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열리기 하루 전인 지난 1월2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 인사청문회장 공직후보자 자리에 마이크가 놓여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뉴스쏙 공직후보자 검증 기자들의 ‘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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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클릭하고 등기부 뒤지고
‘장님 코끼리 만지듯’ 밤낮 생고생 부동산 등기부등본은 1건당 700원이면 누구나 열람할 수 있고, 판결문은 법원도서관에서 무료로 검색할 수 있다. 김 전 후보자의 부동산, 그와 함께 땅을 나눠 산 이들의 부동산, 그에게 땅을 팔거나 산 이들이 소유한 부동산의 등기부등본을 약 3만원을 주고 열람한 결과, 공직자 재산공개 때 숨겨둔 땅이 나왔고 증여세를 내지 않으려고 자녀들 이름으로 산 아파트와 땅 등이 확인됐다. 판결문 검색을 통해 김 전 후보자와 그의 사위가 횡령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비리사학 이사장을 변호했고, 둘째 아들이 그 대학 교수로 임용된 사실도 드러났다. 김 전 후보자처럼 조기 낙마하지 않는 경우, 고위 공직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에 여러 자료를 제출한다. 학력·경력 증명서와 더불어 박근혜 당선인이 ‘시시콜콜’하다고 얘기한 병역·재산·납세 관련 자료 등이 포함된다. 자료 제출부터 인사청문회까지 주어진 시간은 보통 1주일 남짓이다. 후보자들은 청문회만 지나면 된다는 생각인 듯 부실한 자료를 내놓고, 사생활 등의 이유로 추가 자료 제출을 거부하거나 미루기 일쑤다. 이동흡 헌재 소장 후보자의 경우, 특정업무경비를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지만 끝내 사용내역을 제출하지 않았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딸들은 이 후보자와 한 집에서 함께 살고 있는데도 ‘독립 생계’라는 이유로 재산을 공개하지 않았다. 부모와 자녀의 재산은 증여세 탈루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필수적인 정보이지만, 이 후보자처럼 공개를 거부하는 후보자들이 늘고 있다. 부실한 자료에 거짓말까지 보태지면 검증은 더욱 어려워진다. 인사청문회법에 위증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기 때문에 임기응변으로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동흡 후보자도 업무추진비 유용 등에 대해 인사청문회에서 거짓말을 했다. ■ 기자들이 먼저 반길 미국식 청문회 김용준 후보자 낙마를 언론 탓으로 돌리는 박근혜 당선인이 미국식 청문 절차를 언급했다고 한다. 하지만 언론의 검증도 버텨내지 못하는 후보들이 미국식 청문제도를 통과할 확률은 희박하다. 미국의 청문 절차는 ‘과거자료 조사→평판 확인→청문회’ 3단계를 거친다. 비공개로 진행되는 과거자료 조사는 200개 이상의 질문으로 구성된 사전 질문지를 바탕으로 한다. 한국은 검증 대상 가족의 범위가 배우자와 자녀 정도에 불과하지만, 미국은 부모와 자녀, 배우자의 부모, 형제, 후견인까지 포함된다. 후보자가 제출한 답변서를 기초로 연방수사국(FBI), 국세청(IRS), 공직자윤리위원회가 검증에 나선다. 평판 확인은 7년 전 이웃과 직장 동료·상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도덕성만큼 중요 자질 어딨나?
정부가 부적격 인사 미리 거르면
언론들도 ‘능력’만 보며 반길 것 검증 기간도 넉넉하다. 후보자가 검증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기까지 평균 4개월이 걸린다. 한국은 20여일에 불과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수사·조사기관이 충분한 시간을 두고 벌이는 도덕성 검증을 통과한 이들만 청문회에 서는 만큼, 청문회에서는 ‘우아하게’ 후보자의 철학과 업무 능력을 논할 수 있다. 1960년부터 2000년 사이 미 상원 본회의에서 인준이 거부된 경우는 6명에 불과하다. 청와대도 인사청문회 전에 사전검증을 한다지만 그 수준은 이미 낙마한 숱한 후보자들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만 9명이 부동산 투기와 위장전입, 증여세 탈루, 재산 부실신고, 자녀 이중국적, 부적절한 스폰서 등의 추문으로 검증 과정에서 낙마했다. 기자들로서는 청와대의 사전검증 기준과 밀도를 불신할 수밖에 없다. 이런 불신을 해소하는 게 새 대통령의 임무이겠지만, 최근 이동흡·김용준 후보자를 거치면서 박근혜 정부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강화됐다. 미국은 검증기간만 수개월에
FBI·국세청 나서 사전 검증하고
이웃·직장동료 평판까지 확인 상황이 이런데도 새누리당은 인사청문회 제도를 오히려 개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재산과 병역, 납세 등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하고 능력 검증만 공개하자는 것이다. 최근 박 당선인과 새누리당 주요 인사들의 발언으로 미뤄볼 때 청문회 제도를 무력화시키려는 시도가 아닌지 의구심이 일고 있다. 만약 새누리당이 ‘비공개 검증’이라는 눈속임으로 도덕성 검증을 어물쩍 넘어가려고 할 경우 국민적 저항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청문회 대상을 장관으로 확대하는 등 그동안 청문회 제도가 강화된 것은 새누리당이 야당 시절 요구해 관철한 결과이기도 하다. 미국 연방수사국과 국세청 등이 하는 사전검증을 한국에서는 제도의 미비 탓에 언론이 맡는다. 언론의 사전검증이 치열한 것은 역설적으로 정부의 사전검증이 치밀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이 당리당략에 따라 청문회를 통과의례로 생각하는 한 언론의 사전검증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고위 공직자의 도덕성 검증은 기자들에게만 맡기기에는 너무 중차대한 일이다. 미국처럼 정부가 부적격 인사를 철저하게 걸러내겠다고 하면, 가장 반길 사람은 기자들일 것이다. 정부 기관을 대신해 공익보다 사익을 추구하는 공직자를 걸러내야 하는 ‘부담’은 둘째 치고라도, 깨알 같은 자료들을 들여다보느라 눈이 벌게지는 밤을 더 겪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유신재 김규남 기자 ohora@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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