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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나는 처녀가 아니다
여성 청소년에게 순결을 강요말라

등록 2013-05-18 14:20수정 2013-05-18 15:52

여성단체인 ‘잡년행동’ 회원들이 지난 5월1일 오후 서울 소공로에서 사회가 여성에게 강제해 온 꾸미기 노동, 성적 대상화, 감정노동 등을 벗어던지자는 의미로 ‘젠더파업’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뉴스1
여성단체인 ‘잡년행동’ 회원들이 지난 5월1일 오후 서울 소공로에서 사회가 여성에게 강제해 온 꾸미기 노동, 성적 대상화, 감정노동 등을 벗어던지자는 의미로 ‘젠더파업’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뉴스1
‘십대 섹슈얼리티 인권모임’의 발칙한 청소년
그들을 만나기 전에 떠오른 산울림 노래가 있다. “내가 고백을 하면 아마 놀랄 거야~ 깜짝 놀랄 거야~.” 그렇게 놀라지 않을까. 무려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이라니 말이다. 줄여서 ‘대리인’이라고 부르는 모임의 10대들을 두 번 만났다. 지난 5월7일 서울 종로에서 쥬리(18)·윤희(18)·이응(17)을 만났고, 8일 대림동에서 매미(18)·박씨(17)와 저녁을 먹었다. 도대체 너희는 누구냐? 이것을 돌려돌려 물었다. 이렇게 나눈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아, 성별만 간단히 밝히자면 매미는 남성이고 나머지는 여성이다.

 

서울학생인권조례 운동 하다 시작

  

대리인, 그들의 말대로 정말로 네이버에 ‘여고생’ 검색어를 치니 ‘짧은치마’ ‘검정스타킹’ ‘하의실종’이 가장 상위의 연관 검색어로 줄줄이 나왔다. 이런 세상이니, 대리인은 이렇게 주장한다. “우리는 야동에 나오는 섹시한 여고생도, 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청소년도 아니다!” 그래서 대리인은 ‘나는 처녀가 아니다- 페이스 선언’을 시작했다. 이들이 말하고 싶은 것? “연애, 섹스, 사랑, 임신과 출산, 낙태, 피임, 정체성, 경험, 관계에 대한 실제 살아가는 청소년의 리얼한 이야기, 세상에 진실을 보여주자!”

 

모임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쥬리 2011년 가을,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을 하다가 시작됐다. 차별금지 항목에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 임신과 출산’을 빼느냐 문제가 제기됐을 때, 청소년 당사자가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매미 그 항목이 문제가 되니 조례제정운동에도 은근히 ‘청소년운동 vs 성소수자운동’ 구도가 있었다. 그렇다면 청소년과 섹슈얼리티가 만나는 운동을 해보자 그랬다.

윤희 나의 정체성 중 ‘여성, 청소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다양한 사회문제가 섹슈얼리티와 연결돼 있다고 생각한다.

박씨 지난해 여성과 사귀면서 이것이 남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라고 생각하게 됐다.

무엇을 정말로 ‘리얼’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는가.

윤희 편견과 환상을 깨는 이야기를 ‘리얼’이라고 생각한다. 이것만이 진짜고 너희가 아는 것은 모두 거짓이야, 이런 것이 아니라 이런 것도 있다고 말하는 거다.

쥬리 우리는 야동에 나오듯 살지도 않고, 욕구 없이 살지도 않는다.

  

이들이 무엇을 했는지 알려주는 사이트는 많지 않은데, 일일베스트저장소(일베)의 ‘짤방’에는 ‘소중한’ 활동의 기록들이 남아 있다. 지난해 6월 퀴어퍼레이드와 7월 잡년행진에 ‘우리는 처녀가 아니다’ 피켓을 들고 나선 이들의 사진을 올리고, 비아냥거리는 댓글들이 달려 있다. 대리인 활동가들은 “일베 등에서 우리를 ‘룸나무’(룸살롱 꿈나무)라고 부르더라”고 전했다. 금기를 건드린 청소년, 혐오에 맞서야 했다.

 

이런 혐오가 두렵지 않나.

윤희 우리만이 아니다. 포털에서 청소년 활동가들 이름을 치면 사진, 전화번호, 본명이 나온다. 트위터 사찰도 한다.

모임의 카페를 보니까 공부도 하더라.

윤희 <성의 변증법> 같은 책을 읽고, 외국에서 임신한 학생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하는지 찾아보고 토론한다.

그래서 대리인은 뭐하자는 모임인가.

쥬리 나이로 인한 위계와 성적 차별이 만나 이중의 억압을 당하는 것이 10대의 성이다. 청소년은 학교에선 연애 금지, 임신하면 퇴학 조처, 집에서는 통금시간 규제와 외박금지를 당한다. 청소년에게도 성적 자기결정권을 달라는 것이다. 이 운동은 모든 시간에 대한 권리이자 인생의 구석구석에 영향을 끼치는 권리에 대한 이야기다.

 

‘여성 누드’ 검색하다 걸리고는 “청소년 보호” 

지난해, 잊혀진 사건이 있다. 2012년 11월15일 ‘여성의 임신·출산 결정권을 위한 네트워크’ 성명서는 이렇게 애도한다. “지난 10일, 서울의 한 병원에서 임신 23주째의 10대 여성이 낙태수술을 받던 도중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우리는 홀로 임신으로 인한 고민을 안은 채, 건강상의 변화들을 감당하며 수능까지 치러야 했던 그녀의 고통에 가슴 아프게 공감하며 먼저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앞서 8월에는 헌법재판소가 낙태 시술자 처벌 조항에 대해 “사익인 임부의 자기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공익에 비하여 결코 중하다고 볼 수 없고”라며 합헌 판결을 내렸다.

 

페이스 선언에 유난히 성소수자 이야기가 많다.

쥬리 오프라인에서는 커밍아웃을 못해도 그나마 온라인에서는 이야기할 분위기가 되었다는 방증이다. 청소년의 임신과 낙태는 더 말하기 어려운 주제다.

일부의 주장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선.

박씨 섹슈얼리티 하면 ‘성소수자 문제 아냐?’ 하는 친구가 많았다. 그래서 남친이 심한 스킨십을 요구해도 싫지만 거절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 않느냐. 그런 이야기를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선언을 통해 그런 이야기를 할 수가 있다고 설득했다.

윤희 대리인 활동은 성을 부끄러운 것이라고 생각하길 강요당하고,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10대들에게 틀을 깨고 함께하자고 손을 내미는 것이다.

 

#‘야동 재철’이 청소년 보호에 나섰다. 국회 본회의 시간에 스마트폰으로 ‘여성 누드 검색’을 하다가 사진에 ‘딱’ 걸린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이 반전을 시도하고 있다. 스마트폰 등에 청소년유해매체물 차단 프로그램 제공을 의무화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지난 4월 발의한 것이다. 그는 “당시 청소년 보호를 위해 검색하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청소년을 보호하자고 말하는 이도 많다.

윤희 보호를 빌미로 차별을 조장한다. 예컨대 장애인‘차별금지법’이지만, 아동청소년‘보호법’이다.

쥬리 청소년의 성적 권리를 얘기하면, 그래 너희들 섹스하고 싶구나, 그런다. 나이 차별 얘기하면, 너희들 술·담배 하고 싶구나로 받아들인다. 사실 그런 문제가 아니다. 성적 억압은 죽을 때까지 가는 문제다. 그걸 각자의 입장에서 말하자는 거다.

기다리면 더 달콤하다, 논리도 있다.

윤희 발정난 개나 고양이 다루듯 한다. 기다려, 사료 하나 줄게. 동등한 인격체로 생각하지 않으니까.

쥬리 청소년은 연애하면 금방 헤어진다 생각한다. 청소년 성소수자에게는 나중에 바뀐다고 말한다. 성인이라고 연애나 정체성이 영원하지 않은데도.

이응 왜 혼란이 오면 안 되나? 성장에서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말하지 못하게 하는 무엇과 싸우는 중” 

대리인과 만나기 하루 전인 5월6일, KBS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를 보았다. 이날 옷차림과 행동을 남자처럼 하고 다니는 딸 때문에 고민이라는 엄마가 방송에 나왔다. 남자 속옷을 사달라고 조르고, 성인이 되면 주민등록증상 성별도 바꾸고 싶다는 고등학생 딸의 얼굴도 보였다. 이렇게 다양한 섹슈얼리티 고민과 갈등이 지상파 방송에 등장할 만큼 한국 사회도 변했다. 대리인은 ‘섹스’만이 아닌 ‘섹슈얼리티’ 운동을 하려고 한다. 올해는 트랜스젠더 학습권 운동을 계획하고 있다. 매미는 “십대섹슈얼리티를 말하지 못하게 하는 무엇과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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