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드립니다. 이 주의 친절한 기자, 토요판팀 최우리입니다. 길에서 만난 이름 모를 개, 고양이에게도 친절을 베풀고 싶은 저는 사람에겐 더 친절한 편이지요. 덕분에 살면서 남한테 크게 욕먹은 적 없습니다만…기사 한번 쓰고 평생 먹을 욕을 몰아서 먹은 적이 있으니, 저를 욕한 그들의 ‘표현의 자유’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민주당이 일베의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지나친 희화화와 왜곡을 이유로 운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는데요, 친절하지만 뒤끝 조금 있는 최 기자와 고민해볼 주제는 ‘일베와 표현의 자유’입니다.
때는 지난 1월18일 오후 일베에서 보이는 원초적 폭력에 대한 분석기사(욕설과 조롱과 색드립…맨 정신으론 대화 불가! )를 쓴 직후였습니다. 인터넷한겨레에 기사가 최초 게시되고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오후 4시쯤 카카오톡이 왔어요. “기사 쓰신 한겨레 기자 분이시라면 지금 당장 번호 바꾸시는 게 나을 거예요. (중략) 번호 털리는 거 순식간이에요. 저격애들 오면 기자님 집까지 털릴 거예요.”
솔직히 놀라웠습니다. 모르는 20대 초반의 한 남성이, 신문사 전화도 아니고 개인 휴대전화로 대뜸 말을 걸다뇨. 곧이어 메일 주소로 기사 내용이 잘못됐다며 일베인들로부터 분노와 욕설과 조롱을 담은 메일이 쏟아졌습니다. 지인이 말하길 제 트위터가 일베 게시판에 올려져 난도질을 당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이른바 신상이 털린 것이죠. 지난해 숨을 거둔 반려견과 함께 찍은 제 사진이 큼지막하게 게시됐고, 기자가 되기 이전 친구들과 나눈 농담도 공개된 듯했습니다. 일베인들이 싫어하는 ‘김치×’(여성 비하적 표현)인 ‘좌좀’(좌익좀비·진보 비하적 표현) 기자였으니 씹힐 만했지요. 상황이 그 정도가 되자 오히려 저를 걱정하는 지인들을 제가 달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보수신문의 기자들이 가장 먼저 “살아있냐? 고소해라”며 연락해왔던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만 일베의 전투력을 체험한, 그러나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기억을 꺼낸 것은 일베인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는 장면이라고 생각해서입니다. 두어 시간 동안 짬짬이 카카오톡 채팅을 나눈 일베인은 일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일베에서 욕하는 이유는 인터넷에서까지 좋은 말로 칭찬하는 걸 가식적이라고 봐서다. 좋으면 원초적으로 좋다 해야지, ‘너무 예쁘세요’ 하는 게 가식적이다. 일베는 그런 가식이 없다. 서로 장애인, 병신 이렇게 지칭하면서 논다. 난 일베에서 댓글 달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장애인 비하에 대해) 정신지체 장애인들이 스스로 인증하고 일베 온다. 일베는 진짜 몸에 장애가 있어도 똑같이 받아준다. 나는 오히려 일베 하면서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도 사라졌고 그냥 사람으로 받아들여졌다. 실제로 남녀불평등이 어디 있나? 감성을 자극해 (여성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전체를 욕하는 게 아니라 개념 상실한 한국 여자가 타깃이다.”
대화를 해보니 분노의 이유를 모를 것 같진 않았습니다. 변모하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존재는 전근대와 근대와 후기근대가 뒤섞여 있어 모든 여성을 ‘사회적 약자’라고 뭉뚱그릴 수만은 없는 모습이 분명 있지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모욕은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있어도 정치인을 조롱하고 풍자하는 행위 자체를 비난할 수 없는 것이 시대의 흐름이기도 합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풍자 ‘놀이’도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고요.
그럼에도 끝까지 일베 논리에 동조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일베 내 문화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거나 자신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지 못해서입니다.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을 ‘홍어(전라도 비하) 무침’이라 표현하는 수준의 소양을 표현의 자유라면서 정당하다고 인정받으려는 ‘뻔뻔함’이 비판받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그렇다면 일베인들의 키보드 치는 손가락을 묶어버리면 될까요? 전문가들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디시인사이드’에서 일베가 떨어져 나왔듯 일베를 폐쇄한다 해도 이름만 다른 제2의 일베가 등장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일베의 주장이 반사회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원천봉쇄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라는 거죠. 또 그 결정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생각이 다른 사람에 대한 사회의 폭력을 용인할 수 있는 분위기에 한몫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그래서 누리집 폐쇄 등 언로를 전면 차단하는 방법 대신 나치 범죄를 옹호하는 개별 행위에 대해 법적 책임을 엄히 따져 묻는 독일의 방식을 참고하자는 주장이 나오는지도 모르겠군요.
최우리 토요판팀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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