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출신 미등록 이주노동자 부모 밑에서 한국에서 태어난 하영광(당시 5살)군이 2005년 10월 한국 출생 아동 및 미성년 이주아동의 합법체류 보장과 영주권 허용을 촉구하는 이주노동자 단체들의 기자회견 내용을 턱을 괸 채 듣고 있다. 이듬해 영광이의 엄마가 단속에 걸려 추방될 위기에 처하면서, 미등록 이주아동의 보호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토요판] 커버스토리/ 미등록 이주아동 정책은
‘영광이도 민우도 결국 한국을 떠나야만 했다.’
우리나라의 미등록(불법체류) 이주아동에 대한 정책을 냉정하게 따져보면 결국 이 한마디로 정리될 것 같다.
2006년 4월5일, 미등록 이주노동자인 엄마가 하교하는 아들 하영광(당시 6살)군을 마중 나왔다가 출입국관리소의 단속에 걸려 강제추방당할 위기에 처한 사건이 벌어졌다. 2000년 스리랑카 출신 미등록 이주노동자 부모 밑에서 한국에서 태어난 영광이는 외국인 노동자 자녀 특별학급이 설치된 경기도 안산의 원일초등학교 1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아이 때문에 체류 허가해주면 부모가 악용?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부모 자식을 생이별시킨 잔인한 ‘표적 단속’이란 비판 속에 ‘미등록 이주아동의 교육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한달 뒤 교육인적자원부는 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추적해 불법체류 부모를 단속하지 않도록 법무부 등 관계 기관과 협조하기로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 ‘다문화가정 자녀들에 대한 교육지원대책’을 발표했다. 또 법무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자녀가 우리나라에서 학교를 다니며 우리 사회에 상당히 적응한 경우 부모의 신분까지 합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검토의 결과물은 그해 8월, 자진신고한 이들에 한해 2008년 2월까지 한시적으로 출국을 유예해주는 ‘초등학교 재학 불법체류 아동에 대한 한시적 구제 조치’였다. 2001년 3월 교육인적자원부가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 자녀의 교육권 보장 지침’을 내려 미등록 이주아동에게 처음으로 ‘교문’을 연 이후, 2006년은 미등록 이주아동의 보호 문제가 정부의 정책 과제로 떠오르는 첫해로 기록됐다.
‘하영광군 사건’ 이후 6년여, 그사이 대한민국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큰 틀에선 변화가 없었다’고 봐도 틀리진 않다. 영광이네는 2008년 2월, 특별유예 조치가 끝나기 전 스리랑카로 돌아갔다. “초청을 받아 합법적으로 한국으로 돌아와 사업을 할 계획이었지만, 미등록 체류 기록 때문에 5년 동안 입국이 금지됐더라”는 게 당시 이들을 도왔던 박천응 안산이주민센터 대표의 전언이다. 박 대표는 “영광이가 스리랑카 말을 전혀 못해 현지 적응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한국서 태어난 영광이는
2006년 엄마가 단속 걸린 뒤
몇년 있다 스리랑카로 출국
‘2년 추방유예’ 운 좋은 경우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관해선
여전히 배제와 추방이 기본
아이들은 배제와 묵인이
그나마 인권보장하는 수준 물론 정부는 다문화 정책을 표방하며 1·2차 ‘외국인 정책 기본계획’을 내놓고는 있다. 하지만 출입국 ‘관리’ 위주의 정책에서 ‘사회통합’으로 선회한 1차 계획(2008년)은 물론, 2차 계획(올해)도 등록된 이주민과 결혼이주민과 그 2세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을 뿐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는 여전히 ‘배제’와 ‘추방’ 정책이 고수되고 있으며,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해서는 ‘방관’과 ‘묵인’을 통해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는 선에 그치고 있다.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처우가 법에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다 보니 정부의 성격에 따라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석원정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대표는 말했다. 2006년 이뤄졌던 출국유예 조치가 이후 단 한번도 이뤄지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법무부 한 관계자는 “아이가 불법체류, 추방의 위험 속에 놓이게 만든 책임은 부모에게 있으며, 아이들의 교육권 보장 등을 이유로 체류 허가를 내줄 경우 부모가 이를 불법체류를 정당화하거나 장기화하는 데 이용하는 일도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결국 부모의 체류 신분에 연동될 수밖에 없는 미등록 이주아동들은 이 때문에 사회통합의 사각지대에서 사회권·교육권·건강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게 된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는 “현행법대로라면 미등록 이주아동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부모에 대한) 인도주의적인 단속’을 하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유엔 아동인권협약이 보장하는 ‘교육받을 권리’ 이는 자국 관할 내에 있는 모든 어린이에게 부모 혹은 법적 보호자의 신분에 관계없이 교육권 등 권리에 대해 어떠한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유엔 아동인권협약’에 어긋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 협약을 1990년 비준하고도 실효성 있게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김동성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 등 43명이 2010년 10월 “속인주의 위주의 현행법과 제도로는 이주노동자, 특히 이주아동에 대한 법적 관리 및 보호가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이주아동 권리보장법’을 발의했지만, 이 법안은 임기 만료로 폐기되고 말았다. 김민우군의 강제추방 사건에서도 드러나듯, 현행법에도 미진한 구석이 많다. 출입국관리법은 미등록 이주아동의 강제퇴거에 대한 규정을 따로 두고 있지 않으며,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경찰 공무원 등의 통보의무 면제 규정도 따로 없다. 현행법 제도의 구멍으로 영광이와 민우는 출입국관리법을 위반한 ‘범법자’가 돼 강제추방될 수밖에 없고, 이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출입국관리사무소에 통보하지 않는 공무원은 통보 의무 불이행에 따른 징계에 직면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석원정 대표는 “법이 바뀌지 않는다면 이런 법적 갈등은 계속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민우군 추방 이후 이주인권단체들이 민우의 재입국을 허용해 학업을 계속하게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출입국관리법 등에 미등록 이주아동 보호에 대한 별도의 규정 마련 등 유엔권리협약에 걸맞은 이주아동 보호 정책을 수립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나아가 등록 외국인과 결혼이민자 등을 위주로 한 차별적, 혈통·동화주의적인 다문화 정책에 따른 현행 외국인 정책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까지 지적한다. 저출산·고령화의 심화와 국내 저임금 노동력 부족 현상에 따른 인력수급 문제에 부닥쳐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의 강력한 단속·추방 정책에도 불구하고, 2002년(28만9238명)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했던 미등록 이주노동자 수는 고용허가제와 방문취업제를 통해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의 체류 기간 첫 만료 시점인 2010년을 기점으로 다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영광이나 민우 같은 미등록 이주아동은 얼마나 될까. 정확한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공식적 통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법무부 등의 자료를 통해 추정해 볼 수 있을 뿐이다. 지난해 11월 법무부가 내놓은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월보>를 보면, 불법체류(미등록) 외국인은 18만794명(12.7%)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19살 미만 체류 외국인(이주아동)은 7만1462명. 불법체류율 12.7%를 10~20% 범위로 넓혀 적용해보면, 19살 미만 미등록 아동의 비율이 7146명~1만4292명인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민간단체들은 이보다 많은 2만명 이상으로 추계하고 있다. 결국 2만여명이 넘는 또다른 영광이와 민우가 ‘조심하지 않으면 언제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부모의 말에 불안해하며, 대한민국 하늘 아래서 자라나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박천응 대표는 “10년 이상 미등록으로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가 2만명이 넘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이들에게 가족 동반이 안 된다고만 할 거냐. 이제는 유엔이 정한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에 관한 권리협약을 적용하는 등 법의 테두리를 좀더 넓혀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 참고: 이주노동자 단체 등에서 분류하는 이주아동은 본인 또는 부모의 국적국을 떠나 국내에 거주하는 19살의 아동·청소년을 의미한다.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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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배제와 추방이 기본
아이들은 배제와 묵인이
그나마 인권보장하는 수준 물론 정부는 다문화 정책을 표방하며 1·2차 ‘외국인 정책 기본계획’을 내놓고는 있다. 하지만 출입국 ‘관리’ 위주의 정책에서 ‘사회통합’으로 선회한 1차 계획(2008년)은 물론, 2차 계획(올해)도 등록된 이주민과 결혼이주민과 그 2세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을 뿐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는 여전히 ‘배제’와 ‘추방’ 정책이 고수되고 있으며,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해서는 ‘방관’과 ‘묵인’을 통해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는 선에 그치고 있다.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처우가 법에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다 보니 정부의 성격에 따라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석원정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대표는 말했다. 2006년 이뤄졌던 출국유예 조치가 이후 단 한번도 이뤄지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법무부 한 관계자는 “아이가 불법체류, 추방의 위험 속에 놓이게 만든 책임은 부모에게 있으며, 아이들의 교육권 보장 등을 이유로 체류 허가를 내줄 경우 부모가 이를 불법체류를 정당화하거나 장기화하는 데 이용하는 일도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결국 부모의 체류 신분에 연동될 수밖에 없는 미등록 이주아동들은 이 때문에 사회통합의 사각지대에서 사회권·교육권·건강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게 된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는 “현행법대로라면 미등록 이주아동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부모에 대한) 인도주의적인 단속’을 하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유엔 아동인권협약이 보장하는 ‘교육받을 권리’ 이는 자국 관할 내에 있는 모든 어린이에게 부모 혹은 법적 보호자의 신분에 관계없이 교육권 등 권리에 대해 어떠한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유엔 아동인권협약’에 어긋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 협약을 1990년 비준하고도 실효성 있게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김동성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 등 43명이 2010년 10월 “속인주의 위주의 현행법과 제도로는 이주노동자, 특히 이주아동에 대한 법적 관리 및 보호가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이주아동 권리보장법’을 발의했지만, 이 법안은 임기 만료로 폐기되고 말았다. 김민우군의 강제추방 사건에서도 드러나듯, 현행법에도 미진한 구석이 많다. 출입국관리법은 미등록 이주아동의 강제퇴거에 대한 규정을 따로 두고 있지 않으며, 미등록 이주아동에 대한 경찰 공무원 등의 통보의무 면제 규정도 따로 없다. 현행법 제도의 구멍으로 영광이와 민우는 출입국관리법을 위반한 ‘범법자’가 돼 강제추방될 수밖에 없고, 이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출입국관리사무소에 통보하지 않는 공무원은 통보 의무 불이행에 따른 징계에 직면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석원정 대표는 “법이 바뀌지 않는다면 이런 법적 갈등은 계속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민우군 추방 이후 이주인권단체들이 민우의 재입국을 허용해 학업을 계속하게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출입국관리법 등에 미등록 이주아동 보호에 대한 별도의 규정 마련 등 유엔권리협약에 걸맞은 이주아동 보호 정책을 수립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나아가 등록 외국인과 결혼이민자 등을 위주로 한 차별적, 혈통·동화주의적인 다문화 정책에 따른 현행 외국인 정책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까지 지적한다. 저출산·고령화의 심화와 국내 저임금 노동력 부족 현상에 따른 인력수급 문제에 부닥쳐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의 강력한 단속·추방 정책에도 불구하고, 2002년(28만9238명)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했던 미등록 이주노동자 수는 고용허가제와 방문취업제를 통해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의 체류 기간 첫 만료 시점인 2010년을 기점으로 다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영광이나 민우 같은 미등록 이주아동은 얼마나 될까. 정확한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공식적 통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법무부 등의 자료를 통해 추정해 볼 수 있을 뿐이다. 지난해 11월 법무부가 내놓은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월보>를 보면, 불법체류(미등록) 외국인은 18만794명(12.7%)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19살 미만 체류 외국인(이주아동)은 7만1462명. 불법체류율 12.7%를 10~20% 범위로 넓혀 적용해보면, 19살 미만 미등록 아동의 비율이 7146명~1만4292명인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민간단체들은 이보다 많은 2만명 이상으로 추계하고 있다. 결국 2만여명이 넘는 또다른 영광이와 민우가 ‘조심하지 않으면 언제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부모의 말에 불안해하며, 대한민국 하늘 아래서 자라나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박천응 대표는 “10년 이상 미등록으로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가 2만명이 넘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이들에게 가족 동반이 안 된다고만 할 거냐. 이제는 유엔이 정한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에 관한 권리협약을 적용하는 등 법의 테두리를 좀더 넓혀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 참고: 이주노동자 단체 등에서 분류하는 이주아동은 본인 또는 부모의 국적국을 떠나 국내에 거주하는 19살의 아동·청소년을 의미한다.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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