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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26일 첫돌 맞는 서울학생인권조례

등록 2013-01-25 08:33

학생인권 지키려 태어난 나
나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빨리 없어졌으면 좋겠대
이처럼 슬픈 첫생일이 있을까?
주민 8만7천명 서명·발의로 탄생
교과부 잇단 반대로 뿌리 못내려
26일 학생참여단 등 모여 기념식

안녕? 나는 ‘서울학생인권조례’라고 해. 내일 26일은 내 돌잔치가 열리는 날이야. 그런데 날 만들어준 사람들은 내가 아직 걸음마도 제대로 못해서 걱정이고, 내가 태어나길 원하지 않은 사람들은 내가 빨리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해. 나처럼 슬픈 첫번째 생일을 맞는 아이가 또 있을까? 흑.

날 낳아준 분들은 ‘서울 시민’들이야. 40여개 시민단체가 모여 만든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 서울본부’가 2010년 10월 주민서명 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 난 본격적으로 세상에 나올 준비를 했어. 2011년 5월 전체 서울 주민의 1%가 넘는 8만7000명의 서명을 받아 발의를 성사시켰을 땐 얼마나 좋던지! 그해 12월 서울시의회에서 날 통과시켰을 때만 해도 학생인권조례 중에선 전국 최초로 ‘학생은 집회의 자유를 가진다’는 조항을 지켜냈다는 자부심과 세상에 나갈 기대로 가득 차 있었어. 의회를 통과한 차례로 맏인 경기도학생인권조례, 둘째인 광주학생인권조례처럼, 막내인 나도 각 학교로 무럭무럭 뻗어가서 학생들의 든든한 인권지킴이가 되고 싶었어.

하지만 내가 태어나던 날인 2012년 1월26일부터 내 운명에 어두운 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어. 서울시교육청이 나를 공포하면서 내가 세상에 나온 바로 그날, 교육과학기술부가 대법원에 나를 무효로 해달라는 소송을 낸 거야! 그해 3월엔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해서 교장이 교육감의 인가를 받지 않고도 학교 규칙을 만들 수 있게 했어. 교장들이 형식적으로 회의를 열곤 두발제한같이 나에게 위배되는 학칙을 만들 수 있게 길을 튼 거지.

이런 교과부의 방해 때문에 나는 학교에서 제대로 뿌리내리질 못했어. 서울시교육청 학생참여단 학생들이 지난해 10월에 서울 지역 초·중·고학생 345명에게 받은 설문지를 보면 ‘조례 관련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답한 학생이 98%(336명)였어. 조례 내용을 모른다고 답한 학생은 59.4%(205명)였고. 나를 따라 교칙을 만든 학교는 열 곳 중 한 곳 정도야. 서울시교육청이 지난해 10월에 서울지역 학교의 학칙 현황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내가 금지하는 두발제한을 교칙으로 둔 중학교는 87.8%(333개교)야. 고등학교는 89.9%(285개교)고.

학교에서 내 존재를 무시한 거지. 그런데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은 지난해 12월19일 당선된 날 “교단을 붕괴시키고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를 악화시킨 학생인권조례 수정이나 폐기가 시급하다”고 내 탓을 했어. 한마디로 ‘헐’이야.

‘교실 붕괴’의 가장 큰 원인은 입시 경쟁 교육이 아닐까? 학교는 좋은 대학에 갈 성적이 되는 학생한테만 맞춰서 가르치고, 공부 외에 다른 재능이 있는 친구들은 배움에서 소외시키고 있어. 학생들이 누리고 보호받아야 할 인권이 있음을 스스로 깨닫고 행동하기 시작하는 걸, 일부 교사와 학부모들이 두려워한다고 나는 생각해.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강압적으로 공부시켜서, 점수가 높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만 부추기는 교육은 할 수 없으니까.

내가 왜 필요한지는 학생들의 작은 목소리에 귀기울이기만 해도 느낄 수 있어. 이건 학생참여단 학생들이 나눠준 설문지에 학생들이 주저하며 털어놓은 이야기들이야. “월말마다 시험을 봐서 모든 학생의 등수를 게시판에 공개해요.” “학교에서 방송으로 형편이 어려워 급식비 지원을 받는 친구들 명단을 불렀어요.” “교실에서 여학생이 옷 갈아입는데 남자 학생주임 선생님이 맘대로 들어와요. 여자화장실에도요.” “철학과목을 선택한 학생을 선생님이 따로 불러 종교로 바꾸게 해서, 모든 학생이 종교만 들어요.” “방과후 학습을 강제로 시키고, 학생이 하기 싫거나 못한다고 하면 선생님이 때려요.”

학생참여단 설문조사를 보면 인권 침해 유형은 두발규제가 44%(152건)로 제일 많고, 언어·신체적 폭력 24%(82건)가 다음으로 많았어. 성적 같은 개인정보를 공개하는 사례가 15건(4%), 종교자유 침해가 6건(2%), 자치활동 방해가 7건(2%)이었고. 오늘도 학교에서 일어나는 조용한 폭력으로 상처받고 웃음을 잃어버리는 학생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단다. 흑.

그래도 내 생일날 서울시교육청에서 학생참여단과 학생인권위원회가 모여서 기념식과 토론회를 연다니 힘을 내야지. 앞으로 더 많은 지역에서 내 동생들이 태어나 막내를 탈출하는 꿈을 난 꾸고 있어! 올해는 국회의원들이 나보다 더 힘센 ‘아동청소년인권법’을 만들어서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지역이나 학교 밖 아동청소년들의 인권도 보호해주게 되길 기대해. 그렇게 되면 내년엔 기쁜 생일을 맞을 수 있겠지?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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