. 이미 이 변호사와 최씨 사이에는 ‘혼인신고’가 되어 있었다. 법적으로 두 사람은 이미 ‘부부’였던 것이다.

경찰은 덮어두었던 사건 파일을 열고 다시 수사에 착수했다. 놀라운 사실들이 속속 드러났다. 두 사람의 혼인신고서에 적힌 ‘남편 이 종운’의 연락처는 다른 남성의 휴대전화 번호였다. 최씨와 동거중인 남성이었다. 약혼녀 최씨는 이 변호사를 만나는 동안 다른 남성과 동거중이었다. 최씨는 이 변호사가 실종되기 한 달 전에 최씨 자신을 수익자로 하는 총 수령액 15억원에 이르는 이 변호사 명의의 생명보험에도 가입했다. 이 변호사가 사망하거나 실종신고 이후 2년 동안 발견되지 않으면 최씨가 거액의 보험금을 받게 되는 상황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변호사가 실종되던 7월29일 저녁 6시15분, 최씨 동거남의 차량이 남산 1호 터널 요금소에 설치된 시시티브이(CCTV)에 촬영됐다. 최씨로 보이는 여성이 운전을 하고 이 변호사로 보이는 넥타이를 맨 남성의 모습이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의 얼굴은 햇빛 차단 필름이 붙여진 부분과 겹쳐 정확하게 식별되지 않았다. 최씨는 그 시간에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있었다며 사진 속 운전자는 자신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경찰의 의심은 깊어져 갔다. 최씨에게서 의심스러운 정황들이 발견되고 이 변호사가 범죄 피해를 당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던 9월, 최씨는 경찰에 이 변호사가 보냈다는 ‘자필 팩스’ 메모를 제출했다. “헤어지자. 중언부언하지 말고 이혼하자. 너도 다른 남자 만나라”는 내용이었다. 비슷한 시기 이 변호사의 고향집에도 전화가 걸려와 목소리 식별이 어려운, 작고 먼 듯한 음성으로 “종운이에요. 걱정 말아요. 잘 있어요. 다른 여자가 생겼어요. 곧 들어갈게요”라는 짤막한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남기고 끊는 일이 발생했다.

이 변호사가 아직 살아 있고 스스로 잠적한 것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제시된 이 두 건의 ‘연락’은 오히려 경찰의 ‘합리적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메모는 팩스 용지 특유의 잉크 번짐 현상 때문에 육안으로 식별이 어려웠지만, 글자의 크기와 높낮이가 조금씩 달라 부자연스러웠고 단어 사이에 미미한 세로줄이 보이는 등 수상한 점이 있었다. 이 변호사 고향집에 걸려온 전화 역시 미심쩍었다. 경찰은 곧 정밀한 과학수사를 개시해 팩스의 글자들이 한번에 손으로 쓴 것이 아니라, 이미 작성된 글자들을 각기 다른 곳에서 잘라 붙여 ‘조합’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 변호사 고향집에 걸려온 전화의 발신지도 서울 잠실 지역에 있는 공중전화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정황만으로 살인죄 입증” 판시한 고더드

경찰은 법원에서 이 변호사와 약혼녀 최씨가 관련된 장소와 금융거래, 통신사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본격적인 수사에 돌입했다. 충격적인 증거들이 확보되었다. 이 변호사의 금융거래에 대한 수사 결과 약혼녀 최씨는 이 변호사가 실종된 지 이틀 후 이 변호사 명의의 신용카드로 백화점에서 명품 가방 등을 구입하며 800만원이 넘는 ‘사치 쇼핑’을 했다. 이 변호사의 통장에 남아 있던 200만원의 현금도 최씨는 모두 인출해서 썼다. 은행에서 이 변호사 명의로 7000만원을 대출하려다 심사과정에서 중단한 적도 있었다. 최씨는 이 변호사의 인감도장과 인감증명서 및 각종 서류들을 무단으로 가져다가 이 변호사의 차를 팔아 1000만원을 챙기고, 이 변호사가 살던 오피스텔을 전세로 내놓아 6000만원의 보증금도 받아 챙겼다. 자신의 주장대로라면 ‘자진해서 잠적해, 아직 살아 있으며,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남편의 모든 재산과 주거지’를 팔거나 처분해 돈을 챙긴 것이다.

경찰은 최씨의 집을 압수수색해 이 변호사의 주민등록증과 수첩 등 개인 물품들을 발견했다. 이 변호사가 자필로 연락처나 약속 내용 등 소소한 일상들을 적은 수첩에서 여기저기 찢겨나간 흔적이 남아 있었다. 허위 팩스를 만들어낸 근원임을 알 수 있었다. 경찰은 최씨가 돈을 주고 이 변호사 흉내를 내며 고향집에 전화를 걸게 한 남자도 찾아냈다. 최씨와 이 변호사와 혼인신고를 할 때 동행했던 ‘동거남’과의 관계가 이 변호사를 만났던 2년 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래되었으며, 이 변호사가 실종되기 1주일 전에도 두 사람이 이 변호사 몰래 제주도로 2박3일간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최씨가 이 변호사를 해치고 그의 재산을 다 가로채고 보험금까지 노렸다”는 경찰 수사진의 심증은 굳어져 갔다.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증거도 상당히 갖춰졌지만 시신이나 혈흔 등 이 변호사가 ‘사망했다’는 것을 입증할 증거는 전혀 발견되지 않은 채 시간은 계속 흘렀다. 이 숱한 정황증거에도 불구하고 이 변호사의 시신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약혼자 최씨를 기소하지 못하는 것일까?

1954년 영국 웨일스 지방 한 시골 마을에서 농장을 공동경영하던 폴란드 출신 스타니스와프 시쿠트가 갑자기 실종됐다. 수사중인 경찰은 공동 경영자인 미하일 오누프레이치크가 시쿠트를 살해했다는 ‘심증’을 굳혔다. 오누프레이치크는 시쿠트가 ‘폴란드로 돌아갔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정밀 수색 결과 농장에 딸린 집 부엌에서 미세한 뼛조각과 벽에 튄 혈흔을 찾아냈고 오누프레이치크는 기소되었다. 법정에서 오누프레이치크는 그 뼈와 혈흔이 ‘토끼’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의학자와 수의사 등 전문가 증인들의 의견은 달랐다. 결국 살인죄의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당시 영국 대법원장 고더드는 “다른 사실들과 마찬가지로, 죽음 역시 정황증거로 입증될 수 있다. 증거들이 오직 한 결론에 도달하고, 이를 배심원들이 인정하는 한, 시신 없이도 살인죄는 인정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 ‘고더드 원칙’은 지금까지 유용하며 다른 많은 나라에서도 받아들이고 있다. 1960년 미국의 ‘People v. Scott 176 Cal. App. 2d 458’ 판결에서 “다른 모든 합리적인 가설들을 배제하기에 충분한 정황증거가 있다면, 실종자의 사망과 살인의 발생 및 피고인의 유죄가 입증될 수 있다”고 판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00년 호주에서 로펌의 한 변호사가 실종된 사건이 있었다. 마약범죄 조직원 2명이 피해자의 차를 타고 다니다가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려 검거됐다. 경찰은 이들이 피해자를 살해하고 시신을 바다에 버려 인멸한 것으로 보고 수사력을 집중했다.

실종된 변호사의 상사인 같은 법률회사 소속 변호사가 이들 마약범죄 조직원들에게 돈을 지급한 증거를 확보한 경찰은, 두 변호사 사이에 심각한 감정적 대립이 있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범행 동기’를 구축하자 해당 변호사를 살인 청부 혐의로 체포해 이미 검거된 마약범죄 조직원들과 함께 기소했다. ‘시신이 없는’ 상태에서 정황증거만으로 진행된 법정공방은 9년을 끌었고, 결국 2009년 대법원은 ‘고더드 원칙’에 따라 살인 및 살인청부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 확정판결을 내렸다.

약혼녀 1심서 징역 10년, 항소심서 2년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2010년 부산에서 발생한 ‘쉼터 여성 유인 살해 후 화장’ 사건이 그랬다. 시신이 이미 화장되어 없고 살인이 이루어졌다는 직접 증거가 없지만 대법원은 피고인 손아무개씨에 대해 유죄 판결과 무기징역형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살해 동기가 충분하고 독극물 검색 내용과 피해자 사망 당시 증상이 일치한 점 등을 종합하면 피해자의 사망이 살해 의사를 가진 피고인의 행위로 인한 것임이 충분히 증명됐다”고 밝혔다. 주목할 점은 2000년 호주 사건을 제외하고 모두 혈흔이나 뼈, 화장한 시신 등 ‘피해자가 사망했다고 믿기에 충분한 증거’가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이 변호사 실종사건은 말 그대로 ‘실종’ 이외에 그가 사망했다고 믿을 만한 ‘물리적 증거’는 없다. 과연 검찰은 이 사건을 ‘살인죄’로 기소할 수 있을까?

전국 공개수배를 포함해 경찰의 대대적이고 장기적인 ‘이 변호사 찾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변호사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 변호사의 휴대전화는 경찰의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서울 송파구 일대 여기저기에서 위치 확인이 되었다. 하지만 이 변호사가 휴대전화와 같은 위치에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근거나 정황은 없었다. 동시에 이 변호사가 사망했다는 근거나 증거도 없었다. 경찰은 일단 이 변호사의 ‘동의 없이’ 그의 신분증과 도장, 증명서 등을 도용해 재산을 사취한 사실과 허위 서류를 작성해 제출한 혐의 등을 ‘살인의 정황증거’로 삼아 최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 구속한 뒤 피의자 신문을 통해 최씨의 자백을 이끌어내기 위해서였다. 최씨는 끝까지 혐의를 부인했다. 경찰은 구속기간 동안 이 변호사의 시신 찾기와 최씨의 자백 확보에 실패하고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 수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결국 검찰은 치열한 증거와 법리 검토 끝에 ‘살인죄’ 적용을 포기했다. 대신 증거가 확실하게 확보된 사기, 사문서 위조 및 공문서 부정행사 등 5가지 경제범죄 혐의를 적용해 최씨를 기소했다. 최씨는 2005년 11월 열린 1심 판결에서 적용된 혐의 모두 유죄판결을 받았다. 검찰의 구형대로 적용된 경제범죄에 대한 법정 최고형인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매우 이례적인 판결이었다. 검찰이나 재판부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 살인죄를 적용하지 않을 뿐, ‘사실상의 살인 혐의 인정’이라는 인식”하에 구형량과 선고 형량을 선택했다.

2006년 1월에 열린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혹시라도 무죄 판결이 우려되어 ‘살인죄’로 기소하지 않고, 사기 등 혐의로 기소한 뒤 살인죄의 형량을 선고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최씨의 형량은 ‘징역 2년’으로 대폭 감소되었다.

이 변호사 사건의 진실, 그리고 정의는 무엇일까? 국민의 법감정에 따라 “정황증거가 충분하므로 살인 유죄!” 판결을 내려야 할까? “고문을 해서라도 자백을 받았어야” 했던 것일까? 아니면 “99명의 범죄자를 놓치더라도 1명이라도 무고한 누명을 쓰는 일을 막아야 한다”는 법원칙을 따른 법원의 판단이 옳은 것일까? 결국 범죄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하는 수사 과정의 개선 및 발전이 유일한 답이 될 것이다. 그 시대에 개발되고 검증된 최상의 과학과 기술, 그리고 기법을 적용하고, 효율적이면서도 적법한 수사절차를 엄수해야 할 것이다. 또 가능한 모든 증거를 수집한 뒤 분석하고 피의자나 목격자들의 진술을 통해 수사를 보강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얻어진 ‘종합된 증거의 전체적인 내용’이 판사(혹은 배심원)의 유죄 심증을 이끌어 내기에 충분하도록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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